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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긍정 오뚜기 Dec 27. 2023

2023 한 해를 정리하며...

Final. 죄책감과 감사함에 대하여...

 문득 캠퍼스를 거닐다가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내가 부모님께 느끼는 감정은 분명 감사함에서 시작되었지만 어느덧 이는 강하고 슬픈 죄책감으로 변질되었다고. 처음에는 분명 따뜻한 노란색이었는데 어느덧 검은색에 가까운 남색이 되어 버렸다. 엄마 아빠는 화날 때마다 내게 양심이 없는 사람이라고 한다. 감사함은 쥐뿔만큼도 모른다고. 하지만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내게 감사함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감사함은 오히려 죄책감에 가깝다.  그래서 부모님께 그 어떤 신세도 더 이상 지고 싶지 않고 하루빨리 독립하고 싶다. 이미 받을 만큼 다 받아놓고 이러는 게 부모님 입장에서는 웃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식이라는 이유로 부모님께 그만한 호의를 받으며 살아가면서 나도 단 하루도 마음 편한 날이 없었다. 차라리 나에게 쓸 돈을 더 이상 안 썼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나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자책했었다. 


  그래서 이제는 집안일을 전부 다 해놓고 내 할 일을 하고 있을 때 부모님이 와서 고맙다고 하면 당연한 건데 고맙다고 하는 게 이상하게 느껴진다. 예전 같았으면 바빠 죽겠는데 왜 시키냐고 했을지도 모른다.  항상 들었던 소리지만 부모님이 그 만한 돈을 들이고도 우리가 인서울을 못한 것에 대해 남과 비교하며 뭐라고 할 때도 더 이상 아무런 감흥도 없다.  죽도록 죄책감이 드는 것도 아니고 남과 비교한다고 억울하지도 않다. 다만 조금은 서글퍼질 뿐이다. 나 자신에 대해 서글픈 게 아니라,  더 나은 자식을 두지 못한 부모의 입장에 과몰입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이미 이렇게 되어버렸는 걸.  부모님도 나도 이에 대해 속상해하고 후회하고 미련을 가져봤자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는 걸 잘 안다. 그래서 이제는 둘 다 우울하게 있지 않게 하기 위해서 나는 일부로 말의 화제를 돌린다. 


 다행히 부모님도 우울한 얘기는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으신지 내가 화제를 돌리면 이제는 그에 잘 따라주신다. 아빠는 우리에게 더 이상 짐이 되기 싫어서 어느 날 멀리 산속으로 떠나버릴 거라고 하신다. 연락처도 안 남기고 다 버려두고 말이다. 나는 아빠가 그럴 수 있다고 믿지는 않는다. 그리고 만약 그게 아빠의 선택이면 존중할 생각이다. 다만 나는 남겨질 나와 동생이 걱정되는 게 아니라 아빠가 걱정된다. 아빠는 항상 엄마가 없으면 솔직히 제대로 하시는 게 없다. 슬프지만 이는 일종의 분리 불안에 해당하는 것 같다. 아빠는 지금까지 엄마를 너무 의지해왔다. 비슷한 성격이라서 살아가면서 누군가를 엄청 의지하는 마음을 이해한다. 하지만 그런 아빠가 혼자서 나가 잠적하고 살겠다니... 여간 걱정이 되는 게 아니다. 오빠는 이미 직장인이라서 걱정할 것도 없다. 동생이 가장 걱정이다. 하지만 아직 엄마 아빠가 이 집을 나간 것도 아니니 너무 일찍 걱정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상상을 해보자면 나 자신도 걱정된다. 내가 교수님 일로 우울해하고 있을 때 엄마는 한숨을 쉬며 내가 아빠랑 정말 똑같다면서 핀잔을 주었다. 그러고는 털어 내라며 우울해하고 있으면 화낼 거라고 장난스레 말하며 밖을 나갔다. 그리고 아빠가 같이 나간 사이에 엄마에게 말했는지 부모님은 나중에 일하고 돌아와서 내게 같이 영화를 보자며 끌고 나갔다. 동생도 같이 나가서 영화를 보고 같이 영화에 대해 신나게 떠들고 나니 걱정이 사라짐과 함께 나는 교수님에 대한 일을 다 잊을 수 있게 되었다. 오빠가 내가 이렇다는 걸 엄마에게서 들었으면 다른 방식으로 또 잔소리를 던져 댈 것이다.  그렇게 신경 쓸 거면 애초에 잘못을 하지 말던지, 아니면 이미 일어난 일이니 그냥 잊어버려야지 왜 그걸 아직도 생각하고 있냐고 뭐라 하겠지. 이제는 눈앞에 다 그려질 정도다.  오빠와 동생은 엄마를 닮았고, 나는 아빠를 빼다 박은 정도이니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미 엄마한테 잔소리를 많이 들었으니 이 일을 오빠에게 말하지 말아 달라고 엄마한테 부탁했다. 다른 방식으로 팩트 폭격을 당하기에는 심신이 약해졌다고 말이다. 


 하지만 엄마는 웃으면서 싫다고 했다. 그럴 줄 알았다. 


 뭐, 오빠 잔소리도 거의 독설에 가깝지만 나는  그동안 어느 정도 면역을 쌓아 마음이 단단해졌기 때문에 두려울 건 없다.  무엇보다 내게 이런 가족이 있다는 것에 새삼 감사해지는 중이다. 더 이상 색이 바랜 죄책감 속에 스스로를 가두지 않는 나 자신을 발견하며 나는 다시 밝은 노란빛의 웃음을 지었다.  과거의 나 자신을 놓아주고 미래를 위해 현재에 앞만 보고 달려 나가는 일이 이제는 가능해질 것 같다. 이번에도 꽤 오랜 시간의 준비기간이었지만 그만큼 앞으로 다가올 시련들에 대해서 나는 떳떳하고 쫄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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