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아버지도 그랬을까
나에게 있어 아버지는 무서운 사람이었다.
내가 느끼는 아버지는 좀 화가 많은 사람이랄까. 성격이 급하고 버럭 성질이 있어 쉽게 화를 내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그것이 집에서만 그런 것인지 직장생활에서도 그랬을지는 잘 모르겠다.
나도 아버지를 닮아 외향적이고 와일드한 편이었다.
군대에 가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런데 군대에 가서 이런 나의 성격으로 군생활이 쉽지 않았고 결국 나 스스로 변하기 시작했다. 군대에 다녀온 뒤 친구들이 왜 이렇게 변했냐고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더 많이 변했다.
말을 많이 하던 내가 남의 말을 많이 듣는 사람으로 변했고 함부로 말을 내뱉지 않았다. 어릴 땐 조그마한 성공이 있어도 설레발을 쳤지만 나이가 들면서 인생은 길고 훗날 또 어떤 상황이 발생할지 모르기에 늘 평정심을 유지하고 말을 적게 했다.
그리고 화가 많이 줄었다.
아니, 화를 표현하지 않으려는 게 맞는 것 같다. 화는 화를 불러일으킨다. 내가 낸 화는 반드시 더 큰 화를 불러일으켜 더 큰일이 되는 것을 깨달은 후 나는 화를 내지 않으려고 한다. 불쾌한 일이 있어도 불합리한 일이 있어도 참는다. 그런 만큼 내 속은 썩어 들어간다. 자존심이 상하고 왜 그런 상황에서 그렇게 밖에 대처할 수 없었는지 나 스스로에게 화가 난다. 그러나 그 상황에서 화를 냈다면 더 큰일이 생기는 걸 알기에 참을 수밖에 없다. 그것이 어른이고 인간으로서 조금이나마 성숙해지는 과정이 아닐까 싶다.
아버지의 그 성격에 사회생활을 하면 정말 화날 일이 많을 텐데 그걸 어떻게 참았을까? 이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그런데 집에서는 아버지는 화나는 일을, 아니 그다지 화가 날 일이 아님에도(우리가 생각했을 땐) 화를 내는 걸 보았을 때 바깥에서의 참았던 화가 집에서 폭발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왜냐하면 나도 그런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바깥에서 화가 난 일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 때가 있다. 집에 있어도 그 일이 생각나고 가족과 시간을 보낼 때도 생각날 때가 있다. 그러다 가족 중 누군가가 나의 분노 버튼을 눌러 버릴 때가 있고 스스로 컨트롤할 겨를도 없이 폭발할 때가 있다. 집에서는 회사 일로 영향을 받지 말아야지 하면서 나도 모르게 터져버린다.
아버지는 사회적으로 나름대로의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아버지가 승승장구하던 그 시기에 부모님의 사이는 나빠졌고 집안 분위기는 좋지 않았다. 결국 부모님은 이혼했고 우리 가족은 모두 뿔뿔이 흩어져 살았다.
아버지의 버럭 하는 성격은 나도 좀 닮았지만 정말 많이 변했다고 생각했다.
내 아이에게는 절대 하지 않으리라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그런데 아이가 4살이 될 무렵부터 자아가 생기더니 몇 번이고 하지 말라고 했던 행동, 특히 동생을 밀치고 때리는 행동을 계속하게 되면서 내가 그 어린아이에게 아버지가 나한테 했던 버럭 화를 내는 모습을 보이고야 말았다.
육아를 하다 보면 평온했던 마음도 갑자기 분노로 변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때 참지 못하고 아버지가 버럭 했던 모습이 가끔 나온다. 그런 내 앞에서 주눅이 들어 눈물을 뚝뚝 흘리며 네... 네... 하고 있는 아이의 모습을 보면 아버지에게 혼나던 내 모습이 생각나 마음이 너무 아프다. 그러고 나면 아이에게 너무 미안하다.
왜 난 아이에게 이러고 있을까 하며 돌아서면 후회하고 또 후회한다.
그래서는 안되는데, 그렇게 싫었는데, 그렇게 다짐했는데 난 왜 이러고 있는 걸까. 정말 부모를 통해 보고 자란 모습 그대로를 하고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내 아이도 나의 이런 모습을 보고 따라 할 텐데. 하며 나 스스로를 채찍질한다.
결국 나 스스로를 다스려야 한다.
화가 나는 상황에서도 아이에게 좋게 이야기하고 제대로 된 훈육을 해야 한다. 내가 싫어했던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내가 해서는 안되고 또 그걸 아이에게 물려줘서는 안 된다.
결혼하기 전엔 화 한번 안 내던 아내가 아이에게 화를 자주 낸다.
육아를 하다 보면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온다. 아내는 24시간 아이들과 붙어 있다 보니 그럴 수 있지만 나는 다르다. 아빠라는 존재는 가끔 보고 힘센 존재이다 보니 엄마가 내는 화와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스스로 많은 내적 수련이 필요한 것 같다.
이제는 화가 날 일에도 아이에게 시간을 주고(사실은 나에게 시간을 주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빠질 분위기에서도 웃으며 아이를 대하려고 한다. 나의 이런 노력이 훗날 아이와 내 관계에서 좋은 영향을 끼치리라 믿는다.
나의 말투, 나의 행동 하나하나가 아이들이 보고 배우고 그것이 아이들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칠 것이다.
내가 싫었던 아버지의 모습을 아이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도 할아버지의 싫었던 모습을 나에게 하지 않으려 노력하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