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피는 동백섬에'로 시작하는 노래와 '동백 아가씨'를 어렸을 때부터 들었던 내게는 무의식적으로 '동백은 한국적인 것'으로 각인됐던 것 같다. 세상에는 예쁘고 희귀한 꽃들이 많으니, 동백은 관심 밖이었다. 꽃 전체가 '댕강' 떨어지기 때문에 절개를 상징한다는 학교에서 배운 지식밖에 없었다. 그래서 사막 기후인 남가주에 동백나무숲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고는 좀 놀랐다. 동백나무 군락지가 있는 곳은 데스칸소가든(Descanso Gardens), 스패니쉬로 '휴식의 정원'이라는 뜻을 가진 곳이다. 우리집에서 10분도 채 되지 않는 거리에 있어서, 일 주일에 두세 번 정도 가고 있다.
데스칸소가든은 LA에서 약 20분 거리에 위치해 있다. 공식 사이트에 의하면, 150에이커 넓이로, 매년 75만 방문객을 맞고 있다. 캘리포니아 토종식물인 참나무(California Oaks)가 무성한 이곳에는 동백나무숲을 비롯해, 장미정원, 원시림정원, 일본정원 등이 조성돼 있다. 호수와 연못도 있고, 작은 시냇물도 흐른다. 정원 꼭대기에는 바디하우스(Boddy House)와 갤러리가 있다. 코로나로 인해 현재 방문자를 받고 있지 않는데, 이곳에 들어간다면 1930년대 미국 부자들 저택을 그려 보는 데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발길 닿는 곳마다 아름답지만, 초봄 백미는 단연 동백숲이다. 데스칸소가든은 국제 동백인협회에 의해 국제 동백인 우수 정원으로 지정되었다. 1937년 LA 데일리 뉴스 소유주였던 E. 맨체스터 바디(E. Manchester Boddy)가 이곳을 구입하고 '랜초 델 데칸소'라고 이름을 붙이고 목장을 운영했다. 1942년 진주만 공습으로 미국내 일본인들은 강제수용소에 갇히게 되었는데, 바디는 일본인 친구였던 우에마츠와 요시무라가 운영하는 두 묘목장에서 최대 10만 그루 동백나무를 구입해 이곳에 심었다.
이민온 1년 후부터 이 동네에 살았으니, 데스칸소가든에 드나든 지도 16년이 다 돼 간다. 무엇 하나 확실하지 않아서 불안했던 그 당시, 이곳에서 걱정 많았던 일상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었다. 자연에게서 위안받고, 스스로를 자연 속 한 존재로서 인식할 수 있었던 장소다. 어린 아이들을 걸리고, 안고 구석구석을 돌면서 받은 첫 방문 때 감흥이 되살아난다. 이곳에는 내 아이들과의 추억이 담겨 있다. 궁상맞아 싫은데, 이젠 추억을 먹고 사는 나이가 됐다.
장소가 주는 의미는 크다. 잊고 지냈던 공간에 우연히 갔을 때, 오감 모두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거기에서 받았던 특별한 감흥은 어쩌면 오감을 넘어서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공간에 대한 추억은 그 장소에서 함께했던 사람들에 대한 기억이기도 하다. 예로, 어렸을 적, 외갓집 바로 뒤에 있던 대나무숲은 할아버지와의 추억이 곁들어 있다. 이것에 대해 나중에 한번 써볼 것이다. 이런 공간에 대한 이야기가 내 뇌 속에 더 많이 저장되었길 바란다. 의식해서 애써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렇게 빌어 본다. 또 이제라도 주위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기억할 특별한 곳에 자주 가려 한다. 내 뇌가 경험 중 무엇을 선택해서 기억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삶이 다른 곳으로 이어지거나 옮겨질지라도, 어디에 있든지 초봄에 동백꽃이 필 때마다 데스칸소가든을 추억할 것이다. 이곳 동백나무숲을 함께 걸었던 사람들을 기억하고 그리움에 눈물이 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