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스텐다드 Aug 05. 2024

부유한 노예 VS 가난한 자유인

6년간 잘 다니던 좋은 회사 퇴사하게 된 이야기

"모두가 예상했어요. 제가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 정년 퇴임까지 있을 것이라고요. 가족도, 친구들도, 동료들도, 심지어 저 자신도요. 그런 제가 이직도 아닌 돌연 퇴사를 하겠다고 한 것은 모두의 예상을 깨는 일이었습니다."



첫 회사에서의 6년


2018년 4월, 저는 GC(녹십자홀딩스)라는 기업에 브랜드 디자이너로 입사했어요. GC는 세계에 몇 없는 토탈 헬스케어 그룹으로, 당시 국내 제약업계 Top 3 안에 드는 회사였어요.


2018년도에 입사한 GC 목암타운 속 목암빌딩


졸업하자마자 받은 제안에 연습 삼아 지원했는데, 감사하게도 덜컥 합격해 버렸죠.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저에게 B2B* 회사는 사실 매력적이지 않았지만, 가족들과 친구들이 좋아해줬고, 막상 다녀보니 이 회사와 제가 잘 맞는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B2B : 기업과 기업 사이의 거래를 기반으로 한 비즈니스 모델


안정적인 연봉, 좋은 복지, 고속 승진 등 회사 생활은 참 좋았어요.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장점 뒤에는 버텨야 하는 힘든 시간이 있었습니다. 군대식 문화와 불합리한 지시들이 이어지며 몸과 마음이 지쳐갔어요. 어느새 분노와 좌절로 가득 차 있었죠.

*당시 저희 본부에만 해당하던 내용이며 회사 전체의 입장과는 무관합니다. 현재 그 본부는 사라졌어요.



세상이 원하는 것

회사와 가족이 원하는 대로만 살아왔어요. 상사의 말에 순종을 넘어 복종하고, 회사가 아닌 상사의 개인적 욕심을 채우는 일을 하며 살았죠. 가족들은 원래 다 그런 것이라며 회사가 주는 안정감을 최우선으로 생각했고, 망가져 가는 저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어요. 저는 그저 속 시원하게 그들이 원하는 것을 해주면 되는 존재였죠.


저는 메모를 통해 생각을 정리하는 습관이 있어요. 어렸을 때부터 생각이 지나치게 많아 생기는 혼란을 통제하기 위한 방법이었지요. 모두가 들어주지 않는 제 이야기는 결국 노트에 하는 수밖에 없었어요. 그때부터 저의 상황을 노트에 차곡차곡 정리해 보기 시작했어요. 입사 전의 꿈, 현재의 나, 버텨왔던 이유, 그리고 퇴사한다면 포기해야 하는 것들까지요.


그리고 어느 날, 이제는 견딜 수가 없을 때 집에 오자마자 노트에 다 쏟아낸 내용을 보니 모든 것이 선명해졌지요. 이렇게 살지 않겠다는 것이요. 가진 것도, 준비된 것도, 잘하는 것도 없었지만 결단해야 했고, 두려움이 가득했지만 용기를 내야만 했습니다.


퇴사 당시 기록, 당시 감정들이 그대로 담겨있네요.


내가 원하는 것

그 와중에도 회사에서 종종 듣던 말이 있었어요.
'재능을 여기에서 썩히기에는 아까워요. 더 큰 곳에서 꿈을 펼치면 잘하실 것 같아요.'

디자인의 중요도가 높은 더 큰 기업으로 이직을 해보라는 의미였겠지만,

저에게 꿈은 '직장인'보다 큰 존재였기에 다르게 들렸어요.

나누기 부끄럽지만 입사 전 제 꿈은 마흔 살이 되었을 때 우리나라의 영향력 있는 브랜드 디자이너가 되어있는 것이었어요. 나만의 브랜드를 운영해 보고 싶기도 했고, 브랜딩 디자인을 제대로 해보고 싶기도 했지요.


퇴근 후 브랜딩을 연구하던 스몰러 활동


그래서 퇴근 후 나만의 브랜드 만들기 프로젝트를 몇 번 정도 진행했고, 바쁜 삶 탓에 역시 포기도 많이 했습니다. 그리고 글을 쓰는 지금으로부터 약 1년 반 전, '스몰러'라는 이름으로 저만의 브랜드 '런치가글클럽'을 만들었습니다. 런칭 이후 운영을 많이 신경 쓰진 못했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어요.


회사에서 힘을 다 쏟고도 집에 와서 나름의 최선을 다하며 만들었던 경험, 적지만 사람들과 브랜딩에 대해 진정성 있게 대화했던 경험들은 브랜딩에 대한 애착과 열정에 기름을 부었다는 것이었지요. 행복했어요. 그리고 나지막이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브랜딩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고 결단

언제나처럼 두려운 월요일 아침이 찾아왔습니다. 8시 반부터 본부장님의 방에서 앞으로의 중요 프로젝트에 대한 회의가 진행되고 있었고, 거기서 제가 감당해야 하는 역할도 컸습니다. 그치만 제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고, 노트에 이 두 단어를 적고 있었습니다.


부유한 노예 vs 가난한 자유인


그리고 회의가 끝나갈 때쯤 저는 덜덜 떠는 손으로 동그라미를 쳤습니다.


'가난한 자유인'에요.

작가의 이전글 당신의 브랜딩 성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