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강아지에게

100년만 더 건강하자

by 연월

올해로 10살이 된 강아지와 함께 살고 있다. 그리고 10살이라는 숫자는 어느 때보다 뜻깊다. 왜냐하면 2024년은 강아지와 나에게 정말 힘겹고 아팠던 한 해였기 때문이다. 2024년의 첫날, 불행이 시작됐다. 몇 달 전부터 종종 경직증상이 있었는데 당시 다니던 병원에서는 일시적인 증상일 수 있으니 지켜보자고 했다. 잊을만하면 한 번씩 반복되는 증상에 결국 동네에서 큰 A동물병원에 CT를 예약했다. 그날이 바로 1월 1일이었다. 원래 다니던 병원에서도 심장이 안 좋은 아이들한테 종종 일어날 수 있는 증상이라고 들었기에 CT 마취 전 검사를 하고 대기할 때까지만 해도 심각성을 느끼지 못했다. 엄마와 새해 첫날 기념으로 강아지에게 줄 특식에 대해 얘기하고 있을 때 주치의 선생님이 심각한 표정으로 다가오셨다. "아직 확실하진 않은데 아이 초음파상 부신 쪽에서 뭐가 보여요. 좋지 않아 보이는데 일단 먼저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서 나왔습니다. 정확한 결과 나오면 다시 말씀드릴게요" 이 말을 들은 후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별일 아닐 거라고 생각하고 와서인지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였다. 당연히 내일도, 다음 달에도, 내년에도 우리가 함께 할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우리에게 시간이 얼마 안 남았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하늘이 무너졌다.


면담을 통해 들은 결과는 더 심각했다. 부신에 종양이 있는데 이미 많이 진행되었고 주변 혈관에도 전이가 되어있었다. 많은 이야기 끝에 주치의 선생님의 결론은 '치료할 수 없으니 호스피스를 준비해라, 당장 잘못돼도 이상하지 않다'였다. 어이가 없었다. 강아지가 어릴 때부터 몸이 약했던 탓에 6개월마다 건강검진을 꾸준히 받아왔고 그동안 한 번도 부신 종양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면담 때부터 집에 올 때까지 눈물이 끊임없이 흘렀다.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히 품에 안고 있던 아이를 갑자기 보낼 준비를 하라니, 처음에는 이해도 잘되지 않았다. 집에 와서 한참 울다가 밤늦게 노트북 앞에 앉았다. 아픈 강아지를 키우는 가족들이 많이 가입되어 있는 카페에 혹시 비슷한 증상이 있는 아이가 있는지 글을 올렸다. 그러자 다른 병원에 가보라는 댓글이 주르륵 달렸다.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밤새 병원 정보를 수집하고 공부했다. 당시에 학교 조교로 근무 중이어서 점심시간에 빈 상담실에 들어가 울면서 병원에 전화를 돌렸다. 전국적으로 유명한 병원들이다 보니 예약기간이 길었다. 아이가 당장 잘못돼도 이상하지 않다는 말을 들은 탓에 2주 이내로 예약이 가능한 병원 위주로 예약을 잡았다. 그리고 A동물병원에서 진료 소견서를 부탁드렸다. 그러자 주치의 선생님은 그런 나를 안쓰럽게 바라보며 '여기도 작은 병원이 아니다. 다른 곳에 가도 비슷할 거다'라는 말을 하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이 말을 듣고 아이를 다른 병원에 데려가지 않았다면 어땠을지.. 정말 끔찍하다. 며칠 후 원래 다니던 동물병원 원장님이 직접 전화를 하셨다. 본인이 미리 발견하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이었다. 말없이 울다가 전화를 끊었다.


다음으로 찾아간 B동물병원에서도 진단은 같았다. 수술조차 해볼 수 없었다. 아이가 몸이 약했던 탓에 나중에 병원비가 많이 들걸 대비해 대학생 때부터 꾸준히 아르바이트를 하며 병원비 적금을 들어놨었다. 늘 돈이 부족할걸 걱정했지, 치료할 방법이 없어 돈을 쓸 수도 없을 거라는 상상은 한 번도 해보지 못했다. 세 번째로 찾아간 C동물병원은 전국에서 부신 종양 수술로 제일 유명한 곳이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긍정적인 소견을 받은 곳이기도 하다. 다른 곳에서는 심장병 때문에 CT조차 찍지 못했는데, 여기서는 마취과 수의사님의 관리 하에 CT촬영을 했다. 그리고 수술을 해 볼 만하다는 답변을 들었다. 물론 위험한 수술이었고 사망률은 15-20%였다. 하지만 포기하라는 말만 들었던 나에게는 생존율이 80%에 달한다는 말로 들렸고 시도해 볼 수밖에 없었다.


수술예약이 꽉 차있어서 수술은 3주 후로 잡혔다. 그때까지 아이가 못 버티면 끝이었다. 피 말리는 3주였다. 약을 먹지 않는 강아지를 붙잡고 매일 울었고, 결국 매일 집 앞 동물병원에 찾아가 비용을 지불하고 약을 먹여달라고 부탁했다. 집에서 먹이면 하도 싫어해서 스트레스를 받을까 무서웠기 때문이다. 점점 내 멘털이 무너졌다. 갑자기 머리카락이 거슬려서 가위로 머리를 다 잘라버렸고, 복용하던 약도 두 배이상 늘었다. 원래 3주였던 신경정신과 주기도 일주일로 바뀌고, 진료실에 들어가서 멍하니 울기만 하는 나를 보고 선생님은 조심스레 대형병원 응급실 방문을 권유하시기도 했다. 너무 많이 울어서인지 양쪽 눈에 염증이 생겨 눈을 깜박거리기도 힘들었다. 혹시라도 아이가 내가 보지 못할 때 떠날까 봐 매일 밤을 지새웠다. 수술날만을 기다리며 버텼다.


대망의 수술날, 아이가 수술에 들어가기 전 마지막으로 인사하라며 10분 정도 시간을 주셨다. 그만큼 위험한 수술이었다. 아이를 붙잡고 다시 보자는 말만 계속 되뇌다가 헤어졌다. 아이가 불안해할까 봐 눈물은 꾹 참았다. 대기실에 앉아 기다리는데 얼마나 시간이 안 가는지 1분마다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하며 울기만 했다. 그렇게 2시간이 조금 넘었을 때 아이가 마취에서 깨어났다는 연락을 받고 주치의 선생님을 만나러 갔다. 수술 중 몇 번이나 위험한 순간이 있었지만 아이가 잘 버텨주었고, 덕분에 잘 끝났다고 하셨다. 그때까지도 현실 인식이 잘되지 않았다. 면회하러 가서 입원장에 비몽사몽 누워있는 아이를 보니 그제야 우리에게 미래가 생겼다는 게 실감이 났다. 아이 이름대로 모든 순간이 행운이었다. 물론 수술 후에도 위험하다는 말을 들었기에 이틀 동안은 병원 근처에 숙박을 잡고 지냈다. 아이가 워낙 약하고 상태가 안 좋았기에 수의사 선생님들도 5일 이상은 입원을 해야 할 것 같다고 걱정하셨다. 하지만 걱정이 무색하게 아이는 빠르게 회복하여 3일 만에 퇴원 허락을 받을 정도로 나아졌다. 하지만 불안한 마음에 5일 입원 후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1년이 지났다. 우리는 아직 함께다. 아이 십자인대 때문에 계속 다리가 아프지만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하루하루다. 우리가 함께 하는 시간 자체가 기적이란 걸 알기에 더 소중하다. 10년이 지나도 헤어짐은 슬프겠지만 부디 우리의 시간이 천천히 흐르길 바라고 또 바라본다.


마무리는 건강하게 살아낸 행운이 자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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