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장. 전원 상주라는 조건이 위험 신호인 이유

by 써니

PART1. 시작할 것인가, 말 것인가


제안요청서나 미팅 자리에서 “전원 상주를 기본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라는 말을 들으면, 처음에는 프로젝트에 집중하겠다는 의지나 소통을 원활하게 하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특히 규모가 큰 프로젝트일수록 이 조건은 책임감의 표현처럼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실제로 국가 프로젝트나 금융권, 대기업의 주요 시스템 구축 프로젝트 중 상당수는 상주를 전제로 진행된다. 보안 요건이 까다롭고, 의사결정 단계가 많으며, 잦은 협의가 필요한 환경에서는 상주가 하나의 합리적인 선택이 되기도 한다. 즉, 상주 자체는 문제의 원인이 아니라 프로젝트의 성격을 반영한 결과일 수 있다.


다만 실무를 오래 겪다 보면, 전원 상주라는 조건이 항상 같은 방식으로 작동하지는 않는다는 것도 함께 알게 된다. 그래서 기획자에게 이 조건은 찬반을 단정할 항목이라기보다, 이 프로젝트가 어떤 방식으로 운영될지를 가늠하게 해주는 신호에 가깝다.


전원 상주라는 조건은 단순한 근무 형태의 문제가 아니다. 그 안에는 이 프로젝트가 어떤 방식으로 협의하고, 어디에서 결정을 내리며, 불확실성을 어떻게 처리하려는지에 대한 전제가 함께 들어 있다. 그리고 이 전제가 충분히 정리되지 않은 상태라면, 상주는 협업을 강화하는 방식이 아니라 ‘현장에서 맞추는 방식’으로 작동하기 쉽다.


초기 기획 단계에서 구조가 완전히 정리되지 않은 상태로 시작되는 경우, 상주는 더 자주 업무를 맞춰가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정리되지 않은 부분을 문서로 남기기보다, 현장에서 빠르게 조정하며 진행하기 위한 방식이 되기 쉽기 때문이다. 문제가 생기면 바로 물어볼 수 있고, 결정이 늦어지면 옆자리에서 다시 설명할 수 있으며, 요구가 바뀌면 즉시 대응할 수 있다는 기대가 자연스럽게 깔린다. 이 기대는 상주를 가능하게 만들지만, 동시에 기준을 세우는 일은 뒤로 밀리게 만든다.



고객사와 에이전시, 전원 상주에 대한 다른 기대


전원 상주라는 조건은 같은 단어를 쓰지만, 고객사와 에이전시는 서로 다른 기대를 담고 있는 경우가 많다.

고객사 입장에서 상주는 “옆에 있으면 소통이 빠를 것이다”, “문제가 생기면 바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라는 기대에 가깝다. 반면 에이전시, 특히 기획자 입장에서의 상주는 “언제든지 대응해야 하는 상태가 된다”는 경험에 가깝다. 이 인식의 차이는 프로젝트가 진행될수록 조금씩 누적되고, 결국 가장 먼저 기획자의 부담으로 드러난다.


기획자에게 전원 상주는 집중을 방해하는 환경이 되기도 한다. 기획자는 회의와 회의 사이에서 문서를 정리하고, 질문과 질문 사이에서 구조를 정리해야 하는 역할을 맡는다. 하지만 상주 환경에서는 그 사이가 쉽게 끊긴다.

“잠깐만요.”

“이거 한 번만 같이 볼 수 있을까요?”

“아까 이야기한 부분 다시 설명해 주세요.”


이 요청들은 사소해 보이지만, 상주 환경에서는 회의가 일정 조율 없이 자연스럽게 잡히고, 끝나는 시간도 정해지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면 하루의 대부분이 회의로 채워진다.


문제는 이 회의들이 기획을 대신해 주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회의에서는 많은 이야기가 오가지만, 정리된 기준이나 문서가 남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다. 결국 기획자는 낮에는 설명과 대응으로 시간을 보내고, 실제 기획 작업은 퇴근 이후로 밀리게 된다. 역시 상주 프로젝트에서 회의로 하루를 보내고, 밤이 되어서야 기획서를 붙잡았던 경험이 있다. 낮에는 설명하고, 밤에는 정리하는 구조가 반복되면서 철야가 일상이 되기도 했다.


이런 환경이 길어질수록 기획자의 시간은 ‘기획을 위한 시간’이 아니라, ‘언제든 반응해야 하는 시간’으로 취급되기 쉽다. 그리고 그와 함께 책임의 경계도 점점 흐려진다.

“회의 내용을 전 그렇게 이해했어요.”

“그때는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았나요?”

“상주하셨으니까 알고 계실 줄 알았어요.”


이 말들은 기획자가 의사결정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마치 결정에 참여했던 사람처럼 결정의 결과를 설명해야 하는 위치로 기획자를 밀어 넣는다


물론 모든 전원 상주 프로젝트가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은 아니다. 초기 방향성이 명확하고, 의사결정 구조와 책임 범위가 분명하며, 상주의 목적이 보안이나 협업 효율처럼 명확한 경우라면 상주는 오히려 프로젝트를 안정시키는 장치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기획자가 ‘전원 상주’라는 조건을 마주했을 때 해야 할 일은 찬반을 먼저 판단하는 것이 아니다. 왜 상주가 필요한지, 상주하지 않을 경우 어떤 지점에서 어려움이 발생하는지를 확인하는 일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분명하다면, 상주는 프로젝트 진행을 방해하는 조건이 아니라 오히려 속도와 안정성을 높여주는 선택이 될 수 있다.


이 장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 결국 하나다. 전원 상주라는 조건을 마주했을 때, 그 자체를 평가하기보다 왜 이 프로젝트가 상주를 필요로 하는지, 그리고 그 상주가 어떤 구조 위에서 작동하는지를 먼저 묻는 것. 그 질문에서부터 기획자의 역할은 다시 분명해진다.




다음 장에서는 제안하지 않기로 한 프로젝트에 대해 다뤄보려 한다.

어떤 프로젝트는 시작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한 기획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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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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