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걸어 다니는 화학 물체
심리학을 공부하다가 인간은 거대한 화학 생물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는 CBT(Cognitive Behavioral Therapy)에서 깨달은 사실인데, 인지주의 관점에서 사람은 보통 상황-> 해석 -> 감정-> 행동 이 과정을 거친다고 한다. 어떤 상황이 벌어졌을 때, 이에 대한 해석에 따라 행동이 변화한다는 것이다. 이 중간의 해석 단계가 매우 중요한데, 이는 살아온 배경, 과거의 습관과 패턴 등이 영향을 끼친다. 비슷한 상황에서 다른 해석을 가지고자 즉, 대안적 사고를 가지고자 한다면 우리 몸은 그 생각이 생소하기에 위험하다고 판단해 예전의 우리 모습으로 돌아가려 한다. 대안적 사고는 자동적 사고와 반대되는 개념으로, 자동적 사고가 어떤 상황에 따라 자동적으로 우리가 가지게 되는 생각들(보통 부정적인 게 많다. 예를 들어, 시험이 내일이네. 공부해 봤자 소용없어.)이라면, 대안적 사고는 일단 같은 상황에서 다르게 생각하는 것이다. 바로 떠오르는 부정적인 생각대신, 예를 들어, 지금 힘든 이유는 미래에 커다란 보상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거나 오히려 실수해서 다행이다, 나중에 시험에서 안 틀리겠네 같은 생각이다.
이는 우리가 상황에 따라 새로 만들어낸 긍정적인 생각이다. 이 대안적 사고를 만들어내는 과정이 해석에 포함된다. 그래서 해석 과정이 끝나면 우리는 행동한다. 보통 상황에서 해석으로 넘어갈 때 우리 몸에 있는 호르몬이나 화학 물질들이 커다란 역할을 한다. 생리를 할 때나, 우울할 때나 스트레스를 받을 때, 각각 다른 화학물질, 혹은 호르몬이 분비된다. CBT는 이를 이해하고 역으로 행동-> 감정-> 해석-> 상황 즉, 행동을 바꿔서 해석이 달라지게 해서 긍정적인 해석이 자동화되게 한 다음(이게 인지 재구조화 작업이다), 내가 하는 행동도 바꾸자는 것이다. 이게 내가 이해한 CBT다. 그래서 PMS(월경 증후군)가 심했던 시기에 챗 지피티에게 상황 설명을 하고 내게 더 필요한 호르몬과 현재 분비되고 있는 호르몬을 대충 분석해 달라고 했다. 그리고 앞으로 이 과정을 계속해보기로 마음먹었다. 내게 더 필요한 호르몬을 골라서 이에 맞는 행동을 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호르몬의 농간, 즉, 화학반응에 지고 싶진 않았다. 인간이 걸어 다니는 화학 생물체라면 나는 과학에 지고 싶지 않다. 내가 이용하면 이용했지. 그래서 물어보니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은 거창한 것들이 아닌 작은 것들이었다. 산책이나, 햇빛을 보거나 제 때 약을 챙겨 먹는 것, 쉴 때 쉬고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인지왜곡에 빠져들지 않는 것 등이었다.
그리고 행동주의 관점을 여기에 적용시켜 보기로 했다. 부적 강화(하기 싫은 자극을 제거하는 강화 작용)를 내 패턴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 위기 상황에 노출되기로 했다. 아침에 일어나기 싫어도 학교를 가고, 일하기 싫어도 학원에 가서 일을 하는 것은 나만의 항상성을 만들기에 충분하다. 당장 일을 미루면 우리 뇌는 이게 안전하다고 믿어서 계속해서 불안한 상황을 제거하기 위해 우리가 미루게 만든다. 그게 부적 강화다. 우리는 이에 지면 안 된다. 그렇게 패턴과 습관이 되어 버리면 그게 우리의 디폴트이자 항상성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칭찬, 보상, 관심과 같은 긍정적 강화를 더 늘여야 한다. 하지만 사회를 살아가는 인간은 이런 긍정적 강화보다는 안 좋은 것들을 더 받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기 때문에 긍정적 강화는 우리가 스스로에게 해줘야 한다. 스스로에게 칭찬해 주고 보상해 주고 관심 가져주면 긍정적 강화는 자동적으로 일어난다. 물론 행동주의가 항상 정답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강화의 측면에서는 확실히 구분을 시켜주기 때문에 꽤 유용한 관점이다. 이렇게 바뀌기 위해서는 '정신역동'이라는 관문을 거쳐야 한다. 이게 가장 고통스럽기도 한 과정이다. 바뀌기 위해서 우리는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우리 몸은 우리를 예전으로 돌려놓기 위해 새로운 행동은 싫어한다. 그래서 바뀌려 할 때 많은 인내심이 필요한 것이다. 아직 새로운 버전의 스스로를 받아들이기 힘든 뇌를 이해해줘야 한다. 그 과정이 힘들어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 부분에 대해서 며칠이면 습관이 잡힌다고 얘기하는 강연자도 많지만 사람에 따라 상이하다. 정신역동은 방어기제, 신체화 증상 등, 거부 반응이라고 보면 된다. 이걸 잘 넘겨야 변할 수 있다. 정신역동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은 대체로 '코르티솔'이다. 한마디로 스트레스받는다는 뜻이다. 그래서 필요한 호르몬은 도파민, 세로토닌 등이다. 도파민을 즉각적인 행동에서 얻으려 하면 장기적으로 중독과 나중에 다량의 코르티솔을 도로 받을 수 있으니 세로토닌에 집중해 보기로 했다. 일상에서 할 수 있는 작은 행동을 반복적으로 인내심을 가지고 하는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여유를 가지고 행복해져야 한다. 한 번 해볼 만한 화학 실험이지 않은가. 이 실험만 성공해도 우리의 삶은 엄청난 변화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