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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민재 Feb 22. 2024

비건 쫓던 페스코 지붕 쳐다본다

채식 슬럼프를 아시나요?


사실 특별하게 챙겨 먹는 귀한 보양식이나 값 비싼 필라테스 운동 같은 것이 그 사람을 이루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나라는 사람의 몸은 그런 것들보다는 일상적으로 먹는 음식이나 습관적으로 취하는 자세들의 반복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중에서도 먹는 것의 중요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하지만 가공식품과 간편식품, 배달의 시대에서 우리가 먹는 음식의 재료를 하나하나 따져가면서 먹기란 너무 품이 많이 드는 작업이 되었다. 팜유, 정제 설탕, 식물성유지, 황산칼슘, 무슨 무슨 추출물… 우리가 먹는 음식에 들어가는 것이 무엇인지를 다 알기 위해선 식품영양학과 졸업장이 필요할 것이다.



그럼에도 먹는 일에 대한 사유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어떤 존재들의 생명을 위태롭게 하기도 하며 심지어 죽이기도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몇 해 전부터 한국에서도 건강, 동물권, 기후위기 등을 이유로 채식을 실천하는 사람의 수가 늘었다. 한국 채식 연합에 따르면 2021년 국내 채식 인구는 250만 명이라고 한다. 이는 2008년에 15만 명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16배나 증가한 숫자이다. 동물로부터 비롯된 모든 것을 먹지 않는 비건부터 닭이나 돼지, 소 등 동물을 먹지 않되 유제품이나 닭알, 물살이는 먹는 페스코 등 다양한 채식 방법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내가 처음으로 채식에 도전했던 때는 2020년이었는데, 시작부터 무려 비건을 결심했었다. 당시 비건은커녕 채식에 대한 아무런 노하우나 배경지식 없이 오로지 비건의 당위성에 대한 뜨겁고 격한 동조만으로 시작을 결심했다. 하지만 채식은 한번 특별하게 챙겨 먹는 특별식이 아니라 생활에서 꾸준히 차려야 하는 삼시 세 끼이다. 먹는 일은 곧 삶이기 때문에 음식을 바꾸는 데에는 많은 생활의 지혜와 지식이 필요하다. 비건을 결심한 다음에야 모든 동물성 식품을 먹지 않고 오늘과 내일의 식사를 어떻게 건강하고도 다양하게 할 수 있는지, 다음 주에 있을 술자리에서는 어떻게 할지, 지금 냉장고에 쌓여 있는 닭알과 멸치 볶음과 찬장 안의 스팸은 어떻게 처리할지 등등의 크고 작은 고민들이 눈앞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거의 매 끼니마다 모든 섭취와 구매를 의심하고 확인하고 결정하는 일을 반복하는 것은 여태껏 생각 없이 육식을 해오던 나에게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사람들과 함께 밥을 먹을 때 ‘양해’를 구하는 일도 고되었다. 세상에 비건이 훨씬 더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내 채식을 양해해 주는 그들에게 미안함을 느끼는 딜레마에 빠지기도 했다. 비건을 통해 삶 전반을 바꾸는 일은 말 그대로 처음 해보는 귀찮고도 힘겨운 고민의 바다로 뛰어드는 일이었다. 소와 돼지나 닭이 여전히 ‘맛있어’ 보여서 먹고 싶은 욕구를 참는 어려움을 차치하고도 말이다. 호기롭게 시작한 비건은 그렇게 두 달도 채 안 돼서 실패했다.



그 후 2022년부터 페스코 베지테리언으로 산지 일 년 반 정도가 되었다. 동물권과 기후위기와 관련된 다큐멘터리부터 실제로 채식을 하는 사람들의 식사와 생활을 책이나 온라인으로 많이 찾아보면서 ‘나는 왜 육식을 하는가’라는 질문을 다시 던지게 되었다. 정확히는 이 명확하고 필연적인 당위성을 알면서도 왜 이렇게나 모른척하고 살아가기를 선택하는가. 하는 질문이었다. 그렇게나 육식이 좋나? 육식이란 곧 청소년기의 비인간동물을 죽여 그들의 살을 먹는 일, 오로지 먹히기 위한 존재를 태어나게 하는 일, 육식으로 인한 기후위기에 가장 취약한 계층의 인간동물들을 아프고 죽게 하는 일임을 알면서도?



그러던 어느 날 동물권 운동을 하는 비영리단체인 ‘동물해방물결’이 도축 직전의 소 15명을 구출했고 그 후 5명의 소들이 인제의 ‘달뜨는보금자리’에서 돌보미 가족과 함께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알게 되었다. 5명의 소들인 머위, 메밀, 부들, 엉, 창포의 얼굴과 성격을 기억하며 이따금씩 SNS로 소식을 찾아봤다. 마치 고양이처럼 그루밍하면서 자신과 친구의 몸을 단장하고, 겨울에는 눈이 내리는 풍경을 관람하고, 조금씩 돌보미 가족의 도움을 편안히 받아들이는 그들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들이 그런 존재 방식을 갖고 하루하루를 저기 인제에서 보내고 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고 있었다. 마치 내가 내 친구들의 일상을 알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 날들이 쌓여 조금씩 그들이 모두 나와 같은 하나의 개체이자 존재임이 마치 ‘나는 인간이다’와 같이 너무나 뻔하고 선명한 사실임이 몸으로 실감되었다. 그쯤 결심했다. 그래, 탈육식하자. 비건은 내 인생의 숙제 같은 것이니까 비건을 목표로 하자. 그런데 전처럼 되면 안 돼. 그러니까 일단 동물을 먹지 말자. 너무 무겁게 생각 말고 한번 천천히 시작해 보자.



나는 당위성에 매혹되는 사람이다. 반박할 수 없이 마땅한 사실이나 의견을 듣고 그간의 내 모든 핑곗거리와 변명들이 완벽히 무용해지는 순간을 경외한다. 그리고 비건은 나에게 분명한 설득력을 갖고 있다. 하지만 나는 일 년 반이 될 동안 아직도 페스코 베지테리언이다. 가끔씩 크림 파스타와 연어 덮밥을 사 먹는다. 이번 겨울에는 방어도 먹었다. 비건으로 가는 길 중간에서 너무 오래 쉬고 있는 것 같다. 채식하는 삶의 노하우와 지식을 쌓고 그다음으로 넘어가자 해놓고 가만 앉아 그냥 그때가 오겠거니 하며 손 놓고 있는 모양새다. 이 채식 슬럼프를 어떻게 넘을 수 있을지, 언제 또 한 번 단단하고도 가벼운 결심을 내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 말 그대로 비건 쫓던 페스코 지붕만 쳐다보고 있는 꼴이다. 하지만 호기와 의지만으로 일상이 굴러가는 건 아니라는 걸 알기에 일단 지금의 제자리 뜀뛰기 같은 것이라도 부단히 해본다. 이 뜀뛰기로 기른 체력이 채식 슬럼프를 훅 하고 넘겨주리라 믿으면서 거푸 뛰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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