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이란 책에서 써 내려가는 페이지... feat. 심리학
나는 현재 '정신역동'과 '인본주의' 사이 '인지주의'를 가진 채 갇혀 있다. 정신역동으로 인해 과거의 패턴과 신체화 증상이 사라지지 않는다. 여전히 불안하고 회피하고 싶고, 행동으로 옮기는 게 버거울 때가 있다. 하지만 이제는 내 감정을 인지하고 그에 대한 해석을 다르게 하는 '인지주의'를 실천에 옮길 수 있다. 인지주의는 일어난 현상에 대한 해석이 감정과 행동을 낳는다고 했다. 그럼 현재 알바, 학업, 비교과 활동, 경제적 자립 등 여러 가지를 가지고 있는 나는 어떻게 인지해야 할까. 과거 같으면 다 포기하고 싶은 시련일 뿐이었을 긴 밤이 이제는 한계를 넘어설 기회이자 성장의 발판이 되었다. 새벽 6시까지 이렇게 멀쩡하게 깨어있어 본 적은 처음이다. 나는 잠도 많고 굼뜨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는 과거의 환경과 학습된 패턴에 의해 만들어진 사고라는 걸 깨달았다. 또한 우리 몸과 정신의 (메커니즘은 : 신체 증상-> 감정 -> 행동) 이렇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거꾸로 해서 매듭을 푸는구나. 행동을 바꾸면 감정이 바뀌고 나타난 신체화 증상(소화불량, 근육경직, 불안으로 인한 떨림 등)은 완화되는 거였다.
그래서 자기계발하는 사람들이 행동을 해서 즉, 몸을 움직이라고 하고, 하기 싫은 일을 반복해서 하는 수밖에 없다고 하는 것이다. 심리학 강의를 듣기 시작하면서 나는 대중문화 다음으로 내가 관심 있는 분야, 아니, 어쩌면 예전부터 좋아했는데 마음의 준비가 안 돼서 빠지지 못했던 심리학에 푹 빠지게 되었다. 그냥 아는 것에 그친다면 그저 현상을 읽고 끝내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요즘 드는 생각은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한 다음에 행동하는 것이다. 아프고 상처 입었다고 멈춰 서서 어둠에 빠져나오지 않으면 그저 아프고 상처 입은 사람으로 남는다. 행동을 해서 바꾸려 노력하면 극복하려는 사람이 되고, 결과적으로 시간이 지나 그때도 추억할 수 있는 사람은 극복한 사람이 된다. 예전에는 아무리 해도 행동으로 옮겨지지 못해서 억울했었다. 스스로를 상처 입기만 한 사람으로 나둬야만 했던 어두웠던 시절이 싫었다. 하지만 그 기간이 없었다면 현재 깨달음과 실천의 습관화가 안 됐을 것이다. 사람에게는 '항상성'이라는 게 있다고 한다. 몸은 우리가 스트레스 상황에 처했을 때, 원래의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여러 신체화 증상을 불러오며 쉬게 만들고 멈추게 만든다.
그러다가 너무 소진되었을 때, 과거의 패턴까지 불러온다. 나는 그래서 이에 대해 생각을 해본 결과, 나의 항상성을 바꿔놓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나의 과거 패턴이 다시 돌아올 거라면 미래의 나에게 과거의 패턴은 현재의 나다. 현재의 내 패턴을 바꿔놓고 내가 원하는 버전으로 만들어놓는다면 미래에 내가 다시 과거로 돌아가려 해도 결국 만족하는 경지에 이르지 않을까란 생각을 했다. 그러기 위해 지금 내가 열심히 살고 있다는 생각에 도달했다. 무기력한 것도 잠을 많이 자는 것도 몸의 항상성에 의한 것이고 호르몬, 세로토닌 등 다양한 이유가 존재한다. 현대사회에서 사람들은 이런 몸의 신호들을 '핑계'라고 부른다. 나는 그냥 받아들이고 싶다. 그냥 '내가 지금 힘들구나. 몸이 또 항상성을 찾네.' 이렇게 생각이 끝나면 그걸 해결하기 위한 행동을 할 생각이다. 내가 상황에 대한 해석, 즉, 내 인지를 바꾸기 위해 시도하는 방법은 내가 듣는 음악, 보는 인스타의 릴스까지 긍정확언으로 가득 채우는 것이다.
반복적으로 희망찬 가사와 긍정확언에 노출이 되면 생각 패턴, 더 나아가 시냅스와 뉴런까지 내가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사실 사람이 탈진 상태에 오면 타인의 말을 투영하게 된다. 있는 그대로 남이 뭐라 하면 자기가 그 말과 같아지는 줄 알고 스스로 주눅이 들고 자기혐오를 하고 내면의 비판자에게 밥을 떠먹이고 있다. 그렇게 하지 말고 어차피 그렇게까지 될 거, 이왕에 좋은 말로 가득 투영되게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사람이 투명해진 상태고 모든 말이 자신을 향한 말인 것처럼 느껴진다면 차라리 타인의 좋은 말이라도 자기 걸로 만들게 힘을 빼고 아침마다 틀어놓고 노래도 듣는 게 좋을 것 같다. 실제로 나는 효과가 있었다. 이제는 자신감 있는 사람들의 말이 어느새 나의 일부가 되었다. 남의 말에 휘둘릴 거면 차라리 자신에게 좋은 걸로 휘둘리자. 그리고 반대로 깎아내리는 말을 회피해 버리는 것이다. 나의 감정은 내가 결정할 수 있다.
상황에 따른 해석에 따라 감정이 결정된다 하지 않는가. 그러니 내 해석을 이제부터 바꿔보겠다. 절망은 희망으로, 좌절은 극복으로 힘듦은 성공으로, 어떻게 바꾸든 말의 힘을 믿어보려 한다. 그러고 나서 세운 내 인생에서의 단 한 가지 룰, 절대 자책하지 않는 것. 세상 사람 심지어 부모조차도 나를 욕한다면 나는 큰 소리로 외칠 것이다. "듣지 마, 몽돌아!! 너 정말 잘 살고 있어. Let them!! 다들 그러라 그래!! 그래도 너는 너한테 사랑한다고 크게 말해!!" 진짜 앞에서 그렇게 중얼거려 볼 생각이다. 그러면서 미친 것처럼 스스로를 꽉 안아줄 것이다. 원하는 대로 화장을 하고 yung baby tate의 I am을 들을 것이다. 그리고 감정을 담아낼 그릇이 없어 방황하고 있는 그들에게 해답을 제시할 것이다. 그 그릇을 깨뜨려버린다고 해도 말이다. 나를 포함한 그 누구도 나를 다치게 하지 못하게 스스로를 지켜낼 것이다. 그 방법을 이제는 좀 터득한 것 같다. 나를 사랑까진 못하겠다면 지금은 나를 욕하지 않고 모든 걸 자신의 탓으로 돌리는 짓을 그만하면 된다. 나에게 하지 말아야 할 것부터 지키면 결국 그게 나를 지키는 일임을 깨닫게 된다. 뭔가를 하려고 하는 것보다 아프지 않기로 결정했으면 더 이상 스스로를 향한 흉기를 드는 것을 그만해야 한다. 그 흉기는 타인이 될 수도 있고 자책이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