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천, <좋은 불평등> 강의
어제 국회에 있었던 “김한규와 경제읽기(김한규 의원)” 특강에 참석했다. 주제는 <한중 수교 30년과 한국 불평등 30년>.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장님의 발표.
곧 출간될 책 <좋은 불평등>에 실린 "한국경제 불평등은 '중국발' 불평등”이라는 내용을 다뤘다 . 그러니 다음 메모는 '불완전한 일부'인 것이고, 관심 있는 분들은 책을 읽어보길 권한다. 개인적으로 미리 원고를 읽어볼 기회가 있었는데 아주 잘 정리된 명저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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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진보 학자들은 불평등 확대의 이유로 신자유주의, 재벌체제, 비정규직 증가, 김대중/노무현의 배신 등을 꼽아왔다. 그러나 ‘기승전 신자유주의’로 수년간 불평등 확대/축소 추이를 설명하기엔 정합성이 떨어지는 대목이 많다. 예컨대 2008년 금융위기 직후 불평등이 줄어든 지표가 나온 이유는 무엇인가? 역대 정부 가운데 가장 친기업-친시장-반복지였던 MB 정권이 잘 했기 때문인가? 이런 대목에서 스텝이 꼬이게 된다.
최병천 소장은 내부적 요인을 압도하는 <중국 경제>라는 ‘외부적 환경’이 한국 불평등 추이에 미친 영향을 분석했다.
• 임금소득 지니계수를 기준으로 했을 때, '한국 불평등 확대/축소 추이'에는 '3가지 변곡점'이 있었다.
첫 번째 변곡점은 1994년이다. 이때부터 한국 불평등 확대가 시작된다. 이러한 추세는 87년 노동자 대투쟁 등 국내적요인도 있었지만 가장 강력한 영향은 중국에서부터 왔다. (1992년 덩샤오핑 남순강화 + 한중수교). 중국 경제가 개방되고 세계 시장에 포함되는 과정에서 한국의 저기술 제조업 일자리가 사라진 것이다. 저숙련/저기술 부문이 나가 떨어지니 자연스레 지니계수가 악화되었다. 이러한 충격은 미국을 비롯한 세계가 2001년 전후로 '세계공장' 중국의 영향을 받은 것보다 두어 발자국 빨랐던 것이다. 아, 그래서 "야 역시 중국. 이게 다 중국 때문이네!'라고 할 수 있나? 아니다. 그만큼 한국 수출-제조업-대기업은 중국이라는 시장에서 이익을 보기도 했다.
두 번째 변곡점은 '2008년 금융위기 직후'다. 이때는 불평등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난다. 좋은 현상일까? 그런데... 아니다. 불평등 축소는 수출 - 대기업 - 부울경 제조업 벨트가 박살난 결과이다. 세계 교역량이 줄어들면서 수출이 감소하고 상위소득이 감소했기 때문에, 지니계수 추이가 호전된 것이다.
두 변곡점에서 확인된 결과를 종합하면 "수출이 잘 되면 불평등이 증가한다"란 상관관계가 도출된다.
한국 수출액과 지니계수의 상관관계는 0.861, 한국의 대중국 수출액과 지니계수의 상관관계는 0.832에 달한다.
세 번째 변곡점은 2015년 이후이다. 한국 불평등 지표는 꾸준히 양호해진 것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중국이 '신창타이 노선'을 채택한 것과 관련 있다. 신창타이 노선 하에 중국은 중간재를 국산화하고 산업구조를 고도화하며 무역의존도를 낮췄다. 그러다 보니 전세계 교역량이 감소했고 한국의 중기술 수출 역시 줄어들면서 불평등 관련 국내 지표가 개선되었다.
•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일단 한중수교 30주년이란 시점에서, 국제질서와 글로벌 경제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기술력'이란 변수에 주목해야 한다. 모두 알다시피 오늘날 미중은 반도체, 배터리 등 첨단산업 기술/소재를 두고 '총성 없는 전쟁'을 하고 있다. 그런데 중국의 기술 추격은 미국에게만 불편한 소식이 아니다. 우리나라에도 영향을 미친다. 실제 중국은 시장 점유율에 있어서 우리나라의 중간재 품목 산업을 추격하고 대체하고 있다. 중국은 ‘메모리 반도체’ 빼고 한국 제조업이 하는 모든 걸 독자적으로 해낼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는 ‘기술 경쟁력', '산업정책의 진취성'을 중하게 고려해야 한다.
• 다시 돌아보는 불평등에 대한 인식.
우리가 갖고 있는 '어떤 세계관'에 대해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한국 진보에 있어서 '어떤 세계관'이란 한국 사회를 '청산해야할 적폐 기득권과 그 나머지 구도'로 인식하는 비주류 운동권적 마인드라 할 수 있다. ‘불평등은 나쁜 것' - '성장은 좋은 것'이라는 전제들은 타당한 것으로 보이나, 가치명제 그 자체에 매몰될 경우 현실세계가 작동하는 원리를 잘못 이해할 수 있다. 적어도 집권을 목표로 하는 정치권은 ‘현실세계가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사회과학적 분석을 토대로 정책을 설계해야 한다. 그리고 그 분석 틀에 있어서 '글로벌한 시각'을 견지해야 한다. 국제질서-글로벌 경기가 어떻게 뒤바뀌고 있는지를 끊임없이 캐치업catch-up 해야 한다.
•앞으로의 진보주의.
최병천 소장은 '미래형 진보'의 스탠스로 <글로벌리즘+친자본주의+진보(미래&약자 챙기기)>를 제시했다. 본인도 리버럴 정당으로서 민주당이 그런 길을 걸어야 한다고 본다. 그럴려면 문재인 정부 5년간 실패한 정책에 대한 오답노트부터 제대로 쓸 수 있어야 한다. 또 문재인정부 5년을 넘어, 80년대 이래로 한국 진보경제학이 쌓아온 잘못된 담론을 해체해야 한다. 정책서 <좋은 불평등>이 혁신의 출발점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