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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주 Jun 16. 2023

성공랩소디

                한사랑 산악회의 회장 김영남은 오늘도 목이 터져라 외친다. “열쩡! 열쩡! 열쩡!” 열정 없이는 산악도, 삶도 즐길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철학이다. 영남 회장의 과한 열정(그리고 열정에 대한 열정)에 때때로 누군가는 도리어 열정을 잃기도 하지만, 산악 그리고 삶의 고됨과 덧없음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회장에게 이보다 좋은 방법이 없다. 마찬가지로 요즘 인스타그램과 여타 소셜미디어에서 다른 구호가 유행한다. 바로 “썽공! 썽공! 썽공!”이다. 사실 성공을 예찬하고 바라는 일을 유행이라고 불러도 될지 모르겠다.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자신이 목적하는 바를 이루는 일을 희망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성공을 열망하고 그 마음을 표현하는 일은 우리에게 전혀 새롭거나 이상치 않다. 다만 모든 사람이 이상하리만큼 성공에 목매는 작금의 모습에 다음과 같은 의문이 드는 바이다. 저들은 도대체 무엇을 왜 이루고 싶을까? 목적하는 바가 무엇이길래, 쉴 새 없이 성공을 외치고, 또 다른 사람에게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고 부추길까? 심지어 마치 겁을 주듯이.


                    베일에 싸인 성공의 모습과 개념을 밝히기 위해 성공론자들이 작성한 성공학개론의 참고문헌을 살폈다. 참고문헌 목록은 ‘성공한 사람의 00하는 습관’, ‘부자가 되는 방법 00가지’, ‘00투자 바이블’, ‘성공하려면 00 해라’와 같은 책으로 가득하다. 책들은, 독자를 속칭 성공한 자로 만들어 줄(과연 그 효과는 장담할 수 없으나) 몇 개의 강박적인 방법론을 독단적으로 제시할 뿐이며, 이 마저도 예외적으로 잘 쓰인 책 몇 권을 교묘하게 베껴 핵심적인 개념에서 단어 몇 개만 대충 수정하였거나 저자 자신의 아주 특수하고 우연한 경험을 세상 모든 상황에 적용되는 법칙인 마냥 꾸며낸 것이다. 아무튼, 이들의 이론은 성공한 자를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자로 정의한다. 이것이 돌멩이나 나뭇가지, 찌그러진 냄비를 여러 개 소유하고 있음을 뜻하지는 않는다. 재화, 즉 사람이 바라는 바를 충족시켜 주는 모든 물건을 충분히, 자손에게 넉넉하게 물려줄 만큼 넉넉하게 보유하고 있어야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자며, 곧 성공한 자이다. 그러하니 성공은 ‘재화를 많이 보유함’이다. 나아가, 위 참고문헌이 설명하는 성공하는 방법을 대강 요약하자면 이렇다. 잠을 줄이고, 잠을 충분히 자야 하며, 아침 일찍 일과를 시작해 오래 일해야 하며, 하루 네 시간만 일해야 한다. 적을 가까이하고, 사람을 멀리 해야 하며, 시간을 분 단위로 쪼개 사용해야 하지만, 자잘한 시간에 연연해서는 안 된다. 모험적이되 매우 사려 깊어야 하고, 냉정하되 몹시 따뜻해야 한다. 성공하기가 이렇게 쉽고, 어렵다.


                    다시, 왜 이렇게 성공에 집착할까? (앞서 말했듯이 가끔은 서로가 서로에게 성공하지 않으면 큰일 난다며 겁을 주기까지 한다.) 성공은 상대적인 개념이다. 물질적 풍요, 재화를 넉넉하게 보유한 상태가 절대적인 성공을 뜻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이를 진리처럼 받드는 사회 분위기가 광기 어린 ‘성공만능주의’를 부추긴다. 사회 구성원 모두가 하나의 우상을 숭배하고 있으니, 니체 정도의 위인이 아니고서야 어찌 감히 우상을 파괴하고 초인으로 살아갈 용기를 보이겠는가. 이렇게 숨 막히는 사회에는 성공해야 한다는 강박과 실패하면 안 된다는 불안이 공존한다. 또한 어떤 순간에 이르면 우리 각자는, 나와 우리가 성공이라 믿고 쫓던 이상에 의구심을 갖는다. 돈을 많이 모으기 위해 수많은 시간 동안 당장의 쾌락과 안식을 참으며 묵묵히 고생했지만, 목표하는 바를 이루었을 때에는 정작 성공을 위해 멀리 했던 것에 어떤 소박하며 소중한 삶의 가치가 숨어 있었다는 생각을 막연히 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회의와 권태에도 불구하고, 주변 모두가 여전히 열심히 성공하고자 애쓰고 있으며, 나의 성공을 바라는 연로한 부모가 눈에 아른거리고, 공영방송과 유튜브에 나오는 유명한 사람들이 자신의 성공을 알게 모르게 자랑하고 있기에, 우리에게는 성공을 좇지 않을 여지가 없다.


                    목표와 목적을 설정하고 이를 이루는 데에 성공하는 경험은 개인에게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성공은 상대적인 개념이다. 이루고자 하는 바가 각자 다를 수 있으며, 달라야 마땅하다. 어떤 청년은 자주 이렇게 하소연한다. “저는 돈을 좇고 싶지 않으나, 주변 모두가 돈을 좇으니 달리 다르게 살아갈 방도가 없습니다.” 개인은 말과 행동, 심지어 생각까지도 자신이 속한 집단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우리 모두는 자기만의 방, 자기만의 성공을 가져야 한다. 굳이 성공해야 한다면, 세속적인 성공에 집착하지 않음이 성공이라고 여겨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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