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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예와 심리학에서 받은 위로

나만의 숨구멍을 찾다

by 몽도리

개강 첫 주, 학업과 일을 병행하는 삶이 시작되었고, 나는 점점 마음의 여유를 잃어갔다. 학교에서 대부분의 강의는 현실을 직시해야 하고 어떻게 하면 더 이성적으로 더 논리적으로 살아갈지, 정보를 어떻게 의심하고 수용해야 하는지 등, 경쟁과 평가 그리고 미래에 대한 얘기를 담고 있었다. 그게 싫지는 않았다. 더 자극이 되어 나의 현재 삶은 독기를 자양분 삼아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했다. 그러다가 그저, 그저 졸업 여건을 맞추기 위해 선택한 교양 과목들인 '생활 원예'와 '마음의 문제' 각각의 OT를 금요일에 듣게 되었다. 생활 원예에서는 그냥 식물만 다루는 줄 알았다. 하지만 교수님은 식물을 통해 어떻게 마음을 치유하는지에 대해 설명하셨고, 우리에게 많이 웃으라고 하셨다. 연구결과에 성공을 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다 많이 웃는다는 것이며, 면접관들도 미소를 띤 사람들을 좋게 본다고 하셨다. 유머는 지혜에서 비롯되며, 마음의 여유가 없다면 성공이고 뭐고 다 소용이 없다는 말도 하셨다. 그러면서 정원사이자 연구가이신 교수님은 자신의 손을 거쳐간 정원들을 보여주셨다. 정말 그냥 선택한 과목이었다.

사진 속 녹음과 꽃들은 아름다웠다. 플렌테리어에 대한 설명을 들을 때는 고개를 앞으로 빼내며 집중해서 들었다. 사회봉사의 중요성과 현대 사회에서의 소통의 중요성, 그리고 오랫동안 자신이 선택한 직장 혹은 길에서 머물 수 있는 방법은 다 관계의 유지에 있다고 하셨다. 가장 좋은 방법은 또 '미소'와 '웃음'이었다. 그래서 듣고 결심했다. 학원에 가면 미소 지으며 먼저 크게 인사하겠다고, 그 순간을, 현재를 행복하게 살 거라고. 또한, 앞으로 작게나마 정서에 도움이 되는 식물을 키우겠노라고. 오티가 끝나자 나는 강의실의 나머지 학생들이 다 나가기를 기다렸다가 교수님께 다가갔다. 그러고는 딱 이렇게 말했다. "교수님,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교수님의 오늘 강의에 감명을 받았습니다. 학업과 일의 병행으로 마음의 여유가 사라진채 미소를 잃어가고 있었는데 오늘 강의 덕분에 긍정적으로 살아갈 힘을 얻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처음 만난 사이였다. 교수님은 활짝 미소 지으며 생판 남인 나를 안아주셨다.

그분은 중년의 우아함과 품격을 갖춘 여성 철학자처럼 보였다. 나도 비슷한 나이가 되면 저렇게 자신의 생각으로 타인에게 위로와 울림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롤모델이 너무 많아도 문제인데, 나는 이제 롤모델보다는 그냥 내가 이런 좋은 어른들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살고 싶다. 나에게 숨구멍이 생긴 샘이었다. 그전에 들었던 '마음의 문제' 강의도 마찬가지였다. 교수님은 우리의 편의를 중요시하시고 스트레스는 절대 주지 않으려 하시는 분이셨다. 그리고 강의와 과제 수업은 자기 자신을 치유해 나가는, 즉, 자신에 대해 서술하고 파악하고 알아가는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나는 거기서 자신감을 얻었다. 이건 내가 평소에 습관처럼 계속하고 있는 일이 아닌가. 세상을 살다 보면 힘든 일들은 있기 마련이지만 어떻게 하면 마음과 감정을 잘 다스릴 수 있는지에 대한 해결방법에 근접하게 다가간다는 게 마음에 들었다. 나는 이제 금요일이 기대되기 시작했다. 그 선하고 강한 에너지를 다시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다.

두 분의 오티를 들으면서 느낀 것은 '말 한마디 한마디로 사람에게 이렇게 울림을 줄 수 있구나'였다. 고시원으로 향하는 길에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학교에 있는 식물들을 하나하나 보면서 웃으며 왔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이젠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이미 행복했다. 이제는 식물만 봐도 미소가 피고, 다시 내 삶의 우선순위를 '나'로 둘 수 있게 되었다. 강의를 듣고 이렇게 내 솔직한 마음을 전한 건 처음이었다. 답답하기만 했던 스스로가 빛나는 순간이었다. 이제는 어느 정도의 확신이 생겼다. 나는 내 삶의 밸런스를 썩 괜찮게 맞추며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긍정적인 마음과 미소와 함께면 말이다. 더 이상 누군가에게 기대지 않고 스스로 정서적 지지대를 구축할 수 있는 연습을 할 수 있다. 내 마음의 정원에도 꽃이 피고 음지에 있던 식물들이 고개를 빼꼼 내미는 계기가 되었다. 거기에 살짝의 햇빛을 비추는 계기였다. 원래 존재하던 정원에 물을 주고 소중히 여기게 되어 기쁘다. 항상 스스로 마음속의 꽃을 꺾고, 이파리를 뜯어버리고 뽑고 다시 심는 과정만 반복하다가 이미 있는 걸 존중하는 법을 배웠다. 나도 좀 더 크면 타인의 마음의 정원에 볕이 들게 해주는 한 마디 한 마디를 던지고 싶다. 같이 행복하면 좋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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