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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enna Jan 04. 2022

책가방을 찾아라!

 녹색 어머니를 하는 날이다. 평소보다 1시간 일찍 일어나 채비를 하지만 나만 부산하고 아이들은 요지부동이다. 커튼을 걷고 햇살에 눈이 부셔야 마지못해 일어나는 아이들이라 어둑어둑한 겨울 아침에 두 남매를 3분 간격으로 흔들어 보지만 이젠 아예 이불로 온몸을 돌돌말아 버린다. "어서 일어나! 빨리 빨리!" 아이들을 반 강제로 침대에서 끌어내다 둘째는 눕힌 채로 옷을 입혀 안고 욕실로 데려가 찬물 세수를 시킨다. "아니~엄마 그거 왜 해서 우리를 일찍 깨우냐고." 아침 10분이 아쉬운 아이들이니 40여분 이른 기상에 아이들은 연신 볼멘 소리를 한다.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는 날이 춥지 않은 날, 어르신 분들이 도우미 역할을 해주신다. 요즘은 직장에 다니는 엄마들이 많으니 녹색 어머니 봉사를 자원하는 분들이 많지도 않고, 직장 잡기가 힘드신 노인 일자리 창출을 위해 언젠가부터 학교 앞 횡단보도엔 어르신 분들이 서 계셨다. 그러나 혹한기엔 도우미 활동을 못하시니 방학 전 일주일 가량 엄마들의 도움이 필요해 난 이틀을 지원했다.


 일찍 나선다고는 했지만 도착 시간을 맞추기가 빠듯하다. 아이들을 재촉해 횡단보도를 건너 학교까지 전력질주를 하고 헐떡이는 숨으로 체온측정을 한 뒤 녹색 어머니 조끼와 신호봉을 건내 받아 부랴부랴 학교 앞 횡단보도에 서 숨을 고른다. 정해진 등교 시간보다 이른 시각임에도 꽤 많은 아이들이 벌써 길을 건너고 있었다. 신호봉을 들고 아이들이 건너는 타임에 맞추어 정지 시키고 보내고를 반복한다. 등교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이렇게 오래 지켜본 적은 없는데 조용히 지나가는 아이들, 넉살  좋게 인사하는 아이들, 어깨동무를 하고 신나게 노래 부르는 아이들까지 지루할 새 없이 시간이 간다. 등교 지도를 하시기 위해 나오신 교장 선생님께서 번거로움에도 불구하고 매일 같이 하실 수 있는 연유도 아이들의 다양한 에너지 덕분인 듯 하다.


 마주선 다른 엄마와 한참 박자를 맞추어 가며 재미를 붙이는데 느닷없이 딸 아이가 뒤에서 나를 부른다. 난감한 표정의 딸은 "엄마, 가방을 안 가져 왔어." 라며 쭈뼛거리며 뒤에 서 있다. "뭐?" 세상에 교장 선생님 앞에서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다. 아침 시간 서두르며 재촉 하긴 했지만 저학년인 아들도 아닌 6년 내 준비물 하나 놓친 적 없는 큰 아이가 이런 사고를 칠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아이고, oo 이가 가방을 놓고 오다니 신문에 날 일이다~" 놀리시는 교장 선생님께 "제가 아침에 너무 재촉을 했나 봅니다." 주저리 주저리 변명을 해보지만 아이를 제대로 챙기지 못한 부끄러움이 가시질 않는다. 혹시 모르니 차를 확인해 보라고 했으나 딸은 이내 고개를 저으며 돌아왔다.

 

 어쩔 수 없다. 남편 찬스를 쓰는 수 밖에. 한밤중인 남편에게 전화를 하고 사정 얘기를 한 후 아이의 가방을 등교하는 다른 친구 차편에 부탁했다. 통화하며 교통 지도를 하자니 수신호가 왔다갔다 엉망이다. 괜찮으니 집에 다녀오라고 교장 선생님께서 말씀 하시지만 추운날 이른 시간에 나보다 먼저 나와 있었을 맞은편 엄마에게 미안해서라도 자리를 지키고 싶었다. 어서 아이의 친구가 오길 애타게 기다려 주변을 둘러본다. 마침내 딸 아이 친구가 보여 반갑게 "@@아!" 이름을 불렀다. 아니! 그런데 이 녀석이...그 친구마저 빈손이다. 급히 가방을 부탁한 엄마에게 전화를 하니 아이가 놓고 내렸다며 차를 돌리는 길이라고 한다. 민폐도 이런 민폐가 없다. 6년을 멀쩡히 들고 다니던 가방을 하필이면 이렇게 보는 눈도 많은 날 여러 단계를 거쳐 전달받고나니 어느새 교통지도가 끝나는 시간이다.  


 교통 지도가 끝난 후 따뜻한 차라도 한 잔 하고 가시라는 교장 선생님의 배려도 마다한 채 쏜살같이 학교를 빠져 나와 함께 봉사한 엄마들과 커피를 들이부었다. 애써 담담하려 했으나 흔들리는 멘탈을 부여잡고 집으로 돌아와 보니 서두른 아침의 흔적이 여기 저기 흩어져 있다. 한 숨 돌리며 식탁에 앉는 순간, 이번엔 둘째의 숙제가 얌전히 식탁위에 놓여져 있었다. 헛웃음이 삐져 나온다. 괜찮다...괜찮다...나는 관대하다...나는 관대하다...

 

 내 이 녀석들 더없이 관대하게 아작(아름다운 작품)으로 남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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