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 343년, 하늘이 열리고 붉은 용이 압록강에서 승천하여 상서로운 기운이 장안에 가득했다. 그날 밤 마한국에서는 정안왕후가 난산 끝에 쌍생아를 출산하기에 이른다. 천둥이 울리고 비바람이 몰아친다. "뭐라? 쌍생아라고?" "네, 왕후마마, 어찌하오리까?" 정안은 왕궁 승려의 말을 떠올렸다. "쌍생아 중 하나가 붉은 용의 여의주인 자운석의 기운을 타고났으니, 그 아이가 장차 천하의 주인이 될 것이오." 정안은두 갓난아기의 등을 확인했다. 번개가칠 때마다딸 '천녕'의하얀등에붉은빛이나타났다 사라진다.
망설일 시간이 없었다. "그리도 천지신명께 빌고 빌었건만..." 마한에선 여인이 왕이 될 수 없었다. 더구나 쌍생아는 불길한 존재라고 여겼다. 하나는 반드시죽여서 액막이를 했다. 이대로라면 딸은 자운석의 주인이니 죽임을 당하진 않지만왕이 될 수 없을 거고, 천극은 아들이지만 죽게 될 터였다. 정안은 얼른 눈물을 훔쳤다. 장막 뒤 누군가에게 손짓했다. 마한 최고의 살수 '창'이 들어왔다. '창'은 핏덩이를 안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비바람 치던그날, 궁에는정안의 숨죽이며흐느끼는 소리가가느다랗게들릴 뿐이었다.
왕세자 천극은 용의 기운을 타고난 자로 천명을 받든 마한의 후계자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백성들은 칭송을 멈추지 않았다. 오랜 지병을 앓고 있는 진무왕은 이미 세력을잃은 지오래이며, 실권은 정안왕후가 휘두르고 있었다. 하지만 정안은 불안했다. 천극몸에는 자운석의 기운이보이지 않았다. 진무왕은 뭔가알아챈 듯 자주 물었다. 대신들은 상고부터 전해오는 전설대로 천극이 자운석의 봉인을 풀어 백성을오랜가뭄과 기근에서 구해주리라 믿었다. 천극이 17세가 되던 해, 진무왕과 대신들은 자운석을 직접 보길 원했다. 정안은 다시 한 번 피를 묻히리라 결심했다.
'창'은 딸 '천녕'과산속에 살면서 약초를 캐거나 약을 만들어 살았다. '천녕'은어려서부터영민하여 아비를 따라 약초를 팔러 다녔고 병자를 치료하기도 했다. 그녀의 나이 17세, 대갓집 규수못지않은기품과 아리따운 용모로 천리밖까지 소문이 났다. 부녀의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창'은 정안왕후가 보낸 정예군에게쫓기고있었다. '창'은더 이상살생을 하지 않기로 다짐하며 살았다. 17년 전, 갓난아기 '천녕'을 궁에서 데리고 나와 그림자숲으로 향했다. '창'은 자기품 안에서잠든 아기의 천진한 미소를 보고 꺼냈던 단도를도로 집어넣었다. 정안왕후가 다시 그를 찾는다. 이번에는 천극 세자에게 방해되는 진무왕과 충신들을 죽이라는 명일 것이다. '천녕'을 키우며 사람 사랑하는 법을 배웠고 사람 목숨을 지키는 법을 깨달았다. 더 이상악랄한왕후의 사냥개로 살 순없었다. 부끄러운아비가될수 없었다.
왕후의 정예병에 둘러싸인 '창'은 마지막 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 '천녕'을 걱정했다. '천녕'은 아비의 심부름으로 고잔국 왕궁에 천년초를 납품하러 가고 있었다. 고잔국은 황금과 철광으로 번성한 대국으로 마한국과는 항상대립 중이었다. 고잔국 태자 ‘융’이며칠 전사냥을 나갔다 희귀한 독사에 물렸는데, '창'의 약초가효험 있다는소문에그를부른 것이다.
그날따라 '창'은 '천녕'에게 심부름을 보냈고, '천녕'은 태자 '융'을 알현한다. "'창' 대신 왔다고? '천녕'이라고 했나? 내 병을 고치면 큰상을내릴 것이다." 태자 '융'은 '천녕'의 상서로운 기품에 첫눈에 반하고 만다. 고잔국 태후도똑부러지는 '천녕'을 맘에 들어 했다. 이때 전령이 다급히 달려와 '창'의 죽음을 알린다. 하루아침에천애고아가 된 '천령'은 아비의장례를홀로치르며복수를다짐한다. 고잔국태후는딸이없었다. 그로부터 ‘천녕’을양녀를삼아어여삐 여겼다. '천녕'은 공주신분으로궁에머물게됐다. 태자 '융'은몹시 기뻐했다.
그러던중정안왕후의 욕망은 점점 도를 더했다. 진무왕의 단약에 매번미량의 독초를섞었다. 쇠약해질 대로쇠약해진 진무왕은어느 날꿈을 꾼다. 붉은 용이 검은 연기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 왕에게 일갈한다. "자운석이 선택한 아이가 지금 여기 없구나! 부정한어미가잘못된 선택을 하였다! 반드시 찾아 내거라." 진무왕은 진실을 알아챘다. 하지만 이미 늦은 걸까? 상궁을 은밀히 불러 겁박하니 '천녕'의 존재를 털어놨다. 시간이 없다. 정안왕후가 눈치채기 전에 어서 딸을 찾아야 한다.
궁녀 소생인 성락 왕야는 모친과 왕궁 정원에서 차를 마시고 있었다. 마침 산책하던정안왕후 눈에 모자가 눈에 띄었다. 멀리서 정안왕후는 손가락을 까딱했고 어머니 숙의는 부리나케 치마폭을 움켜쥐고왕후에게내달렸다. 성락도 어머니를쫓아정안왕후께 머리를 조아렸다. 어머니가 무시당할 때마다 피가 역류했다. 다른 후궁들과 그 자제들도 마찬가지였다.
정안왕후는 아들 천극세자를 위해서는 피도 눈물도 없었다. 복종하는 자에게만 자비를 베풀었다. 정안왕후에게 유일하게 대적할만한 세도가는 국공 왕비야 뿐이었다. 왕비야는 천극의 숙부로 진무왕의 형이다. 붉은 용의 기운을 타고난 동생 진무에게 왕위를뺏기고속내를 감추고 사는 자이다. 왕비야는 정안왕후의 옛 정인이었으나, 정안은 왕비야를 버리고 왕위에 오른진무를 택했다. 왕비야는때를기다리며비밀리에철광산 기슭에서 반란군을 양성하고 있었다.
한편, '천녕'은 고잔국의 공주로 살면서 태자 '융'의 아낌없는 보살핌을 받는다. "생명을 구해준 널 영원히 지켜줄게." 두 사람은 점점 서로에게깊이빠져들었다. 하지만 '천녕'은 아비 '창'의 원수를찾아야 했다. 결국 '창'의 과거를 알고, 자기를 지키려 한 '창'의 진심에 가슴 아파한다. '천녕'은아비의 원수 정안왕후를 처단하기 위한 계획을 짠다. 한편왕후의 측근은 '창'의 오두막을 불태우려다 '창녕'의 흔적을 발견한다. 이에 보고를받은정안은 딸의 생사를 의심하고 '천녕'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진무왕은 서서히 죽음이 가까이 왔음을 직감했다. 천극을 부른다. "긴히할 말이있다. 너는 진정왕이 되고 싶으냐?" "네, 아바마마, 저는 자운석의 봉인을..." "틀렸다. 네가 더 잘 알지 않느냐. 잘 듣거라. 네겐 쌍생아 누이가 있다. 반드시 찾아 내거라. 네 어미의 욕심으로 죽을 고비를 맞았지만 이 마한을 살릴 수 있는 아이는 그 아이뿐이니라." 천극은당황했다. 어머니정안왕후의기대와집요함에늘쫓기듯살았던자신이었다. 시와서화를좋아하고자연을벗 삼아자유로이살고싶었거늘, 어느새세자자리에 앉아어머니눈치를보며사는꼭두각시에불과했다. 누이를만나고싶다. 찾아내자.
사흘후정안왕후의성대한생일잔치가열렸다. '천녕'은무녀로변장하고마한궁으로잠입했다. 태자 '융'은불현듯자취를감춘 '천녕'을걱정한다. 그는무녀에게 '천녕'의출생의 비밀에대해듣는다. 그는비극을 직감하고마한으로쏜살같이말을달린다. 악공들이연주하는선율과무희들의요염한춤사위가경전전을휩감는다. 무리속에서춤을추던 '천녕'의눈빛이바뀐다. 정안왕후는대신들의술잔을받고호탕하게웃어재낀다. 이때 '천녕'은독묻는단도를정안의 심장을향해있는힘껏던진다. 이순간을위해무수히연습해 왔다. 사람목숨을파리목숨으로여기는희대의요녀를반드시죽여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