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여행, 모리셔스 섬. 2018년 12월
선배 기자의 선배의 선배가 활동했던 시절. 확실히 여성 기자들은 희소했다. 정치, 사회, 경제, 문화 분야에 걸쳐 여성 기자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전 분야에 젊은 여성 기자들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들은 누구보다 예리하고, 매섭게 질문을 쏟아낸다. 때론 무거운 장비를 들고 현장도 누빈다. '이젠 여성 기자의 비율이 높아졌다'는 말은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활발해졌다'는 옛말처럼 조금 진부하다.
하지만 임신 혹은 출산한 여성 선배들의 경우, 하나둘씩 일터를 떠났다. 그들이 떠나는 이유는 일반 직장 여성이 회사를 떠나는 이유와 비슷했다. 남편 대신 일자리를 포기하고 아이를 더 잘 케어하기 위해서였다. 혹은 조금 더 안정적인 노동을 하기 위해서였다. 또 다른 이유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 지인과 선배들을 지켜보며 생각했다. '나는 절대 떠나지 말아야지' 하고 말이다. 무엇보다 육아와 출산 때문이라면 더더욱.
사실 이렇게 헐렁하게 생각할 수 있었던 이유가 있었다. 임신은 내게 희미한 가능성이었기 때문이었다. 임신은 하면 하는 거고, 어쩌면 안 할 수도 있는 '어떤 것'에 불과했다. 의무도 아니고, 필수는 더더욱 아니었다. 지금 나는 나 자체로 정말 행복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사랑하는 남자도 내 곁에 있었다. 심심하지도 지루하지도 않았다. 이렇게 살아도 무방했다.
우리의 결혼식장 천장. 2018년 12월
하지만 '결혼'은 나 혼자만의 삶이 아니다. 결혼은 나의 삶에 배우자의 삶을 함께 녹여내는 과정이다. 그의 '희망'을 나의 '삶'에 함께 섞어내야 한다. 그렇다 보니 임신이란 테마가 등장하지 않을 리 없다. 우리 부부 역시 임신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생각보다 남편의 대답은 심플했다. "세운이 네가 원하면 갖고, 네가 원하지 않으면 갖지 말자".
처음엔 모호한 대답이 내심 서운했다. 갖고 싶으면 갖고 싶은 거고, 싫으면 싫은 거지, 저 대답은 뭔가 싶었다. 하지만 선택권을 전가하는 듯한 대답 속엔 아내에 대한 절대적인 존중이 녹아 있었다. 만약 그가 절대적으로 아기를 갖고 싶은데, 저렇게 대답해준 거라면, 배려해줘서 고맙다고 응답해야 할 일이었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내가 '아이를 가져도 잘해나갈 수 있겠다'고 결심한 것은 이 대답에서 시작됐다. 더 정확히는 남편의 존재에서 시작됐다. 직접적인 출산의 당사자인 아내의 의견을 먼저 물어봐 주고, 아내의 삶을 소중히 여겨주는 사람이라면, 아이라는 커다란 우주를 함께 짊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시간이 흐르면서 깨닫게 됐다. 신랑의 대답은 아기가 있어도 우린 행복할 것이고, 없어도 행복할 것이라는 말의 축약본이라는 것을. 그래도 개인적으로 느끼기에 그는 아이를 더 원하는 쪽인 것 같다.
그렇게 우린 아이를 낳기로 결심하고 본격적으로 준비하기 시작했다. 밤늦게 일하는 아내와 업무 스트레스가 높은 남편이 아이를 준비하는 과정은 참 쉽지 않다. 정신적으로 지치고 육체적으로 고단해지기 일쑤인 요즘, 출산은 경력·업무 단절로 이어진다는 공포가 문득문득 들쑤시고 올라온다. 무섭다. 나는 계속 일할 수 있을까. 떨림 속에서도 재정비하고 일어설 수 있는 이유는 배우자 덕분이다. 여전히 사회는 일하는 여자의 임신을 환영하지 않는다. 그런 때, 배우자의 연대는 일하는 여자에게 용기를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