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명묵, <거대한 코끼리, 중국의 진실>을 읽고.
다음 달 10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3 연임 여부가 결정된다. 시진핑은 권위주의 독재자이다. 서방/자유 진영의 시각에서 중국을 보기에, 그들의 세계는 분명 문제 있는 독재 체제이다. 그러나 그러한 관점만으로 오늘날 중국을 설명할 수는 없다. 일각의 비유처럼 시진핑이 '황제’에 등극한 것은 단순 권력욕 때문에 이뤄진 일인가? 혹은 중국이 현대사를 거치며 구성된 합의 같은 게 있는 것인가? 우리는 '중국 공산당 일당 독재'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가?
마오쩌둥의 죽음 이후, 우리가 익히 아는 덩샤오핑이 중국의 지도자로 자리매김하며 본격적인 '개혁 개방'을 주도한다. 개혁 개방을 통해 세계시장에 편입된 중국은 가파른 성장을 기록한다. 그런데 '개혁 개방'은 빛만큼 그림자도 커서, 중국 공산당 내부의 노선 투쟁을 만들어냈다. ‘개혁파'는 개혁 개방의 속도와 성장 지상주의를 강조하며 고삐를 늦춰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반면 '보수파'는 급진적인 성장에 따른 사회 불안을 지적하며 이를 제어해야 할 필요성에 주목했다. 보수파 입장에서 보기에 개혁 개방은 모두가 평등한 사회주의 유토피아를 만들고자 했던 마오쩌둥식 방침을 포기하는 것이었다.
개혁 개방을 둘러싼 논쟁이 가득했던 1980년대 끝에서 '천안문 사태'가 발생한다. 덩샤오핑의 실각한 후계자 '후야오방'을 추모하기 위해 발생한 집회는 자유를 열망한 중국인들의 목소리가 분출된 사건이다. 이때 천안문 사태는 인민해방군이 중국 인민을 탱크로 깔아뭉개는 것으로 정리된다. 시위가 진압된 이후, 정국 주도권은 보수파에 쏠리게 된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덩샤오핑은 '집단지도체제'라는 시스템을 도입한다. 집단지도체제를 통해 '강력한 1인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경우(문화 대혁명)'과 '체제를 뒤흔드는 사회 불안의 경우(천안문 사태)'를 모두 제어하는 균형점을 잡고자 했던 것이다.
덩샤오핑은 다음 후계자로 상하이 서기 장쩌민을 지목한다. 장쩌민은 개혁파와 보수파 사이에 있었고 보수파 원로들도 수용할 수 있는 인사였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장쩌민 또한 보수파 원로에 다소 기우는 듯했다. 그러나 1992년 덩샤오핑이 남순강화를 통해 정국을 '개혁 개방' 여론을 주도하게 되자, 그는 덩샤오핑 노선을 계승하는 노선을 이어가게 된다. 장쩌민이 주도권을 가진 정국에서 '상하이방(상하이 서기 출신 장쩌민 라인)'과 '태자당(건국 원훈들의 자제들)'이 주류를 이루며 덩샤오핑 노선을 느슨하게 이어간다. 그리고 이들은 새로운 시대의 '新 보수파'를 형성하게 된다.
반대편에서는 후야오방과 자오쯔양 밑에서 성장한 '공청단(중국 공산주의 청년당 출신)' 라인이 부상하고 있었다. 대표적 인물이 장쩌민에 이어 최고 지도자로 자리매김한 '후진타오'이다. 이들은 대체로 경제성장에서 소외된 내륙지방에서 경력을 쌓았고, 성장 지상주의를 강조한 '보수파'와 대조되어 공산당 내에 '일당 양파'를 형성했다. 후진타오는 '조화 사회 건설'을 앞세우며 '(덩샤오핑 이래) 선부론(성장 우선론)'을 '공부론(분배론)'으로 전환하자고 얘기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신 보수파'와 '공청단'은 중국 경제-사회-정치를 어디로 어떻게 이끌어 갈지를 두고 정책 갈등을 빚게 된다.
많은 공산당 리더들은 지방정부에서 자신들의 비전을 수행함으로써 신분 상승을 꿈꾼다. 대표적 예시가 왕양의 '광둥성 모델'과 보시라이의 '충칭 모델'이다. 2007년부터 충칭시 서기를 부임하게 된 보시라이는 '충칭 모델'로 일컬어지는 마오쩌둥적인 노선의 정책을 추진했다. 공산당에서조차 금기시되는 문화 대혁명을 연상시키는 마오쩌둥의 구호를 강조하며, 다소 포퓰리즘적인 대중주의-분배정책을 추진했다. 이는 성장주의에 기반한 '신 보수파'나 정치개혁에 우호적인 '공청단' 모두에게 비판적인 것이었고, 일종의 기이한 위기로 다가왔다. 결과적으로 보시라이는 스캔들로 실각하게 되었지만, 그가 부상할 수 있었다는 가능성은 공산당 전체에 일종의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오늘날 중국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도광양회' - '개혁개방'으로 축약되는 덩샤오핑식 지침은 수정 또는 변혁의 대상이 되었다. 많은 사람들은 중국이 당면한 두 가지 위기로 '중진국 함정'과 '민주화 이행 구간의 도전'을 꼽는다. 중진국 함정이란 개발도상국이 중간소득국가 단계에서 선진국에 이르지 못하고 중진국에 머무르거나 후퇴하는 상황을 의미한다. 생산성 향상이 아닌 요소 투입으로 전개되는 방식의 성장은 한계에 봉착했고,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둔화되고 있다. 성장의 과실은 특권층/도시에 한정되었으며 중산층 이하의 바깥 인민은 자신들 권리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국제적으로도 몸집이 커진 중국은 막대한 자원 및 무역 공급망을 갖춰야 했으며,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질서 속에서 인권 문제 등에 관해 끊임없는 책임론에 부딪히게 된다.
이런 변화들 속에서 공산당은 위기를 돌파할 타협점을 찾아야 했다. 덩샤오핑 다음의 리더십 체제를 만들어야 했다. 그 과정과 결과로써 등장한 권력이 ‘시진핑’이다. 마오쩌둥에서 덩샤오핑, 덩샤오핑에서 ‘집단지도체제와 후진타오’로, 그렇게 합의되었던 지도체계가 ‘시진핑’이란 인물 중심으로 전환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시진핑이 황제가 되었다'는 초점을 넘어, '중국 공산당이 곧 천하인 세상에서' 시진핑이 어떻게 그 권위를 부여받고 행사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져보는 것이 중요하다.
‘중앙 전면심화개혁 영도소조(2013)'로 상징되는 시진핑의 슬로건은, 주석 스스로가 전면에 내서 개혁을 이끌어가는 체제이다. 이 모든 과정은 '중국몽'이라는 그들의 대의로 설명된다. '중국몽'은 말 그대로 정파를 뛰어넘은 모든 중국 공산당의 꿈꿔온 바이고, 한편으로는 오늘날 중국이 새로운 국제질서를 천명하며 선택한 굴기의 카드이다. 그렇게 중국은 일대일로라는 대외적 비전과 함께, 남중국해로 뻗어가는 적극적 군사조치를 확대하고 있으며, 산업구조 고도화와 지역균형발전을 통해 새로운 경제 모델을 추구하고 있다.
이러한 해석에도 여러 한계가 있을 수 있다. ‘죽의 장막'으로 비유되는 '중국 공산당 안의 사람들'을 우리가 정확하게 포착할 수는 없다. '상하이방'-'태자당'-'공청단'이라는 계파 또한 명확하게 구분되는 것이 아니디. 그러므로 우리는 ‘정파적 암투’라는 틀을 넘어서 중국 공산당 자체가 걸어온 노선과 대전략을 맥락을 종합적으로 검토하며 죽의 장막을 헤집어 봐야 할 것이다.
서구의 많은 전문가들은 중국이 자연스레 자유화를 택할 것이라 보았다. 그러나 예측은 빗나갔다. 시진핑은 ‘5년 임기, 2차례 연임’이란 덩샤오핑의 지침을 깨고, 1인 장기집권을 위한 포석을 두고 있다. 오늘날 중국은 '행복한 감시사회'로 비유되는 디지털 레닌주의 사회의 실현을 이뤄가는 듯하고, ‘중국몽’이란 대의로 똘똘 뭉친 민족주의는 식을 줄 모른다. 그들은 중국이 서방의 자유주의 체제를 대체할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중국 주도 하의 국제질서 만들기'를 목표로 하고 있다.
당연히 나는 중화인민공화국 체제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 각자가 중국을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와 별개로, 그들이 어떤 경로의 발전 전략을 추구해왔는지를 이해해보는 일은 필요하다. ‘우리와 분명 다른 세상’이 '여기 상식대로' 움직일 거라 예측해선 안 된다. 저자가 비유한 대로, 우리는 중국이라는 거대한 코끼리의 몸뚱이를 대충 손으로 짚어보고 떠드는 '눈 뜬 장님'과 같은 형국에 놓여있다. 그러니 우리는 그럴수록 더 세밀하게 들여다보고 만져보고 또 토론하며, 코끼리가 먹고 움직이는 생태에 대해 세밀히 따져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