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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주 Jun 15. 2023

한숨과잉 시대

한병철의 피로사회

한병철의 <피로사회>를 읽고




    바야흐로 한숨과잉 시대, 이는 우리 모두가 시험공부를 하지 않아 큰일이라며 (거짓) 한숨과 함께 푸념하던 고등학생 때의 습관을 그대로 달고 성인이 됐기 때문인 듯하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 시험공부를 적당히 했음에도 그러지 않은 척하며 걱정하는 말을 내뱉었고, 이는 다른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행동하는 주된 심리는, 물론 시험 성적이 나왔을 때를 대비한 전략인데, 다음과 같이 주장하기 위해서이다. ‘나는 공부량이 너보다 적었지만 성적이 좋으니, 분명 너보다 재능이 뛰어나다.’ ‘나는 이번에 공부량이 적어 성적이 (너보다) 좋지 않았으나, 너만큼 공부한다면 성적이 (너보다) 좋을 것이다.’ 이 시대의 한숨은, 누구에게도 무엇으로든 뒤처지면 안 된다는, 시대와 사회가 우리 몸과 마음 깊숙이 이식한 방어 기제로써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어느 장소, 어느 때, 어느 집단에서든 (심지어 집에 혼자 있을 때마저) 한숨 섞인 푸념을 쉽사리 들을 수 있다. 한숨은 오직 막연할 뿐이며 -그것이 구체적으로 제 몫을 하는 경우는 오직 비난할 누군가를 지목할 때뿐이리라- 무엇인가를 타개할 의지를 전혀 갖고 있지 않다. 그것은 해결이 아닌 동정을 바란다.


    어떻게 한숨과잉 인간이 탄생했을까. 무엇이든 해내야 하는 성과주의 사회, 다다익선을 교조로 삼은 긍정과잉 사회가 그 범인이 유력한 용의자이다. 성과주의와 긍정과잉은, 더 활동적일수록 더 자유로울 것이라는 환상은, 개인에게 엄청난 짐을 지게 했다. 성공하든 실패하든 전적으로 개인에게 책임이 돌아간다. 더불어 성공과 실패의 한계를 제거하여 끝없는 성공 그리고 마찬가지로 끝이 보이지 않는 추락을 가능케 했다. 인간에게 한계(상승과 하락 모든 경우에)란 없다고! 우리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칠전팔기! 도전하라! 계속해서 도전하라! 멈추지 마, 그것은 네가 실패했다는 뜻이야! 사회는 이렇게 외친다. (마찬가지로 참 부지런히 외친다.) 재능은 인격이 됐다. 가령 고등학생에게는 내신이, 대학생에게는 학점과 영어실력이, 직장인에게는 업무 성과가 그/그녀의 사람됨을 나타내는 지표인 것이다. 그러니 자연히 내가 쓸만한 사람, 그대들과 어울릴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우리는 ‘한숨’을 내쉬는 것이다. 한숨은 이렇게 해석된다. “휴우-[비록 제가 지금 굉장히 바쁘고 힘들어 앞으로 하는 일이 잘 풀리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것은 제가 못나서가 아니라 단지 제가 ‘바쁘고 힘들어서’ 혹은 같이 일하는 동료의 실력이 매우 떨어져서(인간됨이 부족해서) 그러한 것입니다. 곧 발표될 저의 시험 성적 혹은 업무 성과가 나쁘더라도 저를 하찮게 생각지 말아 주세요.].” 한숨은 생리현상이 아닌 사회현상이다. 자신이 평가절하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가입하는 보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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