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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내 삶의 마지막 날이라면?

백일백장 100-7

6시. 핸드폰에 맞춰둔 알람이 울린다.

산뜻한 노래와 함께 오늘의 날씨 정보와 신문사의 메인 뉴스들도 간략하게 알려준다.

둘째를 깨우기에는 조금 시간 여유가 있어서 물 한 잔을 마시고 다시 자리에 눕는다. 몸이 물 먹은 솜처럼 무겁다. 지난주에 있는 자격시험을 준비하느라 수면 부족과 운동 부족으로 인해 일요일 오후 종일 뒹굴거렸는데도 피로가 풀리지 않는다.


교회 직장 속 성경 읽기 안내 글이 톡으로 올라온다.

서둘러 성경 어플을 클릭해서 오늘의 성경 구절을 눈으로 찬찬히 훑어내려 가며 나지막하게 읽어본다.

내일 병원에 가야 해서 수업을 가지 못한다는 학부모님의 카톡 메세지와 어제 아들을 군대에 입소시킨 친구의 안부를 묻는 친구들의 카톡 메세지도 올라온다.


할머니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엄마의 심장마비 그리고 아버지의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인한 사망.

나는 가족들 중 어느 누구의 마지막도 함께 하지 못했다.


이제 살아갈 날 보다 살아온 날이 더 많아진 나는 요즘 문득문득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우리는 너무도 당연하게 내일 아침 눈을 뜰 것이라고 장담하고 잠에 든다. 언제나처럼 일어나서 언제나처럼 같은 일상을 반복한다. 하지만 지금 잠깐 멈추고 생각해 보자.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난 무엇을 할까?"


일을 마치고 아들을 학교에서 픽업해 오는 길에 스타벅스 DT에 들러서 아들과 아들 친구에게 자바칩 프라푸치노를 한 잔씩 사주었다. 중학교 2학년, 한참 비행을 저지르고 다니던 시절에 나는 둘째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서 눈물을 흘리던 시절도 있었다. 학원을 빼먹고, 비싼 잠바를 사 달라고 떼를 쓰고 공부는 뒤에서 세 번째였다. 그리고 원서만 내면 아무나 들어간다고 장담하던 공고 자동차학과에 떨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자신의 현실을 받아들이게 된 것 같다. 차선책으로 기계과를 다니고 있고 그나마 지금은 공부라는 것을 하고 있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잘한 일이 있다면 두 아들을 낳은 것이다. 비록 남들처럼 번듯하게 잘 키우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행복해진다. 존재 그 자체만으로 나에게 기쁨을 준다.


오늘 밤 내가 죽는다면 가장 슬퍼할 존재 또한 두 아들이 아닐까 한다. 남편이야 재혼해서 좋은 아내를 만나서 잘 살 수도 있겠지만, 두 아들에게는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엄마가 사라지는, 세상에서 충격적인 사건이 아닐까 한다.


우리는 눈앞에 닥친 바쁜 일들을 처리하느라, 때로 중요한 일을 소홀히 여기기도 한다. 나중에 하자고 미뤄두었던 일들, 언젠가는 하겠다는 말들. 어쩌면 그것들을 큰 트라우마 사건을 마주하지 않은 이상 계속 미루게 될 가능성이 높다.


언젠가 파이어드림 활동을 하면서 버킷리스트를 100개 작성해 보라는 숙제가 있었던 적이 있었는데, 나는 20개도 채 채우지 못하고 그만두었다. 그만큼 나에게, 내가 원하는 것에 집중하지 못하며 살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가고 싶은 곳을 발견하면 카톡 프사에 사진으로 남겨둔다. 그리고 틈날 때마다 들여다본다. 대구에 있는 사유원, 제주도에 있는 방주 교회, 그리고 터키.


여전히 바쁘고 정신없는 삶이지만, 이제는 지금 이 순간 여기에 존재하고 있는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바쁜 일상 뒤로 미뤄두었던 멀리 사는 언니와 전화통화를 하고 명상음악을 들으며 몸과 마음을 이완해 본다.

그리고 나에게 묻는다.


"오늘은 뭐 먹고 싶어?"

맞다. 해남 밤호박이 야채냉장고에 있었지? 오늘은 밤호박에 아이스커피를 마시고 12시까지 계속될 줌 수업을 기쁘게 맞이해 봐야겠다.


오늘은 그냥 주어진 하루가 아니다. 내일도 어쩌면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니 소중하게 보내자. 나를 더 아끼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며 나도 돌보고 살자.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내게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하자.

오늘 밤엔 고2 둘째 아들을 꼭 끌어안고 잘 자라고 볼에 뽀뽀를 해 주어야겠다. 징그럽다고 밀쳐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오늘밤 내가 죽는다면 두 아들 생각이 제일 간절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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