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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주 Jun 23. 2023

유령으로 살아남기

    하나의 유령이 대학가를 떠돌고 있다—졸업생이라는 유령이. 사 년간의 교육과정을 마침과 동시에 유령 신세가 되었다. 학교 근처에서 나와 마주친 동기와 후배는 모두 화들짝 놀라, ‘왜 여기에 있어(요)?’라고 묻는다. 나는 이곳에서 태어나 초등학교와 중학교, 고등학교 심지어 대학교까지 졸업한 토박이지만, 도려 학문하기 위해 이곳에 온 지 이 년이 채 되지 않은 상대가 나를 이방인 취급하는 우스운 상황이 벌어진다. 유령은 이승과 저승 그 어디에도 발붙이지 못한다. 이승에 대한 미련과 저승의 일원이 될 자격 미달로 하여금, 그 사이를 어중간히 배회할 뿐이다. 졸업생은 당연히 학생이 아니며, 그렇다고 사회인이라 칭하기도 애매하다. 학교와 학교가 아닌 곳을 정처 없이 떠돈다. 그러니 모두가 나를 보고 당황할 수밖에. “저 사람, 아니 유령을 봐. 아직도 과거를 잊지못해서, 또 앞으로 머물 곳을 마땅히 정하지도 못해서 이곳을 떠나지 못하고 배회하고 있어….”


    유령이 되기를 바랐다. 정처 없이 떠도는, 아니 떠돌아야 하는 자유로우며 처량한 신세를 동경했다. 그런데, 이 질량 없는 존재로 살기도 꽤나 힘든일이다. 과학자 궤도는 지박령과 마주쳤을 경우 다음과 같이 질문하기를 권했다. “어떻게 지평좌표계로 고정을 하셨죠?” 엄청난 중력의 힘을 거스를 수 있어야 비로소 진정한 유령이 될 수 있다. 부모님이 보내는 무언의 압박, 주변에서 비추는 은근한 멸시, 무의식중에 끊임없이 스스로를 공격하는 자괴감과 권태에 쓰러지지 않아야 진정한 졸업생이 될 수 있다. 물론, 직업이 없는 자유로운 졸업생 말이다. 이제 한가롭게 카페에서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있는 졸업생을 보면 이렇게 물어보자. “어떻게 -.”


    유령들에게 외친다. 마음의 근력을 키우자! 주변에서 보내는 눈총에 굴복하지 않고, 무엇보다, 자신에게 떳떳하기 위해서는 마음이 단단해야 한다. 스스로가 한심해 보인다면, 이미 유령(백수)으로 살아갈 자격을 박탈당한 게다. 어떻게 하면 마음의 근육을 키울 수 있을까? 몸의 근육이 커지는 원리는 ‘손상을 통한 재생’이다. 어떤 근육을 반복해 사용하면 그곳에 미세한 상처가 생겨 틈이 벌어진다. 피부에 상처가 나면 새살이 돋듯, 찢어진 근육 사이로 새로운 근육이 생긴다. 마음도 같은 방법으로 수련이 가능할까? 자신 혹은 타인에 의해 마구 헐뜯기어 상처가 생기면, 그곳에 싱싱한 마음이 새로이 자라날까? 잘은 모르지만 좋은 방법이 아닌 듯하다. 이는 근육에 손상을 입히겠다고 칼로 마구 쑤시는 격 아닌가? 그보다는, (백신 원리를 활용하여) 누군가 지금 나에게 할 법한 질문을 스스로 먼저 던져 보는 방법을 제안한다. ‘왜 졸업한 후 곧장 일을 시작하지 않았나요?’ ‘졸업한 후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냈나요? 그 시간은 자신에게 어떤 의미였나요?’ 아, 상처다. 마땅한 답이 떠오르지 않아 버벅거린다. (자문자답하는 상황임에도, 당황한 기색이 명백히 느껴진다.) 바람직해 보이는 답을 생각해 보지만 스스로 솔직하지 못하다 느껴 내키지 않는다. 이러한 과정을 꾸준히 반복하다 보면 완벽하지는 않아도 나름 만족스러운 답변을 생각해낼 수 있을 것이다. 수차례 반복되는 질문(손상)과 답변(재생)이 차츰 마음의 근육을 키워, 이제는 어떠한 비판과 힐난도 우리에게 비수를 꽂지 못한다. 나 그리고 당신은 완전무결한 백수, 몸과 마음이 철저하게 훈련된 ‘전문’ 무직자가 됐다.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고, 사도 바울은 말한다. 노동은 의무이자 명예이다. 나는 이 성스러운 명예를 지금 당장은 그리고 가능한 오랫동안 따르지 않겠다고 주변에 널리 선언한 바, 뱉은 말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막중한 책임을 느낀다. 내게 주변 모든 ‘전문’ 무직자의운명이 달려 있다. (그렇게 믿겠다.) 어깨가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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