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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호익 Oct 10. 2022

파운드 쇼크: 문제는 정치야.

믿음이 정책을 우선할 때

지난 9월 말, 영국 파운드화가 1달러 아래로 폭락했다. 장기국채 금리는 치솟았고 은행은 주택담보대출을 잠시 중단했으며 연기금은 마진콜을 받기까지 했다. 주요 금융 중심지 중 하나인 영국에서 발생한 충격은 세계 금융시장에까지 영향을 미쳤고, 달러가 강세인 가운데 다른 나라들의 환가치 하락 압력을 한층 강화했다. 2022년 9월 파운드 쇼크는 리즈 트러스 총리가 취임한 지 한 달 채 되지 않은 상황에서 발생했으며, 몇몇 이들에게 1979년 영국 구제금융 사태를 연상시키기까지 하였다.


파운드 쇼크는 리즈 내각이 띄운 ‘미니 예산’에서 출발했다. 스스로를 대처에 비유한 리즈 트러스 총리는 획기적인 감세 정책을 선언했다. 감세를 통해 투자를 촉진하여 경제를 되살리겠다는 접근이다. 또 각종 사회 복지 정책 예산을 삭감하는 대신 2년간 보조금을 투입하여 에너지 가격을 동결시키겠다고 발표했다. 크게 세 줄기로 구성된 내각의 ‘미니 예산안’은 예산 책임청의 평가도 없이 발표되었는데, 이는 당연 앞뒤 안 맞는 얘기 투성이었고 많은 비판에 직면하게 된다.


(좌) 파운드화 가치 (우) 영국 국채 수익률


아무리 ‘미니 예산’이라 하더라도 세수는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부자감세로 세수를 가장 무리 없이 확보할 수 있는 길을 끊었다. 대신 국채를 발행하게 되었고, 국채를 발행하니 (국채가격이 떨어지고... 국채금리와 국채가격은 반대로 움직인다) 국채금리가 더 오르게 되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렇게 시중에 돈을 푸는 옵션은 영국 중앙은행이 빅 스텝을 단행하며 긴축 재정에 들어간 상황과 엊박자를 내는 선택이다.


이렇게 정책이 오락가락하는 상황에서 시장은 영국 정부를 신뢰할 수 있을까? 할 수 없다. 여당인 보수당 내부에서도 예산안에 대한 반대 여론이 높았으며 (결국 당내 반발로 좌초된다) 대규모 감세가 영국의 경제성장을 다시 견인할 수 있다는 신자유주의적인 믿음은 붕괴한 지 오래다. IMF(국제통화기금)은 미니예산이 불평등을 초래할 것이며 국제 금융시장에 불안정성을 줄 거라는 긴급성명서까지 낸 바 있다. 그러니 시장은 파운드화를 내던지기 시작했고, 여기에 ‘채권 자경단’이라 불리는 투기 세력이 대량 매도에 나서 폭락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결국 리즈 내각은 부자 감세안을 철회했고 쇼크는 잠시나마 잠잠해졌다. 그러나 미니 예산이란 정책을 결정하고 수정하기까지 일련의 과정은 집권한   달도 되지 리즈 리더십에 대한 신뢰도를  떨어뜨렸다. 그녀에겐 미안한 이야기이지만, 이번 사건은 정치인의 오판이 금융시장에 어떤 부정적 쇼크를   있는지  보여준 사례로 남을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하여 그녀의 정치적 비전이 틀렸다고 단언할 수는 없을 것이다. 현재 영국이 직면한 경제위기가 비단 리즈의 정책 때문만이라고  수는 없다. 그러나 과연 브렉시트 이후 영국을 이끌어 가는 리더십으로 새로운 대처리즘이 과연 타당할 인갛 부적합하다면 리즈는 어떻게 이를 타협해 나갈 것인가? 적어도 서민의 물가 부담은 당연시하면서 부자세는 사려 깊게 깎아주려는, 엘리트적 포퓰리즘은 해법이   없을 것이다.



이는 비단 영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인플레이션, 고금리, 달러 강세, 경기 침체 등 상황이 복합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국면에서 모든 나라가 고려할 문제다.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쇼크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그리고 쇼크는 한 부분에서만 발생하는게 아니라 고환율, 고금리, 부채, 경상수지 등 변수들이 연동되어 돌아간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이럴수록 정부는 그때그때 리스크에 유연한 대응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적어도 단기적 대응에 있어 정책 유연성이 이념적 경직성에 훼손되면 시장이 정부를 불신하게 된다. 정치는 경제를 이끌어 가지만, 정부는 시장을 이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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