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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영 Dec 14. 2023

안녕, 어제의 나

호기롭게 시작했던 프랑스 유학은 잠시 중단되었다. 이유는 절대 늘지 않는 나의 프랑스어 실력 때문이다. 조금은 아니 꽤 많은 서러움과 창피함이 나를 괴롭히고 있지만 하루를 천천히 버티려고 노력하고 있다. 나이가 들어서 조금 좋은 이유는 이런 상황을 직면할 때 무작정 무너지지는 않는 거다. 그동안 수많은 소소한 실패들이 시간이 지나면 아무렇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 편에 불편한 감정은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과거의 시간들로 돌아가면 아무것도 아닌 것을 이내 깨닫게 된다. 어떤 일들을 계획하였을 때 포기했던 것들도 있고 실행했던 것들도 있다. 포기했던 것들은 어떤 것은 아쉬움으로 자리 잡고 있고 어떤 것들은 포기하길 잘했다며 나를 위로하는 것들도 있다. 실행했던 것들은 성공했던 것들도 있고 중도 하차했던 것과 실패한 것들도 있다. 이렇게 시간이 지나 천천히 생각해 보면 아무렇지 않았던 것들이 그때에는 망설이기도 하고 힘들어하기도 하는 것 같다. 


2022년 6월, 코로나가 서서히 잦아드는 그 시점에서 나는 프랑스의 중부의 작은 도시, 비쉬로 향하는 비행기를 탔다. 그 당시 한국에서 어학원을 다니고 있었는데 원어민 선생님이 프랑스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무엇을 하고 싶냐고 물어보았다. 나는 그때 아무런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워낙 수업시간에 말수가 적은 학생이라 선생님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지나갔지만 내심 서운해하는 것 같았다. 이런 선생님의 마음이 느껴져 짐정리를 먼저 할 거라며 우물쭈물 대답했다. 하지만 나의 대답은 선생님을 더욱 속상하게 만들었다. 선생님의 입장에서 본다면 본인의 모국어를 배우고, 본인의 모국으로 곧 떠나는 학생의 모습에 즐거움과 설렘은 없고 두려움이 가득한 모습만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 그때의 나는 언제나 두려웠다. 나이가 들어가는 유학이라 내가 가진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것이 어려웠다. 모든 것을 실패하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것이 무서웠고, 성취한 것 하나 없이 무일푼이 되는 것이 무서웠다. 의료접근성이 좋지 않은 나라에서 사는 두려움도 컸고 친구를 사귀지 못할 것 같은 염려도 매우 많았다. 나름 사회생활을 10년 하고 떠나는 지라, 모든 척척 할 수 있는 내가 어린아이가 되어 모든 것을 0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이 무서웠다. 유난히 느린 행정을 자랑하는 그 나라의 행정 처리 속도가 겁이 났다. 오래된 건물에서 살아야 하기 때문에 만나게 될 수많은 벌레와 어려움이 무서웠다. 즉, 결국 한국에서 내가 경험하고 성취하였던 모든 것들이 변화된 상황에서 살아가는 것이 무서웠다. 


하지만 일 년이 지난 지금, 내가 상상했던 대부분의 두려움들은 나를 비웃듯이 아무렇지 않게 나를 지나쳐갔다. 오히려 다른 사건들이 꾸준히도 발생하며 나를 괴롭혔고 또 어떤 날들은 그런 괴로움이 무색하게 하루를 잘 버텨갔다. 그리고 지금 어떻게 하면 프랑스로 돌아갈 수 있을까를 생각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곳에 써 내려갈 나의 이야기들은 프랑스에서 살았던 과거의 나에게 일 년이 지나는 내가 보내는 일종의 응원 글이다. 조금은 낯간지럽지만 걱정했던 것들이 시간이 지나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것들을 알려주고 싶다. 그래서 긴장을 풀고 마음을 놓으며 조금을 즐기며 살아도 된다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글의 순서는 한국을 떠나가는 순간이 아닌, 한국을 돌아오는 시간을 순서로 기록하고자 한다. 그러다 보면 한국을 떠나던 2022년의 인천공항에서 나는 조금 더 가볍고 단단한 마음으로 떠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일단 집 앞 마트에 가서 잠봉과 브리 치즈, 꿀 그리고 화이트 와인을 살 거야. 짐정리는 내일 할 수도 있으니깐 어수선해도 괜찮아. 사가지고 온 음식들을 먹으며 라호셀로 여행 가기 위해 SNCF 앱을 켜서 가장 싼 표를 살펴볼 거야. 그리고 오페라 극장에서 발레공연 일정을 볼 거야. 날이 밝으면 장난감 가게에 들러서 아스트릭스 플레이모빌도 살 거고, 빈티지 샵에 가서 예쁜 그릇도 사고 잠시 살아 갈 공간이지만 나의  공간을 예쁘게 꾸미고 싶거든..." 


다시 대답을 할 수 있다면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나는 평소 낯선 음시에 경계가 강하고 음식의 향이나 맛이 강한 것을 선호하지 않는다. 그래서 생각보다 가리는 음식이 많다. 하지만 프랑스에서 살면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짠 맛이 강한 잠봉이었다. 게다가 Jambon cru로 염장한 돼지 다리를 삶지 않고 얄게 자른 붉디 붉은 잠봉이다. 프랑스에 도착한 첫날로 돌아간다면 그 잠봉크뤼와 꿀을 바른 브리치즈를 안주 삼아 화이트 와인을 한 잔 하고 싶다. 물론 나는 술을 즐겨하지 않는다. 그래도 무사히 잘 도착한 나를 축하해주고 싶다. 프랑스에서 가장 좋아했던 도시, 라호셀을 가기 위해 표를 검색하고 한국에서 꾸준히 배워왔던 발레를 오페라 극장에서 볼 생각에 설레여 했으면 좋겠다. 늘 내일을 살아가느라, 오늘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정신없이 살아가느라 가꾸지 못했던 프랑스에서 작은 공간인 나의 프랑스 방도 따뜻하고 예쁘게 가꾸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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