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한인 커뮤니티 사이트에 가끔 올라오는 비슷한 내용의 글이 있다. 1.5세들 애환에 대한 이야기다. 이런 글을 읽게 되면 참 씁쓸하다. 어린 나이에 영어를 못 하는 부모를 대신해 관공서 일을 대신 하거나 통역할 때 느낀 그들의 난처함과 당황스러움을 읽고 있노라면, 낯선 미국에 와서 고생하면서 삶을 일군 부모도 마음 아프고, 이제 어른인 그들의 어린 시절도 짠하다. 남편과 나는 4살, 1살 애들을 데리고 미국에 왔어서, 서바이벌 영어로라도 우리 스스로 여지껏 살고 있기 때문에, 우리 아이들은 그런 경험을 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며칠 전 아들과 이런 저런 대화를 하다가 자기도 같은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고 한다. 뒤통수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아들이 그렇게 느꼈다면 그건 걔한테는 사실이니, 나를 돌아보게 됐다. 생각해 보니, 일이 년 전 커뮤니티 컬리지 수업 숙제 교정을 부탁한 적이 몇 번 있었다. 미국은 쓰기에 목숨을 거는 교육 시스템이라서 글쓰기 숙제가 아주 많다. 여전히 관사 사용과 적절한 단어 선택이 어려워서 정말 이상한 부분만 고쳐 달라고 부탁했었다. 또 한두 번, 빽빽하게 쓰인 공문을 읽기 귀찮았을 때 아들한테 읽고 요약 좀 하라고 했었다. 변명이지만, 아이들이 고등학생 이상 나이가 되어서 부탁한 거였고, 그리 많이 부탁한 것도 아니었다. 남편도 사업 때문에 중요한 전화 통화를 할 때, 혹시 중요한 사항을 놓칠까 봐 아들을 옆에 앉혀 놓고 통화를 몇 번 했었다. 사실 남편이 이렇게 한 또 다른 이유는, 올 가을 대학 입학하면 전공으로 비즈니스(경영학)를 공부하려는 아들에게, 별거 아니지만 조금이라도 사업이 어떤 건지, 문제 해결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보여주고 싶었던 마음에서였다. 딸한테 이런 말을 전했더니, 딸도 그런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고 한다. 충격이었다. 관공서를 가서 직접 통역을 하거나 우리 대신 뭔가를 해야 하는 건 아니었지만, 영어가 부족한 부모에 대해 느끼는 뭔가가 아이들에게는 큰 부담이었나 보다.
좀 억울했다. 그래서 객관적으로 얼만큼 부모가 할 일을 도왔는지 생각해 보자고 했다. 나도 얼만큼 아이들에게 내 역할을 떠넘겼는지 생각해 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 책임과 할 일을 애들에게 지운 적은 없었다. 그저 교정을 한다든지 하는, 내 기준으로 소소한 것들이었다. 아이들도 생각해 보더니 그렇게 많이 한 거 같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청소년 시절에는 과장해서 표현하고 특히 부정적인 감정은 사실보다 월등히 부풀려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서 이해를 못 할 일은 아니다. 그래도 부모인 우리는 완벽하지 않은 영어 실력으로 너네를 이만큼 키우고 여기에 뿌리내리고 살고 있는데, 너네한테 절대 부담 안 주고 산다고 살았는데 어떻게 '사실과 다르게' 기억을 하고 있니... 섭섭했다.
이렇듯 내가 믿는 사실과 아이들이 믿는 사실은 많이 다르다. 뭐가 진짠지 모른다. 이만큼이 사실이나, 나는 요 정도와 요 부분을 사실이라고 믿고 있고, 아이들은 고 정도와 고 부분을 사실이라고 기억하고 있다.
이 일로 인간의 기억이라는 것이 얼마나 믿지 못할 만한 것인가를 다시 깨닫는다. 인간은 육체로 체감한 딱 그만큼을 가지고 평생을 산다. 그러니 아무리 깨달은들, 진짜를 알 수 있겠나 싶다. 한계가 극명한 인간임이 다시 한 번 드러나고 나니, 내가 아는 세상이 진짜 세상이 아닐 수도 있다는 데까지 생각이 뻗친다. 그래서 아들에게 장자의 나비 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자기도 친구와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인간계에서 복닥복닥 살고 있지만, 어쩌면 인간 각자는 거대한 생명체를 이루는 작디 작은 세포일 수도 있다며 영화 "매트릭스"까지언급했다.
"그래, 아들아, 네가 생각하는 사실이 사실이 아닐 때도 있을 거야. 엄마가 생각하는 사실도 사실과 많이 다를 수도 있을 거야. 그걸 알면서도 우리는 또 스스로 경험한 게 다인 것처럼 행동하고 실수하겠지. 하지만 우리 한계를 알았으니, 또 계속 한계에 부딪칠 테니, 그럴 때마다 이 큰 우주 앞에서 겸손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