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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enna Apr 26. 2022

아침 식사하시나요?

- 저녁을 두 그릇 먹으면 안 돼요?

 나는 아침 식사를 하지 않는다. 이유는 단순하지만 잠을 자는 것이 먹는 것보다 우선 이어서이다. 몇십 년을 이렇게 살다 보니 어쩌다 하는 아침 식사가 거북하기도 하고 솔직히 귀찮기도 하다. 아이들은 빵이나 우유 등으로 간단히 먹여 보내기도 하지만 우리 아이들도 5분이라도 더 자는 걸 중시해 거를 때도 종종 있다. 나이 들면 아침잠도 없어진다는데 난 하루 종일도 뒹굴뒹굴 구르는 것이 행복한 천상 백수 체질인가 보다.




 주부로서 남편이 나를 공격하기 쉬운 최고의 아킬레스건이 바로 아침식사. 얼마 전 친구 아버님의 장례식장, 지인들이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누구 와이프는 그렇게 매끼를 완벽하게 상을 차릴 수가 없다며 칭찬이 이어졌다. 평소 손끝이 야무지고 솜씨가 좋은 걸 나 또한 잘 알고 있다. 다른 남편들의 부러운 눈초리가 이어지는 찰나 남편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저는 아침 식사를 몇 번 먹어본 적이 없습니다. " 또 시작이로구나.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어머! 자기야 그게 무슨 소리야? 우린 아침을 먹어 본 적이 없는데." 내가 당황할까 살피던 여자분들도, 아니 저 집은... 혀를 차려던 남자분들도 잠시 말을 잇지 못하다 옆에 있던 친구가 풋! 하고 웃어버렸다. 그렇게 남편의 공격은 실패로 끝났다.


 남편 또한 아침 식사를 하던 사람이 아니다. 남편은 물론 칠순이 넘으신 어머님 아버님마저 아침잠이 많으셔 요즘 말로 아점을 드신다. 신혼초 시댁 더부살이를 할 때 난 한복 곱게 차려입고 아침 문안 인사를 드렸다. 하루 이틀 옷도 차려입으시던 시부모님은 사흘째 되던 날 이만하면 너도 힘드니 그만두어도 좋을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장난기가 많은 나는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한복을 곱게 입고 큰 절을 올렸다. 일주일쯤엔 두 분은 머리에 새집을 얹고 반쯤 감긴 눈으로 절을 받으시고 다시 주무셨다. 이만하면 나의 라이프 스타일에 맞는 완벽한 시댁을 만났구나 만족하며 나의 아침 문안 인사는 끝이 났다.


아침 식사 사진이 없으니 저녁상으로 대신합니다.



 수십 년 이어진 식습관도 버리고 나에게만 아침을 차리라니 난 조식 포함된 호텔 패키지가 아니다고 항변하지만 아직도 아침 식사는 주부인 나에겐 크나큰 약점이다. 엄마가 우리 다섯을 키우면서도 아침에 점심, 간식까지 놓친 적이 없음에도 할아버지가 엄마에게 잠 많은 것이 칠거지악이라며 호되게 꾸짖던 모습이 떠오른다. 아이고! 손녀가 이러고 있다면 뭐라 하실까. 분명히 "허허! 읍시~ 큰일이다, 큰일." 헛웃음만 지으시고 슬그머니 넘어가시겠지. 

 "할아버지! 저에겐 아직 2박스의 시리얼이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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