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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이 일시적인 이유

상황이 일시적이기 때문이다

by 몽도리

1년 동안 노력했던 것의 어느 것의 결실도 안 보인다고 생각해 세상이 미워 보일 때쯤, 국제화 장학생에 선발되었다. 백만 원가량의 돈... 내 버킷리스트가 장학금을 이 만큼 받아보는 것이었다. 사실 될 줄은 몰랐다. 우리 학과에 영어 잘하는 사람들은 널리고 널렸으니까. 하지만 지난 중간고사 중간에 토익 시험 보러 간 게 헛수고 아니라는 걸 입증하게 된 순간, 지난날의 안 좋았던 기분, PMS, 우울감이 다 사라졌다. 오늘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새벽 3시였다. 그전에 학원에서 한 아이의 보충 수업을 해주고 고시원에 오자마자 뻗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기말고사의 한 복판에 던져져 있었기 때문에 그게 납득이 안 됐다. 다 핑계고 힘들어도 일어나서 학교 도서관에 가기를 바라는 게 내 본심이었다. 하지만 나는 번번이 실패했고, 알바와 학업을 병행하면 한쪽은 반토막이 난다는 친구의 경험담으로 합리화를 하고 있었다. 학점이 반토막 나거나, 잘리거나. 하지만 나는 그 둘 중 하나도 포기할 수 없어 그 사이에 갇혀 허우적거리고 있다가 새벽에 일어나서 샤워하고 좀비처럼 실성하며 도서관에 가서 공부하고 있었다. 울면서 말이다.

심지어 다시 잠에 들기 싫어서 우울증 약을 먹고 나서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연거푸 들이키고 있었다. 그러면서 버티는 자가 일류다. 이러면서 내 처지를 비관하게 되는 자동적 사고를 멈추고자 했다. 지방대 문과생, 그게 내 현실이었지만 애써 괜찮다고 지거국인 게 어디냐고 스스로를 달래며 손에 안 잡히는 공부를 하고 과제를 억지로 해냈다. 어떤 것은 교수님께 진짜 죄송할 정도였는데 진짜 최선이었다. 지구가 멸망하기를 바라던 몇 주가 지나고, 장학생으로 선발 됐다는 소식이 날아왔을 때, 나는 모든 감정이 눈처럼 사르르 녹는 것을 느꼈다. 돈 좀 아껴 쓰라고 주기적으로 오는 엄마의 잔소리에 의한 자립 못했다는 죄책감과 시험공부도 일도 어느 하나 제대로 못 잡고 있어서 느껴지는 무력감과 점점 미쳐가는 정신에 정신을 못 차리다가 세상이 밝아지는 느낌이었다. 정말 이런 작은 행복조차도 너무 절실했는데 정말 세상은 내게 계속 살아가라는 신호처럼 벼랑 끝에 안전장치를 던져주었다. 그리고 이 날 이후로 나는 다짐했다. 기말이 끝날 때까지 2주밖에 안 남았지만 절대 포기하지 않고 학점도 잘 챙기고 앞으로 '장학금 헌터'로서 잘 살아가겠다고 말이다.

돈이 목표가 되는 게 좋은 건 아니겠지만 세상에 있어 돈이 중요한데 뭐 어쩌겠는가. 그리고 열심히 노력해서 모은 장학금으로 취업자금도 마련하고 학자금 대출도 갚으면 그야말로 금상첨화다. 나에게로 향하던 분노를 억누르고 싶어 학교, 세상, 사회로 돌렸던 나는 상황이 바뀜에 따라 감정도 바뀜을 느꼈다. 정말 일시적인 우울이었다.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나는 '마음의 문제'과목 교수님께 "교수님, 오늘 배운 우울 장애에 관한 내용 하나하나가 다 제게 해당되어서 듣는데 너무 찔렸어요. 근데 도움이 많이 됐어요 ㅎㅎㅎ." 내 기준에서는 정말 미친 상태였다. 실제로 이러고 격려(?)의 포옹을 받고 왔다. 교수님은 내게 "그러게 너는 번아웃 조심하라고 했잖아!!" 하셨다. 역시 어른들의 어른은 뭔가 다른 경지에 계신 것 같다. 학생들을 꿰뚫어 보신다. 이 과목을 배우다 보면 정말 내가 내 사주와 맞게 정신과 의사를 준비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너무 적성에 맞는 과목이다. 무엇보다 공부할 때는 머리 터지지만 그 순간도 재밌다.

힘든 부분도 버틸만하다 해야 하나. 하지만 나는 이미 다른 꿈이 있으므로 현재 감정이나 잘 관리하기 위해 이 과목을 잘 써먹을 것이다. 공결로 병원 진단서까지 낸 이상 나는 교수님 하고 급속도로 어쩌다 친밀감이 생겼다. 뭔가 강의가 묘하게 끌렸달까. 심리 쪽 대학원 생각은 없냐고 하셨지만 나는 대학원 생각이 아예 없었기에 아쉽게 되었다. 하지만 심리 쪽 자격증은 하나 따두어야겠다. 며칠 전만 해도 타인의 고통에 대해 함부로 말하는 사람들 혹은 댓글을 다는 사람들을 영어로 비판하는 영상을 유튜브에 올렸다. 비속어가 들어가긴 했지만 후련했다. 흠... 그때의 그 무서운 아이는 여전히 해골 귀걸이를 끼고 카페에 앉아 글을 쓰고 있지만 그때의 분노가 어디 갔을까. 사라졌음 그만이다. 포기하지 않은 나를 위한 축배(?) 아니 밀크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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