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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호익 Jul 31. 2022

안개처럼 밀려오는 사랑의 포말

박찬욱, <헤어질 결심>



‘한국 사람들은 좋아하는 사람이 결혼했다고 해서 좋아하기를 멈추나요?’. 사랑이란 벌어지는 일이고, 붕괴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빅뱅과 같다. 헤어짐을 결심한다는 것은 무얼 의미할까? 그만큼 사랑이 짙다는, 그래서 사랑을 포기하겠다는 결의까지 해야 하는 상태를 말한다. <헤어질 결심>은 ‘독한 사랑’이다. 너무나 독해서 헤어 나올 수 없고,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사랑. 그렇게 영화는 사랑이란 단어를 언급하지 않으면서, 가장 처절한 사랑에 대해 얘기한다.

 


사랑은 ‘수사(搜査) 전’이다. 경찰 해준은 용의자 서래 뒤를 밟고 그녀의 집을 들여다본다. 오래 보면 닮는다는 말이 있다. 의심에서 시작한 관심은, 관찰이 계속됨에 따라 사랑의 감정으로 진화한다. 그런데 두 사람은 닮아가기에는 애초부터 너무 닮았다. 꼿꼿한 자세, 정확함을 추구하는 발화, 스스로에 대한 어떤 자부심. 영화 속 해준은 서래를 처음 만난 순간부터 ‘나와 비슷한 족속’이란 걸 직감했을 것이다.

   

동시에 ‘사랑은 수사(修辭)적’이다. ‘말이나 글을 다듬고 꾸며서 보다 아름답게 정연하는 일'이다. 어딘가 소통이 불가해 보이는 두 사람은 정확한 언어를 사용하고, 함께 호흡을 맞추고 범죄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머리를 맞댄다. 두 사람은 서로가 서로를 염탐하고 소통하는 방식을 다듬고 꾸며서 사랑을 교감한다. 그렇게 파도처럼 밀려 들어와 얽힌 관계는, 물에 퍼져가는 잉크처럼 마음을 물들였다. 폭력이나 섹스 없이도 강렬하면서도 섹슈얼한 감각을 유려하게 풀어낸다.


산처럼 우직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바다처럼 유연한 사람도 있다. 서래는 ‘지혜로운 자는 산을 좋아하고 인자한 자는 바다를 좋아한다’는 공자의 말을 인용하며 ‘나는 바다가 좋다’고 얘기한다. 그녀는 산을 좋아하는 고집스러운 남편에서 벗어나 바다에서 자유로이 유영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 그녀에게 ‘나도 바다가 좋다’고 응답한 해(海)준은 서래의 ‘구원자’였을 것이다. 그러나 구원은 몰락을 전제로 하고 서래는 비로소 (해준의) 붕괴를 목도하고 나서야 사랑이란 구원의 가능성을 알게 된다.

   


모든 관계가 그렇듯 두 사람의 사랑 또한 비대칭적이다. 둘이 서로에게 빠져든 속도와 깊이에는 시간 차가 있었다. 진실이 드러나 해준의 사랑이 흔들릴 때, 마침내 서래의 사랑은 더욱더 강화된다. 자신을 붕괴시키는 일을 감당하면서까지 상대를 생각하는 마음이 곧 사랑이고, 그래서 서래는 후에 해준이 휴대폰을 돌려주며 먼바다에 빠뜨리라는 말에 관해 ‘해준이 나를 사랑한다고 얘기했다’라 회고한다.

 

서래는 해준을 따라 이포로 간다. '여귀(女鬼)가 뿜어내 놓은 입김'이 가득한, 소설 <무진기행>의 '무진'과 같은 도시, 이포. 그녀는 일부러 화재경보기를 눌러 바깥으로 나온 해준을 염탐하기도 하고, 1부에서 해준이 서래를 염탐했듯 해준을 관찰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으로 멀어진 해준에게 다시 접근한다. 그러나 해준은 고급 초밥세트가 아닌 핫도그로 그녀를 대우하고, 서래를 범인으로 확정 지음으로써 이전에 발생했던 자신의 붕괴를 부정하려 애쓴다.



호미산으로 해준을 부른 서래는 자신의 범행 증거가 담긴 휴대폰을 돌려주며 이렇게 말한다. ‘붕괴 이전으로 돌아가요’.  불가능한 일이다. 결국에는 이미 벌어졌지만, 현실에서는 실행될 수 없는 사랑을, 그렇게 미결 사건으로 만들어 놓음으로써, 영원히 진행시켜 놓는다. 헤어지지만 완결시키지 않음으로써, 영원한 시간 속에 사랑을 진행시킨다. 결국 그렇게 서래가 사라지고 나서야 해준은 그것이 회피할 수 없는 진득한 사랑이었음을 생각한다.


머리가 헝클어진 채, 해 질 녘 파도 사이를 걸어가며 허우적대는 해준의 모습. 바다와 석양. 그리고 두 연인의 파멸을 비추는 장면은, 박찬욱 감독의 이전 작 <박쥐>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박쥐>보다 더 원형적으로, <아가씨>보다는 모호하게, 영화는 질문을 던진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영화 끝에 이르러, 거대한 세계를 허우적 대는 한 남자의 모습으로 묘사된다. 우리는 영원히 허우적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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