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by 써니

기획자는 왜 늘 중간에서 일을 시작할까.?


기획자의 일은 늘 중간에서 시작된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처음부터 기획해보자”라는 말은 거의 없다. 이미 정리된 제안요청서가 있고, 이미 정해진 일정이 있으며, 이미 기대가 만들어진 상태에서 기획자는 프로젝트에 투입된다.


“이 제안요청서 한 번만 검토해 주세요.”

“일정이 빠듯하니, 지금부터라도 조금씩 봐주세요.”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기획자는 이미 프로젝트에 투입된 것이나 다름없어진다. 아직 계약은 체결되지 않았고, 심지어는 계약이 될 것이라고 믿지만 중간에 어그러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음에도 업무는 먼저 시작된다.


이 책에서 말하는 기획자는 프로젝트 관리자가 아니다. 일정과 리소스를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역할은 대부분 PM이나 조직의 관리자가 맡는다. 다만 기획자는 기획서라는 결과물을 통해 이 일정이 왜 위험한지, 이 요구사항이 왜 범위를 흔드는지, 이 프로젝트가 어디에서 무너질 수 있는지를 가장 먼저 감지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기획자는 결정하지 않았지만 설명해야 하고, 관리하지 않았지만 책임을 묻는 질문 앞에 서게 된다.


이 책은 기획을 잘하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또한 기획 스킬을 정리한 책도 아니다. 이미 정해진 것처럼 보이는 상황 속에서 어디까지가 가설이었고, 어디부터가 약속이 되었는지, 그 경계를 어떻게 판단하고 조직을 설득해왔는지에 대한 기록이다. 또한 여기에는 성공한 프로젝트만 담지 않았다. 검토 끝에 시작하지 않기로 한 프로젝트, 여러 이슈로 중단될 뻔했지만 결국 서비스 오픈까지 이어진 프로젝트도 함께 담았다.


기획자는 늘 중간에 서 있다. 이 책이 그 중간에서 조금 덜 흔들릴 수 있는 기준이 되기를 바란다. 

월, 목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