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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을 Jul 27. 2024

집안일, 권리와 호의 사이

초등학교 5학년 셋째의 피구인 생활이 시작되었다. 대회를 앞두고 피구 유니폼을 받아왔다. 문을 열고 가족들에게 세상에서 최고로 멋진 런웨이를 보여준다. 가족들이 환호성을 지른다. 둘째가 화장실로 동생을 데려간다.


둘째 : 자, 여기 대야에 물을 받아. 담궜다가 비누로 비빈 다음에 물로 헹궈서 짜.

셋째 : 어떻게, 이렇게?

둘째 : 응 . 비누를 살짝만 해. 그리고 헹궈.


한동안 유니폼 세탁 방법을 알려주더니 물기를 짜서 가지고 나온다. 2년 내내 매일 밤 유니폼을 빨아 너덜거리게 했던 장인의 솜씨로 동생의 유니폼 세탁을 지도한다. 둘째는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압력솥으로 밥을 할 줄 알았다. 엄마가 아프면 계란 후라이를 하고 김치를 썰고 희고 따뜻한 솥밥을 지어 차려놓고 엄마를 깨우던 둘째. 물론 가끔이지만 말이다. 집안에서 오랫동안 엄마를 가장 많이 도와왔던 둘째가 중학교에 들어가자 가족이 집안일에 참여해 둘째가 겪는 집안일의 고통을 덜여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안일의 고통을 달래는 순서는? 우선 내가 가장 싫어하는 집안일부터.  내가 가장 싫어하는 집안일은 아무리 생각해도 순위를 정하기가 너무 힘들다. 다 싫고,  무조건 싫고, 막무가내로 싫다. 1위를 꼽자니 2, 3위들이 내게 미움받은 과거를 다 아는 이상 밀린 순위를 눈감아줄 것 같지 않다. 마치 변우석과 류선재 중에 하나를 고르는 것만큼 힘들다. 그래도 골라보자면 빨래다. 밖에 있기 때문이다. 추울 때 나가는 것도 싫고 빨래를 건조기에 넣는 것도 싫고 꺼내는 것도 싫고 그중 제일은 개서 정리하는 거다.


빨래를 개다 보면 뒤집어진 양말 때문에 속이 뒤집어진다. 이에 대한 잔소리와 짜증을 늘어놓을 때도 있었지만(하수의 전형) 이제는 그러지 않는다. 뒤집어진 채로 양말을 개놓는다.(조금 고수) 뒤집어진 채 개진 양말을 신을 때 본인이 알아서 뒤집든가 그대로 신든가 둘 중 하나다. 양심이나 사회성을 발휘해서 뒤집어서 옳게 신으면 좋고, 뒤집힌 채 그대로 실밥이 다 튀어나온 양말을 신는다면 벗을 때도 좋다. 벗을 때 다시 뒤집을 테고 양말은 원래의 올바른 방향으로 돌아와있을 테니 말이다.



빨래와 관련한 몇가지 공포가 있다. 그중 하나가 흰 빨래는 희게 빨고 검은 빨래 검게 빨고다. '진주 난봉가'의 여주인공 며늘아가는 남편이 오는 날 빨래를 하러 가서 흰 빨래는 희게 빨고 검은 빨래 검게 빨아 집에 돌아온다. 남편이 멀리서 오랜만에 집에 왔는데 사랑방에서 기생첩을 옆에 끼고 술을 처먹는다. 며늘아가 아홉가지 약을 먹고 목 매달아 죽었다. 흰 빨래 희게 빨고 검은 빨래 검게 빠는 시집살이 3년의 결말이다. 전통과 악습을 폐지하기 위해 흰 빨래 검은 빨래 섞어 빨기를 해왔다. 언니에게 물었다. 흰 빨래를 어떻게 하얗게 유지하지? 분리해서 빨아가 답이었지만 나는 끝내 해내지 못했다.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 집어넣고 가끔 탈색으로 해결한다.


다른 하나는 말끔하게 씻고 나와 드라이로 머리를 말리며 "엄마 내 교복은? 왜 안 빨아놓은 거야?"같은 말을 듣는 거다. 이건 엄마가 되기 전부터 가졌던 공포로, 이런 일은 절대로 당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교복을 때맞춰 빨아주고 다려주는 등의 일은 애초에 없었다. 빨래를 돌릴 때가 되면 돌리는 거고, 빨래가 되어 있지 않으면 그건 누구의 탓도 아니다. 정확히는 그 필요를 챙기고 알리지 않은 본인 탓이다. 대체로 주말에 빨래를 돌리지만 그러지 못할 경우, 학교 가기 전날 아이는 그 사실을 인지하고 교복을 빨아야 한다고 고지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누구 탓도 해서는 안 된다. 


그렇긴 하지만 내심 빨래가 부담스럽고 아이들의 교복이 제때 세탁되어 있지 않으면 미안한 것도 사실이다. 그래 빨래와 관련한 일들을 나누는 것이 먼저다. 분업이 시작되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둘째가 빨래를 돌리고 학교 다녀와서는 건조기를 돌린다.  

건조기에서 빨래를 꺼내오는 건 셋째 몫이다.

개는 건 모두 함께 각자 옷을 갠다.(완전 고수에 이름)


아직 어리고 초보이다보니 실수한다. 어제 전날 밤 건조기에서 물 빼는 걸 잊어버린 탓에 건조기가 돌다가 멈췄고, 아침에는 덜마른 퀴퀴한 옷들이 건조기에 뭉쳐 있었다. 아이들은 어찌할까 궁리한다. 밥을 먹다가 내가 넌지시 말한다. "엄마다 다려줄게. 그게 제일 빨라." 그러고 재빠릴 다린다. 다 다려지자 아들이 말한다. "엄마 고마워요." 아주 나이스. 공포의 '엄마, 내 교복~~"이라는 허들을 넘었다. 더 높은 허들은 아이들보다 남편이다. 


주말에 남편이 설거지를 하다가 짜증을 내며 주부로서의 내 커리어를 공격해서 크게 싸웠다. 1초도 고민 않고 농성 돌입. 다음날 아침 셋째가 설거지를 하고 있다. "엄마 기분 좋게 해드릴려고요"라고 말하며 크고 무거운 그릇을 씻는다. 셋째는 내게 깨달음을 주었다. 이번엔 설거지를 나눌 차례구나.


저녁 식탁을 맛있게 차린 다음, 엄마가 일과 육아와 집안일을 병행하기가 얼마나 힘든지 논리적으로 설명한다. 아이들도 수긍한다. 결론은 일주일에 하루씩 저녁 설거지를 해야 한다는 것. 아이들은 물흐르듯 자연스럽게 흔쾌히 승낙했다. <사자왕 형제의 모험>을 출간한 직후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이 다음처럼 말했다. "어린이는 아직 죽음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홀로 남겨지는 것을 무서워하지요." 그녀가 옳았다. 죽음보다 두려운 나홀로 설거지! 육아의 핵심은 조삼모사. 다 같이 돌아가면서 한다니까 불만이 1도 없다. 아무리 하찮은 일도 나 혼자 하면 불만이 치솟은 아이들인데 말이다월요일은 첫째, 화요일은 셋째, 금요일은 둘째, 토요일엔 남편이 맡기로 했다. 


나는 아이들이 설거지통의 설거지만 할 수 있도록 요리하는 동안 최선을 다해 요리 도구들을 모두 씼고 정리한다. 설거지통의 설거지만이 곱게 들어앉아있도록 최선을 다한다. 아이들은 훗날 스스로 요리하고 설거지하면서 놀랄 것이다. ;이거 한 그릇 먹는데 설거지가 왜 이렇게 많지? 분명히 엄마랑 살 때는 그렇지 않았는데.'


만화 <리틀 포레스트>에는 이런 집안일에 대한 깨달음을 주는 한 장면이 등장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엄마가 사라진다. 이제 딸이 혼자 살아갈 수 있으므로 엄마는 떠난다는 편지 한 장만 남긴 채. 이치코는 대도시 생활을 하다가 시골 마을로 돌아온다. 엄마가 해주었던 음식들을 스스로 해본다. 어느날 고구마순 껍질을 벗기며 이치코는 깨닫는다. 엄마의 나물이 그렇게 부드럽고 맛있었던 건 엄마가 재료의 껍질을 모두 벗겼기 때문이라는 걸.


집안일이란 그런 것 같다. 실제 해보기 전에는 '비결'이 존재한다는 것조차 모른다. 직접 해보면 비결이 있을 것 같지만 그 비결이란 게 모두 눈에 보이지 않는 혹은 관심을 두지 않지만 해야만 하는 자잘하고 섬세하게 반복되는 노동에 있다는 것, 또한 거드는 입장과 모든 걸 주관하는 입장이 천지 차이라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된다.


이렇게 해서 웬만한 집안일은 분배가 되었지만, 여전히 아이들이라 까먹고 자잘한 것들은 여전히 살펴야 한다. 설거지만 간신히 해놓은 설기지통을 비롯한 부엌을 치우고 정리하는 일도 여전히 많다. 이 집안일 분배가 습관이 되고, 몸에 저항이 없을 때까지 조련하는 일도 계속되어야 한다. 아이들은 이제 엄마의 서비스를 당연하게만 생각하지는 않을 테지.


서머싯 몸의 소설 <인생의 베일>에서 월터는 "대부분의 남편들이 권리로 여기는 나는 호의로 받아들였어."라고 말한다. 아름다운 아가씨지만 혼기를 놓쳐 영국 사교계에서 순위가 한참 밀려난 키티와 결혼한 월터가 바람이 부인에게 했던 말이다. 그는 정성을 쏟았다. 자신을 업신여기는 키티에게. 권리를 호의로 받아들이고,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소중하게 여겼다. 이런 마음, 그에겐 보답을 안겨주지 못했지만 무척 소중하다. 일상에서 가족끼리 소량만 가지고 있어도 화답을 받을 수 있다. 


집안일, 대체로 여성의 노동을 서비스받는 당사자들은 누리고 있는 것을 권리로 여긴다. 집안일을 담당하는 사람은 자신의 노동에 지치고 삶에 회의를 느끼면서도 최대한 고되고 지루한 집안일에 호의를 담고 보람을 느끼려고 하는데  말이다. 이 불균형, 길어진다면 외도하는 수밖에. 그 전에 밖으로 길을 내지 말고 안에서 길을 내야 한다. 당연하게 여기는 걸 호의로 받아들이도록, 저항을 느끼지 않도록 아이들을 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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