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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바라중독자 Oct 16. 2023

버섯 2부, 사랑초

1 사랑초

      

 명주는 오랜만에 돌아온 월차를 아들과 함께 보내기 위해 우선 엄마가 입원해 있는 병원에 들르기로 했다. 치매는 완치도 없고, 치매약을 먹더라도 오로지 상태가 더욱 나빠지는 것을 방지할 뿐이라고 들었는데, 이번에 현정에게 적용한 신약은 효과가 좋았다. 병원장인 선재의 배려 덕분에 현정이 병원 VIP실에서 편하게 지낼 수 있었던 것이, 현정과 명주 모두에게 도움이 되었다. 현정은 집 소파에 앉아 하루를 그냥 보내고 있을 때에 비해 상태가 많이 호전되어 이제는 제정신으로 돌아오는 시간이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엄마, 나 왔어.”

 “어, 왔어?”

 “엄마가 말했던 책 빌려왔어. 여기.”

 “그래, 고맙다, 우리 딸.”

 “오늘 사랑초에 물 줬어?”

 “어, 그럼. 얘는 예쁘게 생긴게 잘도 크더라. 낮에는 활짝 폈다가 저녁이 되면 문 닫고 피곤하게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같아.”

 “엄마. 약도 잘 챙겨먹고, 나아져서 나 정말 좋아. 일할 때 실수도 많이 줄은 것 같아. 오늘 나 진오 데리고 놀다올게.”

 “그래. 걱정 마. 엄마, 병원에서 하란대로 열심히 해볼게. 선재가 연구보고서랑 쓴다고 하니까 내가 잘해야지...... 음...... 오, 올 때 포도 사와요. 이모 주고 싶어요.”

 “알았어요. 엄마, 이모 줄 포도 사올께요.”     


 현정은 얼굴을 찡그리며 상관없는 말을 이어간다. 온전했던 정신이 나갈 때 머릿속에서 뭔가 머뭇거림이 느껴지는 듯 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며 조금씩 나아졌던 것을, 지난 1년 간 보아왔기에 이제 명주는 걱정하지 않았다. 저런 변화를 스스로 느끼는 현정을 보며 오히려 안심이 되었다. 엄마와 보낼 시간이 줄어들까 걱정하듯, 명주의 손을 잡고 있던 진오는 엄마를 보챈다.     


 “엄마, 빨리 가자. 빨리.”

 “알았어. 가자.”          






 “어머니, 아드님 데리고 와요. 안 그러면 입원이 안된다니까요?”

 “아 내가 다 하면 되아. 왜 자꼬 아들을 데꼬 오라그려?”

 “아, 아이고, 어르신, 병원 규정이 그렇데요. 여기 선생님들도 어쩔 수가 없는가베요.”

 “돈도 내가 다 가지고 있고 나 말짱한디 왜들 그려?”

 “선생님들, 미안혀요. 나가 어르신하고 아드님하고 얘기해갖고 다시 오께요잉.”     


 주연은 투덜거리는 유할머니의 팔을 붙잡고 밖으로 이끈다. 현정이 선재네 병원 VIP실에 입원하고 나서, 주연에게 새로 배정된 어르신이었다. 80세가 넘은 나이에도 걸음을 꼿꼿하게 걷는 유할머니는, 젊은 시절 시장에서 큰 채소가게를 운영하여 돈을 꽤 모아두었다는 소문이 있었다. 셈에도 밝고, 마르고 왜소한 몸이었지만 여느 남자 사장님들보다도 드센 성격에 대찬 아줌마로 소문도 났었다고 한다.      


 유할머니는 주연의 손을 세게 뿌리치며 병원 복도 한복판에서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외쳤다.      


 “아, 이거 놓아! 놓으랑께!! 이것들이 지금 나 늙었다고 무시하는거여? 쥐뿔도 없는 것들이, 내가 돈 갖다주면 다 해줄라믄서 왜 자꼬 아들을 데꼬 오라고 그라는겨? 우리 아들 바빠 갖고 니들 상대해줄 시간도 없다고! 우리 아들이 니들하고 같은중 아냐? 엉?”

 “아이고오, 참말로, 어르신 왜 또 이러신데요.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뭐를 또 그러긴 내가 뭐를 그려? 아, 놓아! 놓으라고!!”     


 장군같은 덩치의 주연은 큰 손으로 유할머니를 붙잡고 거의 들다시피하여 병원을 빠져나간다.      


 “어르신, 참말 왜 이러신다요? 잉?”

 “내가 뭘 그려?”

 “병원이라 사람 목숨 가지고 책임을 지는디, 다 절차가 있고 법칙이 있는거 아이요? 어르신처럼 떼만 쓴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니랑께?”

 “니가 뭘 안다고 씨부려쌌냐? 니 자식이 의사라도 되냐? 엉?”

 “이, 내 자식이 의사여. 그서 나가 잘 알아서 그라니까 어르신은 좀 가만 있으요.”

 “뭐여? 이년이 뭣을 잘났다고 나를 가르치려고 들어? 너 가만 있어.”

 “어르신 또 뭐 하실라고 그라요?”     


 하루 이틀이 아닌 듯, 주연은 한숨을 쉰다. 멀찍이, 주름진 손에 든 핸드폰을 바라보며 눈을 찌푸린 채 천천히 번호를 누르고 폰을 귀에 댄 어르신, 보나마나 센터장에게 전화를 걸겠지.     


 “여보셔? 이, 센터장이여? 나, 유정례여. 직원들 교육을 어떻게 시키간디 이 여자가 나를 가르칠라고 들어? 엉? 내가 여그 센터에 주는 돈이 얼마인디, 나한테 이렇게 혀? 엉? 아주 니들이 배가 불렀지? 아, 자꼬 아들을 데꼬 오라 하잖여. 그려. 그럼 들어가서 얘기허자고.”


 유할머니는 주연을 매섭게 한참 째려보다가, 센터로 가자고, 하며 톡 쏘아붙인다. 주연은 택시를 잡아타고 노인복지센터로 향한다. 도착하자마자, 주연은 센터장에게 호출된다.     


 “쌤, 어떻게 된거에요? 유정례할머니 왜, 또?”

 “아시잖아요. 병원에서 보호자, 자식 데리고 와야지 입원 절차 해준다네요.”

 “에휴...... 저분을 진짜 어쩌면 좋데요. 아들 죽은지가 언젠데. 아직도 저렇게 못 받아들이시면 어쩔까 싶어요.”

 “얼마나 남았어요?”

 “두 달이요.”     


 유할머니는 사실 정부보조금으로 센터에서 데리고 있는 할머니였다. 할머니가 모아두었다는 돈은 수 년 전 사업하는 아들이 모조리 가지고 도망가려다가 사채업자들에게 걸려 길 한복판에서 맞아 개죽음을 당했다고 들었다. 유할머니의 기억은 찬란했던 과거, 자신이 쌓아둔 재력이 있었고 아들의 사업이 잘 되어가는 듯 했던 과거에 멈춰 있었다. 이 곳에서 유할머니를 데리고 있을 수 있는 기간은 두 달 뿐이었다.     


 “혹시, 쌤 조카분께 부탁해보면 안될까요? 유정례할머니 집도 없고 자식도 없고, 여기서 나가면 진짜 길바닥에 앉으셔야하는데.”

 “선재네도 복지센터가 아니고 병원이라서 될란가 모르겄네요. 병원도 결국엔 장사라.”

 “그렇죠. 어쨌든 제가 최대한 모시고 있어는 보려구요.”

 “센터장님도 고생 많으시네요.”

 “쌤이 더 고생이죠. 저 성격 다 받아주고.”


 마침 선재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이모, 병원 왔었어?”

 “이, 이따가 집에서 얘기허자. 어르신 아직 시간이 남아갖고.”

 “알았어, 이모.”     


 주연은 남은 2시간 동안 유어르신을 어떻게 달래면 좋을까 생각에 잠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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