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요가 7) 완벽주의자의 편식
난이도 높은 동작이나 체력적 한계에 도전하기를 요가를 통해 계속하다 보니 어딘가 지쳐버렸다. 게다가 하고 있는 공부가 따로 있다 보니, 내게 요가가 우선순위도 아니고. 9월, 10월 사이에 긴 여행이니 이사니 당장 내 수중에 있는 일들을 마무리하려다 보니 요가가 자연스럽게 뒤로 밀리기도 했다. 그럼 나는 요가를 왜 하는가? 운동으로? 물론 운동으로도 괜찮긴 하지만, 효율적인 운동에는 달리기만한 게 없다. 빠른 시간 안에, 혼자서 충분히 운동할 수 있다는 면에서 특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중요도 1위가 아닌 요가를 굳이굳이 루틴에 넣고 주에 못해도 두 번은 해낸다. 그 사이 나는 지쳐버렸는지, 글쎄 잘 모르겠다는 답밖에 할 수 없었다. 그리고 막연히 '나도 요태기가 왔는가보다'라면서 내가 지친 대상이 양적인 움직임이 아닐까 싶었다.
그래서 지도자과정 이후로 처음 어딘가에 신청해서 들어본 워크숍이 채식을 오래 하신 예슬 선생님의 <인요가 경락과 섭생> 워크숍이다. 동양의학적 관점으로 몸속 장기들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배우고, 나는 그중 어디가 상대적으로 튼튼하고, 어디는 약한지에 대해 함께 생각했다. 어려운 아사나에 도전할 때는 내 몸을 그저 근육과 근막으로만 생각했던 것 같다. 나는 굉장히 뿌리깊은 유물론자로, 몸이 생각과 마음을 만든다고 여기는 사람인데. 그동안 심화적인 아사나, 그 형상에 집중하느라 나의 몸이라는 이 작은 우주를 아주 좁은 스코프로 본 게 아니었나 싶다. 장기도 근육이고, 이 근육과 뼈는 내 몸속 장기들을 보호하는 껍데기인데.
이 워크숍 덕에 정말 오래간만에 내 몸에 대해 다른 방식으로 생각해보았다. 그전에는 '나는 어디 근육이 짧아져 있어서 어떤 아사나를 하기에는 부족하고, 좌우 비대칭이 어떻게 있어서 반대편에 조정이 필요하고' 식으로 내 몸에, 특히나 외적인 근육에 일종의 점수 매기기를 한 지가 꽤 오래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올 하반기에 나는 이런저런 잔병을 치르고 있었다. 꽤 긴 여행 동안 과음을 하진 않았지만 매일매일 음주를 한 결과 장염 비슷한 술병이 났다. 이때까지는 그래도 하루 아프면 하루 쉬면 낫는 정도였다.
어딘가 고장난 것 같은 느낌은 남편이 총 9년 동안 살고 나와 함께는 3년을 살았던 투룸에서 이사를 나간 뒤에 찾아왔다. 새 보금자리에서 일주일 내내 소화불량을 달고 살았다. 하루 체해서 머리가 아프면 다음날은 괜찮고, 그 다음날엔 또 체기가 올라와 머리가 깨지게 아픈 식. 머리가 아프니 해야 하는 공부도 손에 잡히지 않아 루틴이 완전히 망가졌고, 은근한 완벽주의자인 내 속도 쓰렸다. 집 안은 난장판이라 요가원은 무슨, 간신히 식사만 좋은 음식으로 차려 먹는 며칠이었는데, 조금씩 천천히 먹어도 체기가 올라오니 정말 답답했다. 사실 체기가 올라와서 실제로 속이 답답한 것보다, 머리가 아파서 얼른 해야 할 공부를 못하는 게 싫어 갑갑했다.
이런 와중에 경락에 대해 알게 되면 앞으로 취약한 장기에 연결된 혈자리를 자극하는 셀프수련으로 풀어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들은 워크숍이었다. 그런데 오히려 1년 전 지도자과정을 마치고 그동안 내가 어떤 생각들을 하며 지내왔는지를 되돌아보게 되었다. 수업에 가면 수련을 분명 열심히는 하지만 어딘가 타성에 젖은 상태. 개운하게 땀은 내지만 뭔가 채워지는 게 없는 느낌. 어디가 부족한지 잘 알지만 그것을 채우기 위해 아무런 의식을 보내지 않는 일종의 자기 방치. 나는 그런 상태였다. 회사를 다닐 때든, 공부를 하는 지금이든, '나에게는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면피하면서 요가를 포함한 생활의 모든 면에서 편식을 하고 있었다. 내게 이미 있던 재능과 기질이 허락하는 선까지만 가고 그 너머는 전혀 알아차리려 하지 않으니, 원래 약한 부분들이 더욱 허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워크샵을 마치고 돌아와서, 먼저 안 먹던 과일을 시켰다. 김치에 밥이 좋지, 달콤한 과일로 배 채우긴 싫다고, 음식물쓰레기가 쌓이면 벌레가 꼬인다고 지난 5년 사이에는 과일을 거의 사 먹지 않았다. 어차피 현대의 과일은 당 덩어리니까 거기 있는 미량영양소가 아무리 좋아도 다른 채소들로 취하면 된다고, 게다가 나는 소화기가 약하니까 채소를 익혀먹는 지금의 식생활을 바꿀 필요도 없다고 내 편하게만 생각하고 있었다. 어떤 벽에 부딪힌 듯한 지금에서야, 안 하던 짓을 해봐야겠다 결단이 섰다. 철 끝물인 시나노사과와 무화과를 먼저 주문했다. 그리고 큰 팩 두유를 대량으로 샀다. 웬만하면 우유를 안 먹겠다고 결심만 몇 번을 했는데, 이제서야 우유를 살 일이 없어졌다.
그리고 요가를 갔다. 아사나를 하면서 나의 약한 부분이 인지될 때 그것을 휙 놓아버리지 않았다. 어려운 자세에서 유지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정신이 그냥 빠져버릴 때가 있다. 내 몸이 어떤 모양인지도 모르겠고, 힘은 빠져가는데 어디에 힘을 줘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그냥 정신이 없어진다. 그럴 때 돌아오려고 했다. 특히 내가 평소 잘 되는 몸의 어디가 아니라 정말 잘 안 되는 몸의 어딘가로 의식을 보내려고 했다. 정신을 보내기가 어려우면 그냥 욕심을 부리지 않고 빠져나왔다. 마치고 사바아사나에서는 자는 듯 깨어있었다. 몸통과 사지는 자는 것처럼 이완되어 있는데 내 정신은 호흡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 몸이 완전히 이완되어 있을 때는 이런 호흡을 하는구나, 나는 잘 때 이런 호흡을 하는구나, 감은 눈 뒤에서 정말로 내가 호흡을 보고 있는 것처럼 감각했다.
가끔 편도 1시간 걸리는 안산에 있는 한 요가원에 가서 수련을 한다. 젊지만 카리스마가 있는 선생님이 잘 지도해주신다. 나를 처음 보았을 때부터 어떤 몸인지 파악한 선생님은 과한 핸즈온 없이, 할 수 있을 때는 "할 수 있어요", "거의 다 왔어요", 정신이 혼미할 때는 "정신 차려요", 끝까지 힘을 유지해야 안 다치니 "대충 넘어가지 말아요" 그러신다. 그 공간 안에 있는 누구도 방치되지 않는 수업. 저 멀리 있는 것 같던 선생님이 콕 집어서 나에게 정신 차리라고 할 때는 정말 정신이 번쩍 든다. 고된 수련에 땀과 정신머리가 쏙 빠져 있다가도 순간적으로 '지금, 여기'로 돌아온다. 그렇다고 항상 아사나를 더 나아갈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 정신이 돌아오면 어쨌든 그 아사나에서 잘 빠져나올 수 있다.
이제는 요가를 할 때도, 공부를 할 때도, 시시때때로 스스로에게 이런 말을 해주려고 한다. 그 모든 취약함, 지친 몸과 마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면 된다. 지금 주어진 것을 무사히 끝마치는 게 최우선이다. 여태까지의 나를 움직였던 '독한 마음'과는 조금 다르다. 그리고 그날의 시퀀스가 끝나고, 공부를 마친 다음에는 이런 말을 해주려고 한다. 수고했다. 잘했다. 푹 쉬어라. 이렇게 내 사정을 알아주고, 들어주고, 다독이면서 나아가보려고 한다. 목적지까지 오래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그렇게 해보자.
10년 전 사진들을 꺼내보니 감회가 새롭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변한 게 많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고.. 독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