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전환점을 행복한 마음으로 받아들이자
그동안 나는 나 자신을 괴롭혔다. 남들이 나에 대해 안 좋게 말하면 그대로 투영시켜 그게 맞다고 믿었고, 내 자존감을 깎아내리는 것을 그대로 둔 것뿐 아니라 나 자신도 가담했다. 그렇게 지하바닥까지 뚫고 가서 스스로를 상처 입히기를 반복하면서 과거의 나는 죽었다면서 새롭게 살 거라 다짐했다. 하지만 그 방법은 잘못된 것이었다. 나는 그걸 비로소 깨달았고 여러 번의 감정적 고비를 넘고 나서야 스스로를 사랑하기 시작했다. 그것도 어찌 보면, 같은 패턴의 습관을 지녀온 사람에게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었다. 나는 이제 남들이 뭐라 하든 안 된다고 하든 뭐라고 지 X하든 상관하지 않고 무조건, 국제교류코디네이터가 될 것이다. 길은 정했다. 이제는 주변 큰 그림을 천천히 살펴보면서 곡선을 따라가면 된다. 직선으로 달리려고 하면 초반 에너지 소모가 심하다 그러니 조급해하지 않고 무조건 믿을 거다. 절대적인 믿음을 만들어서 그 누구도 짓밟고 무너뜨릴 수 없도록 할 것이다. 그게 부모님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그 믿음이 있으면 무엇이든 가능하다. 그 단단한 마음이 이제야 조금씩 생기기 시작한 듯했다. 미소가 나왔다. 아직도 내 삶은 학원 선생님과 대학생 사이에서 흔들리며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온전히 버리진 못했다.
하지만 난 스스로를 믿기 시작했다. 상황이 어때도 포기하지 않겠다고 가장 기본적이고 당연한 믿음을 가지기로 한 순간, 나는 행복해졌다. 평온해졌고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이유는 단 하나, 내가 될 걸 나는 아니까. 그리고, 내가 원하니까. 그거면 더 이상 다른 이유는 필요 없다. 나에게는 큰 행운이 왔다. 내가 하고 싶은 걸 일찍 깨달은 것이다. 물론 짧은 그 기간, 2년 동안 다양한 일들이 있었다. 자퇴, 재도전, 응급실... 말로는 다 할 수 없는 심적 고통을 몰아서 겪은 느낌이다. 덕분에 나는 앞으로 가고 싶은 길을 설정하고 나아가게 되었다. 그 꿈과 관련된 활동이나 강연을 들으면 설렜다.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는 인생의 일정한 시기에서 그 설렘은 희망과도 같다. 그리고 더해진 신념. 나는 지금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다. 안갯속에서 길이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힘들어했고 치열하게 고민했던 과거의 나에게 감사하다. 그리고 이제는 작별인사를 보낸다. 나는 미래를 보고 나아가야만 하기에. 내가 원해서 내가 선택한 길을 걸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를 깨달았다. 모두 각자 다른 배경에서 다른 시작선에서 걸어가겠지만 그 과정에서 느끼는 아픔과 고통은 비교대상이 아니다. 각자 힘들 때마다 계속 누가 옆에서 지켜본 게 아니기 때문에 그걸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다.
그런 과거를 비난하고 질책하는 것은 스스로를 괴롭히는 일이다. 왜 내가 나를 괴롭혀야 할까. 남들이 그러면 그들이 나쁜 것이니 응징을 하겠다고 생각하는 게 당연한데 내가 나를 괴롭힐 때는 왜 당연하게 여기는지 의문이 들었다. 아니, 그걸 응징하려고 자해를 한 걸지도 모른다. 내가 나를 지키기 위해서. 애초에 스스로를 괴롭히지 않는 게 맞다. 그건 또 하나의 괴롭힘이 추가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래서 타인에게 섣부른 조언도 그들이 요구하지 않는 이상 하지 않을 생각이다. 그들에게 일방적인 조언은 주제넘은 일이다. 모두의 삶은 고유하고 소중하기에 난 원하는 사람 아니면 그 사람의 인생이나 그 무엇에도 더 이상 왈가왈부하지 않기로 했다. 내 삶이 소중한 만큼 타인의 삶도 소중하니까. 서로 존중해야 할 가치. 남이 존중하지 않는다고 해서 나도 똑같이 할 생각은 없지만 말이다. 이래서 말을 적게 하고 행동하라고 하나 보다. 원한다, 간절히 원한다. 삶의 또 다른 전환점에서 나는 무조건적인 지지를 나 자신에게 보낸다. 믿는다,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내가 해내고 그보다 더 넘어설 수 있다는 사실을. 이 소중한 마음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는 것이 사실, 팩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