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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잡러지영 Nov 12. 2021

1. 어느 어린 일 중독자의 꿈

안정감에 대하여 (1)

2020년


일 중독.

당시의 나는 위 세 글자로 요약된다.


소녀 가장도 아니고, 아주 조금의 학자금을 제외하고 빚이 있는 건 아니지만, IMF 때 호되게 경험한 불안정함 때문인지, 클수록 일 중독이 되어갔다.


매일 아침 바글대는 경의중앙을 타고 작은 영상회사로 열심히 출근했다. 촬영장에 가는 날이나, 회의가 많은 때면

야근도 왕왕 있었지만, 대체로 규칙적인 퇴근이었다.

퇴근 후에는 중고등 온라인 강의를 나갔고, 연차를 나눠 써서 대학교 강의도 찍었다. 그리고 주말엔 새로운 학위를 따느라 시험에 과제에 학생으로도 바빴다.


거기에 여자 친구로서, 큰 딸로서, 친구로서 각 위치에 모자람 없으려고 애썼다. 당연히 24시간이 모자랐고,

몸과 마음이 망가지는 건 시간문제였다.


그렇게까지 벌어서 뭘 얻고 싶었냐 하면,

누구나 한번쯤 꿈꿨을, 이른 은퇴를 하고 싶었다.


결혼을 하고, 서울 외곽 어딘가에 작은 집을 얻어서, 짝꿍이랑 반려견이랑 살고 싶었다. 그곳에서 하고 싶은 공부도 하고, 글도 쓰고, 틈틈이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그렇게 살고 싶었다. 생각만 해도 안정감을 주는 달콤한 이상향이었다.


그리고 그를 위해서는 열심히 벌어야 했다.

그래야 나의 꿈도 앞당길 수 있으니까.






치욕을 예견하면서도 용기를 내서 사랑에 대해 적을 때, 우리의 손끝에서는 무엇인가 굉장한 존재가 탄생합니다. 그것은 미지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패배를 동경하기에 유난히 아름답습니다. 그곳은 생략과 절제와 가상과 창작과 온갖 가능성이 있는 세계입니다.
이슬아, 남궁인, 『우리 사이엔 오해가 있다』, 문학동네, 2021, 171쪽



좋아하는 책의 인용구를 빌려 시작을 열어본다.

어떻게 프리랜스 N잡러로 살아가고 있는지 그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 일종의 밑 작업이라고나 할까. 사랑에 대한 이야기냐고 하면 그건 아니다. 그렇지만 지난 연인과의 시간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패배를 동경하며 용기를 내본다.

언젠가 지워버릴지도 모를 이 글들을 한 때 가장 가까웠고 고마웠던, 동시에 이 글들을 볼 확률이 매우 낮은 ‘그’에게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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