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파 세계관 입문기와 과몰입기
2020년에 데뷔한 SM 엔터테인먼트 소속 여자 아이돌 aespa는 현재 명실상부 4세대 대표 아이돌로 꼽힌다. 데뷔곡 'Black Mamba'와 이후 발매곡 'Next Level'은 낯선 그들만의 세계관에서 사용되는 용어로 구성되어있지만, 특히나 ‘Next Level’은 중독성 있는 후렴구와 캐치한 안무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고, 현재까지 음원 차트 정상에 있는 곡이다. 지난 11월 발매된 첫 번째 미니앨범에서도 역시 그들만의 독보적인 세계관을 이어간다. 블랙맘바와 직접적으로 맞서 ‘꺼지’라는 'Savage'까지. 세계관을 이해하면 배경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들었을 때는 난해하기 짝이 없는 그들의 노래가 매우 부드럽게 이해가 된다. SM 엔터테인먼트의 유망주 아티스트 에스파의 세계관을 알아보고, 나의 입문기도 간단하게 소개해보고자 한다.
SM 엔터테인먼트에서는 그들의 세계관을 함축한 다큐멘터리를 공식 유튜브 계정에 공개했다. ae는 또 다른 나이며, 나와 똑 닮았으면서도 나와는 또 다른 인물로 정의된다. 아바타인 ae는 가상 세계에서 살고 있으며, 현실 세계의 ‘나’와 ‘ae’는 그 중간 세계인 디지털 세계에서 만난다.
나와 ae의 대화, 만남, 교감을 SYNK라고 하는데 이를 측정하는 척도인 SYNK LEVEL이 최고조에 달하면 ae는 현실 세계에 나타날 수 있고, 이를 도와주는 역할이 naevis이다. 반면 SYNK를 방해하는 ‘빌런’의 역할이 바로 Black Mamba이다. Black Mamba는 광야에 살고 있고, 그를 잡기 위해 에스파는 ‘무정형의 공간’ ‘광야’로 떠나게 된다. 그리고 아직 많은 정보가 알려지지 않은 ‘KOSMO’에 닿는 것이 최종 목표인 듯하다. KOSMO는 'Next Level'이나 NCT U의 '90’s Love'등에서도 등장한다.
이런 배경 지식을 알고 나면, 퍼포먼스와 음악성만으로도 뛰어난 에스파의 음악을 더 깊이, 진심으로 즐길 수 있게 된다. 난해했던 단어들이 하나의 스토리로 이어진다. 컨셉슈얼한 음악을 별로 사랑하지 않는 편이었는데, 워낙 탄탄하게 쌓아 올린 스토리에 코로나 시대에 더욱 열광할 수 있는 가상세계, 메타버스와 결합한 세계관은 단숨에 에스파의 세계관에 과몰입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생각했을 때는 ae-에스파는 우리가 잘 모르고 있는 ‘우리의 자아’인 것 같기도 하다. 바로 이 점이 에스파에게 유난히 마음이 쓰인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대학 입학 후 자아를 찾느라 무진장 애를 쓴 기억이 있다. 사실 현재 완료 진행형으로 계속되고 있다. 나뿐만 아니라 현대인들은 나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싶어 하고, 자아와 끊임없이 소통하며 자신만의 길을 나아가고자 하고, 내면의 소리를 들으려 하지만, 생각만큼 쉽지 않고, 잘 모르는 부분이 많다. 세계관 다큐멘터리에서 ae의 존재 자체를 모르고 지나치는 사람들도 많다고 언급하고 있는데, 이 점이 바로 현대인들과 자아의 관계와 겹쳐 보인다.
내 현재 상태가 마치 광야를 떠돌고 있는 것 같다. 예전부터 뚜렷한 꿈이 있었지만, 입문하기 조차 힘들고 문이 매우 좁은 업게 현실 특성상 닿고 싶어도 마음대로 닿을 수 없는 KOSMO에 있는 것만 같다. 그의 존재는 명확하지만 노력한다고 가능성이 더 커지는 것도 아니고, 점점 더 불안해진다. 내 앞길을 블랙 맘바가 강하게 가로막는 상태이고, 그의 환각 퀘스트를 하루에도 몇 번씩 당하는 느낌이다. 나비스의 도움이 절실했고, ae-에스파와 결속하길 바랬으나 마치 ‘SYNK OUT’된 것처럼 노이즈같이 희미했다. 끝없는 고독한 질주를 반복했다.
외로웠다. 나의 가장 가까운 친구가 되어주기도 하는 ae마저 블랙맘바의 방해로 SYNK에 계속 실패하는 기분이었고, 나는 나 자체와, 또 나와 가장 가까운 친구와 계속 멀어져 가는 것 같았다. 나는 계속 광야를 떠돌고 있고 역시 넓은 광야 어딘가에서 나름대로 또 떠돌고 있는 내 ae를 찾아 헤매고 있다. 이때 블랙맘바를 처치할 것이라는 확실한 목표가 있는 4명의 에스파가 같은 목표를 바라보고 있는 친구가 되어주었다.
‘윈터 흑막설’, ‘카리나 흑막설’ 등 내 옆의 친구가 사실 빌런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같은 의지를 가진 친구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나에게 힘이 되고, 맞은 편의 친구와 손을 놓지 않고 같은 목표를 확인하며 전진할 힘을 얻는다. 당당한 그들의 노래는 우리에게 각자의 블랙 맘바를 처단하고, 유혹에 이기며, 위협적인 상황에서도 ‘제껴라 제껴라’하며 고난을 이겨낼 힘을 서사한다.
이것이 바로 노래의 힘이 아닌가. 세 타이틀곡에는 모두 비장함이 가득하고, 화자의 자신감도 넘친다. 무기력한 상태에서 그들의 노래를 찾게 되고, 그들의 노래를 들으면 힘을 또 얻는다. 왠지 힘이 넘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때 그들이 같은 처지로 공감할 수 있는 친구가 되어주는 듯하다.
Savage에서 그들이 블랙맘바를 처단했다는 사실 자체가 사실은 환각 퀘스트였다는 “썰”도 있지만, 에스파가 자신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 그들의 목표를 이룬 만큼 나도 목표를 이룰 수 있다는 희망과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기도 한다. 그들의 다음 이야기도 궁금해진다. 블랙 맘바 외의 다른 빌런이 있는지, 또 다른 시련이 찾아왔는지, 아니면 나비스와 함께 행복한 생을 보내고 있을지. 마치 마블 시리즈나 해리포터 시리즈의 개봉처럼 다음 편을 목이 빠져라 기다리게 된다.
따뜻한 말로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노래만이 힘을 갖고 있지 않다. 언뜻 보면 그들만의 세상인 것 같은 화려한 아이돌의 노래에서도 살아갈 힘을 얻는다. 앞으로의 에스파의 행보도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지켜볼 예정이다. 나의 과몰입도 앞으로도 계속될 예정이다. 에스파 그들도 나도 블랙맘바를 처치하고 결국 코스모에 도달하는 결론을 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