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파에 거의 눕다시피 앉아 있던 내 품으로 당시 프리스쿨(어린이집)에 다니던 아들이 쏙 들어왔다. 우린 서로를 부둥켜 안고 부비부비 했는데, 아들이 킁킁거리며,
"엄마한테 바닐라 향내가 나."
한다. 나는 빵 터져서,
"울 아들은 정말 엄마를 사랑하는구나. 엄마도 OO 발꼬랑내까지도 사랑해!"
라고 말했던 생각이 난다.
샤워는 자기 전에 하기에, 오후 햇살이 창문을 통해 거실에 길게 들어왔던 그 시간에 내 몸이나 옷에서 바닐라향이 났을 리 없었다. 청소를 하거나 음식을 만들고서 잠시 앉은 거여서 땀내나 음식 냄새가 났을 터였다. 사랑을 하면 얼굴 얽은 부분도 보조개로 보이고 암내도 좋은 향으로 느껴진다더니, 그때는 아들이 나에게 콩깍지가 단단히 씐 거였다. 내 품에 안기면 강아지처럼 냄새를 맡던 어린 아들... 그때를 추억하다 보니, 의식의 자유로운 흐름에 따라 한 후각의 기억이 떠오른다. 추억 속 아들만 했던 내가 맡았던 엄마 냄새 말이다.
울 엄만 대식구를 책임져야 했으니, 과연 좋은 냄새가 났을까 싶다. 세탁기도 냉장고도 없던 시절, 아마 엄마는 요리며 빨래며 청소며, 육 남매 챙기다가 하루가 다 갔을 테니, 당신 몸은 항상 나중이었을 것이다. 그때의 고단했던 엄마 냄새를 기억한다.
늘 어린 동생들이 엄마 품에 매달려 있느라, 나는 엄마 품에 좀처럼 안길 수 없었던 듯하다. 하루는 동생들 없이 홀로 마루에 비스듬히 누운 엄마를 보고 가만히 엄마 옆에 누웠다. 내게 팔베개를 해준 엄마 가슴팍으로 코를 묻고 잠시 안겨 있었다. 그때 났던, 기억에 강하게 남아 있는 엄마 냄새는 마늘, 파, 생강 같은 것들이 뒤섞인 냄새였다.
밥 짓고, 반찬 만들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어린것들 달래고... 그런 엄마에게서 향수 비스므레 한 냄새가 났을 리 만무하다. 엄마 냄새는 양념 냄새였다. 살림 냄새가 켜켜히 스며든 냄새였다. 그건 식구를 '살리는' 냄새다. 그 무엇과도 비할 수 없는 고결한 향이다. 살리는 냄새를 지닌 세상 모든 엄마와 아빠 덕에 생명이 뿌리를 내려 삶이 이어진다.
그 위대한 냄새를 잘 알아차리는 건 아기들이다. 냄새로 사랑하는 존재를 알아본다. 어떤 냄새이든 상관 없다. 순수한 영혼은 냄새에 대한 선입견이 없고, 사랑과 희생의 냄새를 맡을 수 있는 후각을 가지고 있다. 마음이 겸손해질 때 진짜 냄새인 살리는 냄새에 반응할 줄 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