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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 Story Jan 08. 2022

엄마와 걷는 길

4년 전, 팔순을 갓 넘긴 엄마는 나 보러 열한 시간 남짓 비행기를 타고 우리집에 오셨다. 서부 여행을 하러 온 남동생 가족과 함께 오셨다. 1주일 후 엘에이 일정을 마친 동생네는 그랜드캐년을 위시한 미 서부를 여행하러 떠났고, 나에게는 오롯이 엄마와 함께할 1주일의 시간이 주어졌다.


바닷가로, 산으로, 공원이나 식물원으로 엄마를 모시고 갔고, 집 근처 레스토랑에 가서 미국식으로 브런치도 드시게 하는 등 엄마와의 시간을 소중하게 채웠다. 1주일은 너무나 아쉽게 지나가 버렸다. 샌프란시스코에서 한국으로 돌아가는 일정이어서, 이른 아침 엄마와 함께 비행기를 타고 산호세 공항으로 향했다. 동생이 미리 예약해둔 호텔로 가서 짐을 풀고, 동생네가 도착하기 전 엄마와 산책을 나갔다. 호텔 근처를 한 시간 넘게 천천히 걸으면서 버스정류장 벤치에 앉아 쉬기도 했고, 인근 학교 캠퍼스에 들어가 건물 구경도 했다. 이렇게 엄마와 단 둘이 걸은 지가 초등학교 저학년 이후 처음인 거 같았다. 엄마를 모시고 여기 저기 다닐 때, 이곳이 낯선 엄마는 내게 100% 의지하실 수밖에 없으셨다.


엄마와 함께 걸었던 기억이 난다. 초등학교 1, 2학년쯤이었을 것이다. 엄마 친구 댁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좀 더 머물다가 집으로 돌아오던 길이었다. 어린 나에게는 잠잘 시간이 지난 늦은 시간이었는지 너무 졸려서 엄마한테 칭얼거렸다. 엄마는 나를 달래며 업기도 하고 걸리기도 하셨다. 어느 길로 어떻게 가는지도 몰랐고 그저 엄마가 이끄는 대로 엄마 손을 꼭 잡고 걸었다.


수십 년이 흘러 젊은 아기 엄마였던 엄마는 할머니가 됐고, 어린이였던 나는 중년이 됐다. 이제 엄마는 어디를 다니시더라도 자식들을 의지해서 다닐 수밖에 없는 연세가 되셨고, 나는 그런 엄마의 안위를 걱정하는 나이가 됐다. 엄마가 미국에 계실 동안 어디를 가더라도 내가 책임지고 길을 안내하며 가야 했다. 역할이 바뀐 것이다. 한국으로 돌아가신 후, 엄마와 동행할 날을 고대하며 그저 마음 속으로 제발 건강하시길만을 빌었다.


엄마 가이드 노릇을 좀 더 하고 싶었다. 한국에 가서 엄마 고향도 같이 가고, 양평이나 포천에 사시는 엄마 고향 친구분들 댁에도 모시고 가고 싶었다. 정기적으로 가시는 병원도 같이 동행하고 싶었다. 그런데 엄마는 더 이상 기다려 주지 않으시고 갑자기 7개월 전, 이 세상을 떠나셨다. 장에 천공이 생겼는데, 십수 년 전에 쓸개암 수술한 자리에 유착이 생겨 수술조차 못할 지경이었다고 했다. 출혈이 멈추지 않아 수혈을 받으시면서 이틀을 견디시다가 돌아가셨다. 이렇게 허망하게 돌아가시리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내가 엄마를 이끌어 드렸던 건 그 짧았던 일 주일이 다였다.


엄마는 돌아가신 후, 신분과 경제적 여건, 그리고 미국 이민 정책 등 여러 이유로 한국에 나갈 수 없었던 이 막내딸을 한국으로 이끄셨다. 당신 임종도 못 지킨 불효녀에게 엄마는 두 달 동안의 휴가를 선물로 주셨다. 미국 온 후 거의 쉬지 않고 일했던 내게 두 달은 큰 휴식이었다. 우리 육 남매는 엄마에 대한 그리움으로 시도때도 없이 울다 웃다를 반복하면서 서로를 위로하고 치유했다.


얼마 전 TV에서 방영되었던 드라마 '인간실격'에서 여자 주인공이 이런 말을 한다. "아무것도 되지 못했습니다." 이 대사를 들은 나는 내 민망함이 들킨 것 같아 마음이 저렸다. 여주인공 아버지처럼 엄마는 자식이 무엇이 될 수만 있다면 그것을 위해 뭐든 하셨지만, 정작 자식인 나는 미국에서 16년 넘게 살면서 엄마가 마음을 놓을 만한 그 무엇도 되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불쑥 올라왔다. 마지막에 주인공은 무엇이 되는 것보다 아버지가 자신을 위해 했던 모든 행위에 대한 가치를 발견하고는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하다'고 결론짓고 새로운 삶으로 한 발짝 내딛는다. 끊임없이 뭔가를 했지만 아무것도 될 수 없었던 나는, 이 세상에 안 계신 엄마한테 너무나 죄송해 며칠 동안 아팠다.  


이민생활이 고단할 때, '엄마는 이럴 때 어떤 결정을 했을까? 지금 내가 엄마보다 더 힘들다고 할 수 있나?'를 생각하면서 크고 작은 걸림돌들을 넘고 또 넘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다시 엄마를 생각했다. 무엇이 되지 못했다는 자기연민과 신세한탄은 엄마 마음을 더 아프게 할 것이었다. 한 겹 더해진 불효가 될 것이었다. 엄마의 삶은 주저앉은 나를 일어나게 하는 강력한 힘이다. 어렸을 적,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엄마를 따라다녔던 나는, 엄마 부재 속에서도 변함없이 엄마의 이끎을 받는다. 오늘도 엄마 손 잡고 엄마가 이끄시는 길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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