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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바라중독자 Sep 04. 2023

23 주연과 현정

          


 “어르신, 나 왔소.”

 “꽃 사왔어요? 언니가 꽃보다 예쁜데 뭐하러 사와요.”

 “이, 그려. 내가 꽃보담 이쁘제. 여짝 어르신도 이쁘당께.”

 “......”

 “아이고...... 보기엔 멀쩡하셔갖고 어째 이라고 되아부렀으까잉.”

 “사랑해요.”

 “이,이. 그려요. 배 안 고프요? 밥 묵었어요?”

 “예쁜 언니가 우리집에 놀러왔었어요. 내가 김치볶음밥도 해줬는데.”

 “잘했네이. 약 먹었어요?”

 “......”


 주연은 대강 대꾸를 하며 기록부를 펼쳐본다. 아침밥하고, 약도 드셨군. 곧 부엌에서 현정이 식사를 마친 식기를 치우고, 소파 근처 현정의 옷가지를 정리한다. 허리통증이 또 도지는 바람에 지난 일주일 현옥이 현정을 돌봤지만 현정은 원래 주연이 돌보고 있었다. 주연과 나이차도 크게 나지 않은 비교적 젊은 나이인데도 현정은 치매환자였다.      


 오늘은 현정을 데리고 병원에 가는 날이다. 평소에는 바깥에 나가지 않는 현정에게 병원에 가야한다고 설명하려면 스무고개 게임을 하는 것 같았다. 주연은 몸집만큼 마음도 넓은지 그것이 주연에게 스트레스가 되지는 않는다.      


 “어르신, 가고 싶은데 없어요? 밖에 나가서 나비 안 보고 싶어요? 나비?”

 “새?”

 “이, 새. 집에서 보믄 잘 안 보잉께 나가믄 잘 보일거인디. 나랑 나가 보까요?”

 “......”

 “새우과자 사러 가까요?” 

 “배불러요.”

 “그믄, 꽃보러 가까요? 오늘 선상님이 꽃보러 나오라고 혔는디.”

 “꽃 추워요. 오빠가 안개꽃같다고 했어요.”

 “안개꽃? 그려. 안개꽃 어디에 있나 나랑 나가보게.”

 “더워요.”

 “지금 겨울인디. 추워. 안 더울 때여.”

 “......”


 주연은 지칠법도 한데 한숨 한 번 쉬지 않는다.     


 “저거 텔레비 바바요. 텔레비. 구두신고 춤추네이. 저거 봐요.”

 “사람들이 구두신고 언니네 집에 들어가서 유리 깨졌어요.”

 “그 사람들 찾으러 가까요? 나가 혼내줄랑께.”

 “그러지 마요. 내가 다 치웠어요. 언니 데리고 와서 내가 김치볶음밥 해줬는데.”

 “잘했네이. 그럼 김치 사러 가까요? 언니가 김치볶음밥 먹고 잡데아.”

 “언니가 김치볶음밥 먹고 싶데요?”     


 비로소 눈이 반짝이는 현정을 발견하고 주연은 마음속으로 됐다, 하며 외쳤다.     


 “이, 언니가 김치볶음밥 먹고 자퍼서 울었디야. 어르신이 언넝 해줘야 혀.”

 “알았어요. 나 나갈거에요.”     


 어차피 매일 아침 화장을 곱게 하고 앉아 있는 현정이라, 주연은 그 상태 그대로 두꺼운 패딩을 입히고 목도리와 모자를 씌우고, 장갑도 단단히 끼웠다.     


 “어르신, 양산은 접어야 허는디.”

 “......”

 “어르신, 이거 줘봐요. 이건 놓고 가야여.”

 “......”     


 현정은 손에서 연보라색 양산을 꼭 쥐고 놓지 않는다.      

 “아이고 참말로, 선상님이 이거 갖고 오믄 혼난다고 혔당께.” 

 “언니가 사준거에요.”

 “이, 언니가 오늘만 놓고 가라고 혔어요.”

 “아니에요.”

 “언니가, 놓고 가야 김치 살 수 있데요.”

 “......”

 “그믄, 접기만 하고 갖고 가게. 언넘 줘봐요. 내가 접어줄팅게.”

 “......”     


 수월하다 했더니 역시나 양산을 손에 놓지 않는 현정이었다. 가끔 정신이 돌아올 때도 있어서 주연은 조금 기다려 본다.     


 “......”

 “......”

 “......안 접을거에요?”

 “......”

 “그믄 나도 모르겄네이. 김치 사러 못 가제.”

 “......나쁜년. 내 양산 뺏을라고.”

 “오메, 어르신 그런 말 안 하드니 으디서 못된 말을 배워부렀디야?”

 “......”     


 갑자기 입술을 한껏 오므린 채 주연을 쏘아보는 현정은 손에 양산을 꼭 쥔 채 주연을 노려본다. 주연은 기분이 나쁘기보다, 최근 가끔 한번씩 안하던 행동을 하는 현정이 걱정되었다.      


 “알았어요. 알았응께 걍 들고 가게. 이?”

 “이쁘죠? 언니가 사준 거에요.”

 “아따 부럽네이.”


 양산을 그냥 가지고 가자는 말에 금새 헤벌쭉해지는 현정을 보며 주연은 안쓰러운 마음에 양산 든 현정의 손을 꼭 잡는다. 패딩에 양산을 쓴 채 집을 나서는 현정을 데리고 주연은 아무렇지도 않게 현정의 집을 나선다. 마당에는 명주가 키우던 채소와 꽃들의 남은 줄기들이 노란 빛으로 시들거리며 겨울을 나기 위해 몸을 잔뜩 움츠리고 있다. 주연과 현정은 병원으로 향한다. 아니, 김치를 사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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