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리뷰
도서: <죽음의 수용소에서>
작가: 빅터 플랭클
옮김: 이시형
4월 1일에 완독 한 책이다. 이미 많이 유명한 책이어서 알고 있었고, 최근 독서모임에서 읽었던 김봉진 님의 <책 잘 읽는 방법>에서 도끼 같은 책을 31권 소개했는데, 그중의 한 권이었다. 드디어 구매해서 읽어봤다.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빅터 프랭클이 나치의 집단학살 시기에 진짜 '죽음의 수용소'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책이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또 완독 한 후 마음이 아팠고 기분이 아주 묘했다. 나라면,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까?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어떤 '희망'을 갖고 버텼을까?
아우슈비츠.
이 이름을 책을 읽으면서 정확하게 기억하게 되었다. 막연하게 들어봤던 악명 높은 수용소라는 것만 알았다. 하지만, 이곳에서(만) 4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400만 명!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인간이 인간에게 어떻게 이런 잔혹함을 자행할 수 있을까? 말이 안 된다.
저는 나름 긍정적인 마인드의 소유자라고 자부하지만, 그래도 적지 않은 상황에서 힘듦을, 불편을, 걱정을 호소한다. 책을 덮은 순간, (굳이 비교할 이유는 없지만, 그래도) '나는 정말 좋은 시대에 태어났고, 정말 좋은 삶을 살고 있구나!'라는 반성과 생각이 번쩍였다. 머리에서가 아닌 가슴에서 말이다.
저자 빅터 프랭클은 오스트리아의 뛰어난 정신과 의사이자 철학자다. 하여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단순한 역사적인 사실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과 삶의 의미에 대한 철학적이고 심리적인 탐구를 깊이 있게 한다. 프랭클은 수용소에서의 경험을 통해 인간이 극한 상황에서도 내면적으로 어떻게 생존하고 삶의 의미를 찾아낼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로고테라피'이론을 창립했다.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읽기 어렵지 않다. 220페이지로 되어 있고, 앞부분은 수용소에서 발생한 수많은 '사건사고'들이라 가슴 아프지만 많은 충격과 반성을 가져다주는 '스토리'를 읽는 기분이다. 뒷부분에 나오는 '로고테라피'이론은 개인적으로 한 번에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했지만, 중점 부분을 거듭 읽다 보니, 충분히 이해되었고 심지어 '로고테라피'이론에 찬성하는 쪽이 되었다.
죽음조차 희망으로 승화시킨 인간 존엄성의 승리, 수많은 차원 높은 생각을 가져다주는 책--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꼭 읽어보길 바란다.
(책을 읽으며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내용을 기록해 봅니다. 그리고 초록색 글씨로 저의 소소한 생각을 담아봅니다.)
강제 수용소에서의 체험
. 저명인사의 시련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이름도 없이, 기록도 없이 죽어 간 수많은 사람의 희생과 시련, 죽음에 관한 이야기이다.
▶ 400만 명 넘는 이름도 없이 숫자 몇 개로 불렸던 희생자들의 이야기. 정말 정말 만 번 생각해도 만 번 납득할 수 없는 잔혹함이다...
. 함께 들어온 90퍼센트는 죽음을 선고받았다.../화장터 문에 유럽 여러 나라 말로 '목욕탕'이라고 쓰여 있다고 했다.
▶ 이 90퍼센트의 사람들은 대부분 노인, 어린이, 여성, 몸이 성하지 않으신 분들이다. 단지 일할 수 있는 '능력' 충분하지 않다는 이유로 비누 한 개씩 쥐어주며 '목욕탕'으로 보내어 살해했다. 하... ㅠㅠ
. 이제 벌거벗은 몸뚱이 외에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처지가 된 것이다.
. "인간은 어떤 환경에도 적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방법에 대해서는 묻지 말아 주십시오."
. 오히려 가스실이 있다는 사실이 사람들로 하여금 자살을 보류하게 했다.
▶ 처음에 이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차피 '죽음'이 결론이라면, 조만간 가스실에서 죽음을 당할 것이니 굳이 자살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인가요? 이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어떻게 이해해도 너무 마음이 아프지만요...
. 그러다가 우연히 창밖을 봤다. 방금 전 밖으로 옮겨진 시체가 동태 같은 눈을 하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두 시간 전에 나와 이야기를 나누었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나는 곧 다시 수프를 먹었다.
. 정작 참기 힘든 것은 육체의 고통이 아니다. 부당하고 비합리적인 일을 당했다는 생각에서 오는 정신적 고통이다.
▶ 우리의 '강대한' 정신은 '허약'한 육체에 갇여있다. 인간 신체는 많은 부분에서 비합리적이게 설계되었다고 한다. 육체의 고통은 정신으로 버텨낼 수 있지만, 정신이 타격당할 때, 육체는 정신을 지탱해 줄 수 있을 만큼 강하지 못하다.
. 우리 중에서 정신력이 가장 강한 것으로 알려진 사람도 맛있는 음식을 다시 먹게 될 그날을 그리고 있었다.
. 나는 아내가 아직 살았는지 죽었는지조차 몰랐다.../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의 육신을 초월해서 더 먼 곳까지 간다. 사랑은 영적인 존재, 내적인 자아 안에서 더욱 깊은 의미를 갖게 된다.
▶ 이 부분을 읽으면서 너무 절절해서(사실 저자가 엄청 감성적으로 쓰지는 않았지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리고 그 의미를 눈 감고 상상해 보았다.
. 유머는 자기 보존을 위한 투쟁에 필요한 또 다른 무기였다.
▶ 유머를 어느 정도 잘 활용하는 사람으로서 이 말에 감히 동의한다고 얘기하고 싶다.
.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행복했다. 이 수용소에는 굴뚝이 없고, 아우슈비츠는 여기서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 있다.
. 그러나 만약 내가 죽어야 한다면 나는 내 죽음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다.
. 기아에 시달린 나머지 드디어 수용소 안에서 인육을 먹는 사태까지 발생했던 모양이다.
. 인간에게 모든 것을 빼앗아 갈 수 있어도 단 한 가지, 마지막 남은 인간의 자유,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고 자기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만은 빼앗아 갈 수 없다는 것이다.
▶ 나는 '자유 free'라는 단어를 참으로 좋아한다. (쇠골에 'free my soul.'라는 레터링 타투가 있다.) 하지만 여기서 이야기하는 '자유'를 읽은 뒤, 이 단어에 대해 좀 더 많이 생각해 보았다. 내가 막연하게 그렸던 '자유'가 이 부분에서 뭔가 실루엣이 보이듯 했다.
. 시련은 운명과 죽음처럼 우리 삶의 빼놓을 수 없는 한 부분이다. 시련과 죽음 없이 이간의 삶은 완성될 수 없다.
. 미래의 목표를 찾을 수 없어서 스스로 퇴행하는 사람들은 과거를 회상하는 일에 몰두한다.
▶ 과거보다 미래와 현재에 몰두하는 사람이 되자.
. 감정, 고통스러운 감정은 우리가 그것을 명확하고 확실하게 묘사하는 바로 순간에 고통이기를 멈춘다.
▶ 그런가? 그렇다면 왜?
. 니체: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
▶ 이 말이 책에서 여러 번 나온다. 역시 'Why'가 중요하다.
.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삶에 무엇을 기대하는가가 아니라 삶이 우리에게 무엇을 기대하는가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인생이란 궁극적으로 이런 질문에 대한 올바른 해답을 찾고, 개개인 앞에 놓인 과제를 수행해 나가기 위한 책임을 떠맡는 것을 의미한다.
▶ 사람은 왜 사나요? 그 해답을 찾아내기 위해서 산다.
. 니체: 나를 죽이지 못한 것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들 것입니다.
. "그대의 경험, 이 세상 어떤 권력자도 빼앗지 못하리!"
▶ 나의 회사의 슬로건은 '수많은 좋은 경험에 열광하는'이다.
. 우리는 글자 그대로 기쁨을 느끼는 능력을 상실하고 말았던 것이다.
. 엄청난 정신적 억압을 받다가 갑자기 풀려난 사람은 도덕적, 정신적 건강에 손상을 입을 위험이 크다.
.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옳지 못한 것을 했다 하더라도 자기가 그들에게 옳지 못한 짓을 할 권리는 어느 누구에게도 업다는 평범한 진리를 일깨워 주어야 한다.
로고테라피의 기본 개념
. 설문에서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학생 16퍼센트가 '돈을 많이 버는 것'이라고 대답한 반면, 78퍼센트는 첫 번째 목표가 '자기 삶의 목표와 의미를 찾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 하지만 정작 현실은 일단 돈을 버는 것이 강제적인 옵션이 되어버렸던가요? 그렇다면 이미 돈을 많이 번 부자들이 자살하는 행위는 어떻게 해석하나요? 이런 질문들은 또 일단 내가 돈을 많이 벌어봐야 알까요?
. 인간에게 실제로 필요한 것은 긴장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가치 있는 목표, 자유 의지로 선택한 목표를 위해 노력하고 투쟁하는 것이다.
▶ 이 말에 굉장히 공감한다. 다 놓아버리겠노라 하는 긴장 없는 상태가 아니라, 자유 의지로 행하는 선택이 훨씬 값진 것이다. 자유 자유 자유
. 오로지 책임감을 갖는 것을 통해서만 삶에 응답할 수 있다. 따라서 로고테라피에서는 책임감을 인간 존재의 본질로 본다.
. 인생을 두 번째로 살고 있는 것처럼 살아라. 그리고 지금 당신이 막 하려고 하는 행동이 첫 번째 인생에서 이미 그릇되게 했던 바로 그 행동이라고 생각하라.
. 로고테라피에 의한 삶의 의미를 찾는 세 가지 방식:
1. 무엇인가를 창조하거나 어떤 일을 함으로써
2. 어떤 일을 경험하거나 어떤 사람을 만남으로써
3. 피할 수 없는 시련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기로 결정함으로써
. 사랑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그리고 자신이 어떻게 돼야 하는지를 깨닫게 함으로써 잠재 능력을 실현시킬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 4년 5개월째 사귀고 있는 남자친구가 있다. 서로 때문에 서로 절대 도전 안 해봤던 일들을 많이 했다. 그리고 서로 성장했다고 느껴진다. 이런 것이 사랑으로 인한 잠재 능력의 실현일까?
. 불필요하게 고통을 감수하는 것은 영웅적인 행동이 아니라 자기 학대에 불과하다.
. "여러분은 인간이 삼라만상의 진화 과정에서 종착역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인간 세계를 추월하는 또 다른 차원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은 안 해 보셨나요?"
▶ 오호, 제가 굉장히 흥미를 갖고 있는 부분이다. 당연히 인간은 종착역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구의 진화를 봤을 때, 인간의 탄생과 진화는 정말 저기 구두 밑창에 묻은 먼지 한 톨 정도의 비중을 갖고 있지 않을까? 지구는 약 46억 년 전에 탄생했다고 한다. (이것도 지금의 기술로 추측해낸 것이지만, 훨씬 더 오래전일 수도 있다고 본다) 인류는 200만 년 전에야 등장한다고 한다. 그중에서 현대 문명인으로 진화하여 생활해 온 역사는 고작 5천 년 정도다.(행정체제, 종교 등을 포함한 다양한 문명이 출현한 시기) 인간은 절대 종착역일 수가 없다.
그리고 또 다른 차원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우리가 느끼거나 볼 수 없을 뿐 이미 많이 존재할 수도 있다.
. 쾌락은 어떤 행위의 부산물이자 파생물로 얻어지는 것이고, 또 그렇게 얻어져야만 한다. 그것 자체가 목적이 되면 그것은 파괴되고 망가진다.
▶ 너무 좋은 말이다.
비극 속에서의 낙관
. 행복은 얻으려 한다고 해서 얻어지는 게 아니라 어떤 일의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다.
▶ 음... '그냥 행복해'는 어렵다. '무엇 때문에 행복해'가 보편적이다. 그래서 행복은 결괏값인가?
. 삶의 최종적인 의미 역시 임종 순간에 드러나는 것은 아닐까?
▶ 그러기 위해서 정말 많은 경험을 하고 싶다.
. 하지만 만약 피할 수 있는 시련이라면 그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 더 의미 있는 행동이다. 왜냐하면 불필요한 시련을 견기는 것은 영웅적인 행동이 아니라 자학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 솔직히 이 관점이 없었더라면, 시련과 고통에 대한 삶의 의미부여를 너무 했다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후반부에 이런 관점이 여러 번 나온다.
. 아우슈비츠 이후 우리는 인간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히로시마 이후 우리는 무엇이 위험한지 알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