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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디 Aug 10. 2023

눈의 청혼

[단편] "하루가 지나간다는 건 하루를 잊는다 것과 같아"

겨울에 눈이 내리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 텐데 마치 처음 눈과 마주하는 것처럼 하늘을 빤히 쳐다보곤 했다. 사계절이 돌고 돌아도 겨울만 맞이하고 싶다면 나의 이야기를 믿을까. 이따금 그런 꿈을 꾼다. 나의 겨울엔 꽃이 피고 바람이 불지 않고 따듯하게 손을 잡아주지 않아도 되는 그런 계절을 말이다. 


나는 도휘에게 그런 겨울을 선물해주고 싶었다. 곧 봄이 찾아와도 겨울에 꽃을 건네고 느닷없이 나타나 고즈넉한 목소리로 작은 인사말을 건네는 사이가 되고 싶었다. 나는 도휘가 보고 싶어 겨울이 뜨는 한날한시 기다렸다. 


"작은 아이는 손에 쥐지 못해. 기다려도 그 애는 오지 않을 거야"

"어쩌면 다시 찾아올지도 모르잖아"

"하루가 지나간다는 건 하루를 잊는다는 것과 같아. 너를 기억하지 못할 거야. 그리고 넌 실망하겠지. 난 네가 실망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


모든 날이 우연으로 시작할 때 도휘를 본 건 내가 봄날의 꽃을 들고 있던 때이었다. 도휘는 천천히 나에게로 떨어져 몹시 시린 기분을 주었다. 모두 나를 보면 따듯하게 바라보곤 했는데 그 아이는 유독 차갑게 다가왔다. 난 그게 설레어 다음 해 또 다음 해를 기다렸다. 그리고 그걸 계속 반복해서야 도휘를 애타게 사랑하고 있는 건 자신이라는 걸 알았다.


그 아이가 떨어지는 순간 눈결 잎이 나의 몸에 문신처럼 새겨졌는데,  지우고 싶어도 지울 수 없는 마음이라는 걸 느꼈다. 그건 순정이라고. 내가 지우고 싶어 하지 않는 순정의 마음이라고 여겼다. 


도휘를 다시 만나면 이번엔 작은 꽃 잎에 떨어지길 원했다. 그러면 나는 얼른 입을 담아 도휘를 더 크게 집어삼킬 것이다. 보고 싶던 마음만큼 크게 끌어안아 너에게 없는 온도를 나로 채울 거다. 그러면 우린 하나가 되어 또 다른 꽃을 피우겠지. 난 너에게 그런 겨울을 주고 싶다. 도휘가 얼른 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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