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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여섯 엄마.

다섯 명의 새엄마를 가진 나

'아유~ 맛이 왜 이래~~~'

내가 기억하는 첫 새엄마는 대구 사람이었다.

꼬불꼬불한 논길을 한참 돌아 내려가면 있는 작은 우물가에서 손질해서 끓여준 대구탕은 내가 기억했던 동태탕과는  완전 다른 특이한 향이 느껴졌다.

문득 내 기억 속 대구 새엄마는 어쩌면 대구 사람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내게 빨간 골덴 멜빵 치마를 사주었던.

어쩌면. 사랑이 아주 많은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 날 말수가 통 없다며 아버지는 대구 새엄마를 내쫓았다고 했다.


용현이 엄마로 불렸던 두 번째 새엄마는 얼굴조차도 기억이 잘 나질 않는다. 초등학교 3학년이던 언니를 이모할머니네 작은 아버지 집으로 식모살이를 보내게 한  장본인이다. 우리가 셋, 새엄마도 셋. 여섯이나 되는 아이를 다 어떻게 키울 거냐며 초3 언니를 식모살이 보낸 사람이다. 막내아들 용현이만 본 적이 있기도 한 것 같지만 잘 기억도 사질 않는다.

용현이 새엄마는 방학을 맞이하여 아버지 집으로 잠깐 놀러 온 나와 남동생을 방에 가둔 채 열쇠로 문을 잠가두고 집을 나갔는데 점심때 집에 잠깐 들른 아버지에게 딱 걸려서 사네 못 사네 했었다는데. 그 이후로도 쭉 잘 살았던 것 같다. 괜한 언니만 남의 집 식모살이로 팔려가고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언니에게 남겼다.


세 번째 새엄마는 고창 새엄마다. 깡마른 몸에 못 생긴 얼굴에 찬바람이 쌩쌩부는 전형적인 새엄마 상이었다.  연로하신 할머니가 더 이상 우리를 돌볼 수 없게 되자 처음으로 같이 살게 된 새엄마다. 초3 때 남의 집 식모살이 간 언니가 열여덟이 되어서 집으로 돌아왔을 때 벌어온 돈 300만 원을 빼앗고선 자신의 딸이 일하는 서울의 봉제 공장으로 다시 쫓아버린 매정한 새엄마였다. 할머니가 그리워 눈물로 밤을 지새우던 언니는 잘못된 선택을 했고 유부남과 사랑에 빠져 열아홉 나이에 임신을 했다. 14살의 나이 차이가 나는 무능했던 형부와는 오래가지 못했고 언니는 결혼한 지 10년도 되지 않아 이혼녀가 됐다.


네 번째 새엄마인 예삐 새엄마는 아주 귀여운 하얀 강아지를 데리고 우리 집으로 왔는데, 얼굴에 곰보 자국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아버지가 자기를 사랑해주지 않는다며 당시 중2이었던 나를 데리고 포장마차에서 홍합탕 국물에 소주를 마시며 신세한탄을 하셨던 기억이 난다. 늦은 시간까지 눈물을 흘리던 새엄마를 위로해 주었던 나는 그때 중2였다. 아버지가 미웠다. 그래도 내게 따뜻하게 대해 준 새엄마였는데...

얼마 후 학교 다녀와보니 한마디 말도 없이. 흔적도 없이 떠나버리고 말았다. 오는 것도 가는 것도 어느새 익숙해진 나는 '또 가버렸나 보네.' 하고선 한참을 허전해했다.


마지막 다섯 번째 새엄마는 지금 아버지와 살고 있는 새엄마다. 자식과 자기 중에 선택하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시던 새엄마다. 스무세 살 아무런 준비도 없었던 나는 구박을 못 이겨 집을 나왔고 나와 23년을 동고동락한 할머니는 내가 집을 나온 지 5일 만에 돌아가셨다. 5일 동안 한 끼도 안 드셨다고 한다. 불과 며칠 전까지도 내가 목욕시켜 드리고 손톱도 깎아드리고 머리도 잘라드리고 고기도 가위로 작게 잘라 밥 위에 올려주곤 했었던 그 할머니는. 내겐 엄마나 마찬가지였던 나의 할머니는. 내가 집을 나간 5일 동안 내 이름만 목놓아 부르다가.  그렇게 허무하게 삶의 끈을 놓아버리고 말았다. 지금은 아쉬울 때 내게 제일 먼저 전화하는 다섯 번째 새엄마와는 벌써 26년째 동고동락 중이다. 산에서 뜯었다며 두릅이랑 취나물이며 밭에서 키운 시금치에 계란까지 챙겨주며 어쩌면 5년 살다 간 친엄마보다도 더 친엄마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나의 친엄마 이야기다.

내가 두 살 때. 그러니까 남동생은 한 살 때 아버지의 폭력을 견디다 못해 집을 나갔다고 한다. 가끔 친척들을 통해서 누가 부산에서 봤다더라. 딸을 하나 키운다더라. 등등 소문을 들었기에 살아있다면 언젠가는 우리를 보러 올 거라는 헛된 기대를 갖고 살았던 13년을 보상받기라도 하듯 내가 중3 때쯤 우리와 다시 잘 살아보겠다고 집에 들어왔지만. 아버지의 폭력에 못 이겨 5년도 채 살지 못한 채 다시 우리 곁을 떠나고 말았다. 왜 아버지는 엄마에게만 폭력을 했었던 걸까? 늘 궁금하지만 굳이 묻지는 않는다. 엄마는 53세의 젊은 나이에 어린 이복동생 셋을 남겨두고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다이에나 왕세자비를 닮은. 보조개가 이뻤던. 항상 잘 웃던 나의 친엄마는 아마도 천국에서 행복하게 지내고 있을 것이다.

이렇게 49년. 길면 길고 짧다면 짧은 세월. 내겐 여섯 명의 엄마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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