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면...
그림커티는 아이들이 부모를 화나게 하면 나타나는 괴물이다. 이 영화는 개인적으로 완성도가 높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어떤 영화나 책이든 개인에 따라, 각자의 해석에 따라 다른 교훈을 얻을 수 있으며, 얻는 것의 개수도 다르다는 것이다. 계속 탐구하고자 하면 하나의 연구대상이 될 수 있고, 그냥 본 것의 여운으로 만족하면 영화로 남는 것이다. 나는 이 영화가 되게 철학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자녀에 대한 분노가 커질수록 괴물은 자녀를 더 크게 해친다. 아마 이 그림 커티라는 괴물은 부모들의 속마음 중 분노를 대변하는 캐릭터인 것 같다. 부모님은 자녀를 키울 때 많은 것을 포기하기도, 참기도 한다. 아이들 앞에서 부모다운 모습을 보이기 위해 아무렇지 않게 행동해도, 결국 다 안에 쌓여서 언젠가 한 번에 폭발한다.
부모도 사람이기에 자식에 대한 원망을 한 번 이상은 마음속으로라도 해봤을 것이다. 부모님이 화나셨을 때 대화를 시도해본 사람들은 말이 잘 안 통한다는 느낌을 가지거나 일방적으로 혼나는 게 상황을 종결시키는 빠른 방법임을 알 것이다. 영화의 맨 마지막에 아샤는 부모님과 자녀 간의 이해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부모가 자녀를 이해해주길 바란다면, 자녀도 부모님의 입장을 똑같이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 어른이라서, 부모라서 무조건 먼저 참고 이성적으로 행동해야 하는 존재가 부모가 아님을 알려준다. 어른이고, 부모이기 전에 인간이고, 감정이 있다. 부모여서, 나보다 나이가 많은 어른이니까, 무조건 이해해줘야 하고 희생해야 하는 건 아니다.
물론 반대로 자녀가 어리다고,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길로 질질 끌고 가려고 하면 자녀는 의존적인 인간이 되어버린다. 어려도 어느 정도 생각이 다 있다. 서로에 대한 이해는 대화를 통해서 이루어지지만, 나는 사실.. 대화를 포기했다. 성격이 정반대인 가족 구성원이 3명이나 있는데, 그들과 대화를 매번 시도할 때마다 상처를 받기 때문이다. 매번 그림커티에게 목이 졸렸다. 화난 게 아니라 원래 화법이 그렇다고 주장하는 그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들의 그림커티를 피하기 위해서 최대한 마주치지 않는 방법을 선택했다. 마주치는 시간을 줄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었고, 효과는 대단했다. 그림커티는 부모 자식 간에만 있는 괴물은 아닌 것 같다. 형제이거나 남매 사이에 발생하는 갈등을 먹고 자라는 괴물일 수 있다. 서로 대화를 포기하고 마음의 문을 닫게 되고 서로 한마디도 안 지고 원수 같은 사이가 된다면 그건 서로의 그림 커티가 싸우고 있기 때문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