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a Story Jan 26. 2022

엄마와의 첫 만남

물론 내가 태어난 어느 봄날, 처음 엄마를 만났을 것이다. 기억이 안날 뿐. 내가 기억하는 엄마와의 첫 대면은 서너 살쯤, 외갓집 마당에서였다. 엄마를 처음 만났을 때, 나를 향해 환하게 웃던 엄마 얼굴이 선명하다. 정확한 나이는 기억할 수 없다. 엄마 살아계셨을 때 왜 이런 것들을 물어볼 생각을 못했나... 게으름이 엄마에 대한 글쓰기 의지를 잦아지게 한 탓이다. 좀 더 빨리 엄마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했다면, 뭉게뭉게 늘어가는 궁금증을 쉽게 해결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또 불사조 울 엄마는 쉽사리 가실 리 없다고 믿었던 것 같다. 


삼대독자 남편을 만난 탓에 엄마는 아들을 꼭 낳아야 했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엄만 딸만 주루룩 넷을 낳았다. 셋째 아기가 딸로 태어나자, 산후조리를 해주러 미리 상경하셨던 친할머니는 그날로 친가로 돌아가셨단다. 난 넷째 딸, 딸로는 막내딸, 꼭지다. 나 태어나고 2년 반 후, 함박눈 내리던 날, 엄마는 첫 아들을 낳았다. 큰언니가 펑펑 쏟아지는 눈을 맞으며 아빠 회사로 뛰어가서 아들 출생을 알렸다는데, 아빠 첫 마디가, 

"네 엄마 뱃속에도 고추가 있었구나!"

였단다. 평생 마른 몸이었던 엄마는 애 다섯을 키우기 너무 벅차셨을 것이다. 어렵사리 낳은 아들은 딸들 같지 않게, 부모님 표현으로, 부잡스러웠다. 그래서 언니들보다 보살핌이 더 필요했던 내가 전라남도 깡시골 외갓집으로 보내졌고, 가족과 떨어져 열 달을 살았다. 엄마와 떨어졌던 순간은 기억나지 않는다. 


그날은 맑은 날이었고, 논으로 밭으로 신나게 동네애들과 놀고 있던 중, 누군가의 손에 이끌려 집으로 돌아왔던 것 같다. 외갓집 앞마당에는 큰 나무가 있었는데, 그 나무 아래에 낯선 여자아이가 서있었다. 시골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웠던, 나비가 한가운데 곱게 수놓여진 남색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단정한 단발머리를 한 그 아이가 예쁘다고 생각하던 중, 한 여자 어른이 함박 웃음을 지으며 나를 안았다. 이게 내가 기억하는 엄마와의 첫 만남이다. 나무 아래 서있던 소녀는 셋째 언니였다. 엄마는 나를 이리저리 안아 보고, 업기도 하면서 연신 미소를 지었다. 이 서울 손님들이 너무나 낯설었어도 할머니 치마폭에 얼굴을 감추는 일 따윈 하지 않았다. 서울 사람 구경하러 외갓집에 모인 마을 사람들이 그들을 선망의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할머니 품 속으로 달려가고 싶었지만, 뭔가 우쭐한 기분에 엄마가 하는 대로 얌전히 있었다. 


엄마는 나를 툇마루에 앉히고 마주 보았다. 처마에 걸린 나른한 햇빛이 엄마 뒷머리와 등으로 흘렀고, 이내 툇마루에 내려 앉았다. 엄마는 새옷 냄새가 나는 빨간색 바지를 내게 입혔다.* 거의 1년 가까운 시간 동안 떨어져 있던 어린 딸에게 줄 선물을 골랐을 엄마는 미안하기도 했을 테고, 설레기도 했을 것 같다.

"바지가 좀 길구나."

엄마는 바지 끝단을 접어 올렸다. 그날은 할아버지 생신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뭔가 특별한 날이었던 거 같다. 외갓집에는 사람들로 북적북적했으니까. 사람들이 많았어서 엄마 눈을 피하기 쉬웠던 나는 바지 끝단을 내렸다. 끝단을 접은 바지를 입은 내 모습이 왠지 촌스러운 거 같았다. 길어도 그냥 입고 싶었다. 엄마와 마주치면 엄마는 바짓단이 스스로 내려온 줄 알고 딴딴히 접어주었다. 나는 싫다는 말은 못하고, 엄마가 안 보이면 서둘러 바짓단을 내렸다. 


그날, 혹은 그 다음 날 우리는 서울로 올라왔을 것이고, 난 하루 아침에, 내 가족인 줄만 알았던 할머니, 할아버지, 작은이모를 떠나 낯선 사람들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처지가 됐다. 가족 상봉했을 때, 딱 한 장면만 기억난다. 큰언니 얼굴이다. 정확히 말하면 언니 입이다. 열 달 동안 완전히 시골 아이가 된 나를 보면서 큰언니는 코앞에서 정말 입이 찢어져라 크게 웃었다. 큰언니는, 상고머리를 하고 새까매진 데다 완벽한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 내가 눈물나게 웃겼단다. 이후 시골애로 살았던 버릇으로 여러 해프닝이 벌어졌다고 하는데, 그런 일들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치매를 앓지 않는 한, 내가 엄마를 잊어버릴 일은 없을 것이다. 그땐 내 의지와 상관 없이 엄마와 떨어졌지만, 어른이 된 후에는 자의로 미국으로 건너와 엄마와 떨어져 살고 있다. 그리고 엄마와의 또 다른 이별을 시작했다. 언젠가 나는 엄마를 따라 이승에서의 삶을 마칠 것이다. 긴 이별을 끝내고 엄마를 다시 만나게 되면 반드시 내가 먼저 알아 보리라. 엄마가 서너 살 내게 했던 것처럼 엄마를 얼싸 안고 깊었던 그리움을 나누리라. 


---------------------------

* 어려서는 빨간색을 제일 좋아했다. 엄마가 입혀준 빨간 바지의 기억 때문은 아니었을까 싶다.


작가의 이전글 엄마와 걷는 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