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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동몬 Oct 23. 2023

믿기지 않는 일이 생기고 말았다

내 인생에 없던 일이 일어났다

우리 집안은 아들이 많은 집안이다.


친가는 남자 천국이다.

아버지 대(代), 우리 대에 딸은 딱 한 명씩 뿐이다.

외갓집은 반대다, 어머니 대에는 딸이 더 많고 외갓집의 우리 대에는 아들, 딸이 딱 반반이다.


아내의 집은 딸이 많다.

아내의 외가도 친가도 딸이 남자보다 비율이 훨씬 높은 편이다.


내 인생을 돌이켜 보면 정말 남자들 세상에서만 살았다.

남동생이 있고 남중, 남고에 여사친은 학창 시절까지는 아예 없을 정도였다. 대학생이 되어서야 조금 있었지만 긴 해외생활과 각자의 결혼으로 이제는 아예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재밌는 건 나와 학창 시절에 몰려다녔던 친구들 마저도 여자형제가 없다.

다들 남동생 혹은 형 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여자를 정말 잘 몰랐다. 여자의 감정 뭐 이런 걸 전혀 몰라서 거의 남자 친구들 대하듯이 연애를 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걸 아내를 만나면서, 쫓아다니면서 여자의 마음이나 감정이(몰랐으면 결혼생활이 힘들었을 듯...) 어떤지를 알게 되었다. 나이가 마흔이 다 되어가는데 말이다.


아내가 처음 임신했을 때 우리 부부는 딸이길 바랐다.

결론적으론 아들이었다. 아들도 좋다. 아들도 있어야 된다. 딸 둘인 장인어른을 보면 지금까지 목욕은 늘 혼자 다니셨다. 나는 어릴 때 아버지와 동생과 목욕을 함께 갔었는데 장인어른은 늘 혼자 다니셨다. 목욕탕에 가면 아들과 함께 목욕 온 아버지들이 많은데 나는 어릴 때 항상 그랬는지라 그것이 좋은 건지도 몰랐는데 장인어른을 보면 좀 외롭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지금은 나와 함께 목욕탕을 다니시지만 말이다. (아들과 3대가 함께 목욕탕을 가봤는데 애가 너무 어려서 힘들었다...)


어쨌든 아들도 딸도 하나씩 있으면 참 좋겠다 싶었다.


그러나 이런 나의 바람을 박살 내는 이가 있었으니 내 동생이었다.


형은 미안하지만 둘째도 무조건 아들이다.


예상도 아니고 확신이었다.


사실 그럴 만도 하다.

내가 자라온 환경과 상황 여러 가지 것들을 보면 내가 봐도 딸은 없을 팔자 같다.


인정...


아내가 둘째를 임신했다.

12주가 지나야 성별이 확인 가능한데 성별을 확인 한 날 우리는 환호성을 질렀다.


공주인 것 같네요


일단 90%의 확률이라고 했다.

첫째도 아들인지 딸인지 애매하다고 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래서 긴장감을 늦추지 않았다.


그리고 올해 초 우리 부부에게는 유산이라는 아픔이 있었기에 조심스러웠다.

주변에서 물어보지 않는 이상 임신했다는 이야기 조차 하고 다니지 않았다. 물론 가족은 임신 소식을 다 알고 있었다.


성별이 어느 정도 나왔을 무렵 동생이 물었다.


아들? 딸?


네 생각은?


당연히 아들.


노노, 딸임


구라 치지 마라.


의사 쌤이 90%의 확률로 공주라고 했다.


나는 태어나기 전까지 안 믿겠음.


두 번째 초음파 검사 때도, 세 번째 초음파 검사 때도 딸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이제는 확실했다. 그럼에도 우리 부부는 어디에 알리지 않았다. 그러나 가족은 예외였다.


동생이 또 물어본다.


딸 확실하다 함??


그러함


보기 전까지 안 믿는다.


아내가 출산을 약 두 달여 앞두고 있던 어느 날 동생이 물어봤다.


딸이 확실함?


진짜 확실함.


내 인생에 없던 일이다.


이 말을 듣고 정말 오랜만에 빵 터졌다.


뭔가 내가 생각하고 있던 말을 동생이 끄집어낸 듯한 느낌이랄까?

한참을 웃었다.


내 딸인데 동생이 더 기대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조카 사랑이 어마어마한 동생이다)


딸... 태어나면 만지지도 못할 것 같다.


음... 나도 그러함


동생은 우리 아들(동생에겐 조카)과 정말 잘 놀아준다.

스킨십이 많은 우리 가족이지만 동생은 어머니가 하는 스킨십을 굉장히 귀찮아(?)했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그런 동생이 스킨십을 그렇게 많이 하는 건 처음 봤다. 조카를 만나면 말 그대로 물고 빨고 한다. 하루종일 안고 돌아다니고 하루종일 놀아준다. 피가 당기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드디어 예정일이 다가오고 둘째는 예정일 보다 보름 정도 일찍 태어났다.

아이가 태어나고 정신을 좀 차릴 무렵 가족 단톡방에 순산했다는 카톡을 보내고 얼마 뒤 동생이 전화가 왔다.


딸 진짜 맞음?!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


그러함.


햐... 딸내미 아부지 된 기념이 어떤가?


얼떨떨하네 허허허


햐... 우리 집안에 딸래미라니 정말 믿기지가 않는구먼.


나도 아직 안 믿긴다 허허


동생 말처럼 딸이길 원하긴 했지만 현실이 되고 나니 얼떨떨하다.


사람들은 아내가 임신했을 때 딸이라고 하니 다들 하나 같이 이런 말을 했다.


아들 하나, 딸 하나.
다 가졌네!!


아마 예전 같았으면 자랑하듯 이야기했을 것 같다만 한번 아픔을 겪고 나니 혹시나 뭔가가 잘못될까 조심스러워 자랑도 기쁨도 표현할 수 없었다. 그저


아직 안 태어났다~ 태어나야 알지.
 그리고 태어나서도 건강히 자라야지.
건강히 자라도 요즘 세상이 무서워서 딸 키우기가 쉽지 않겠더라.


라며 조심스러운 대답을 했다.


어릴 때 내가 밖에서 놀다가 다치고 오면 어머니는 크게 혼을 내셨다.

그때는 내가 다치는 것에 대해 왜 그렇게 크게 화를 내는지 몰랐는데 이제 내가 부모가 되어보니 그때 어머니의 반응이 이해가 되었다.


소중한 내 딸(어색)

건강하게, 무탈하게만 자라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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