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건 사건(곧 갈등)인데, 사건의 흥미로움(이것이 이야기 전체의 매력을 결정짓는다)은 등장인물의 타고난 성격과 특성에 의해 좌우된다. 특히나 이야기 제목에 등장인물 이름이 들어가 있는 경우, 등장인물이 하는 생각이나 행동이 그가 겪는 사건만큼 중요해진다. 세기의 걸작으로 불리는 <돈키호테>와 <그리스인 조르바> 그리고 <운명론자 자크와 그의 주인>를 읽고 난 후 우리 뇌리에 깊게 남는 것은 어떤 사건이 아닌 등장인물의 개성과 매력이다. 사람들은 돈키호테가 겪은 크고 작은 해프닝이 아닌 도전적이고 실존적이며 다소 엉뚱하기까지 한 그의 삶 자체를 사랑한다. 그러하니 내가 <피터와 종인의 여름>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글을 쓰겠다고 다짐한 이상, 현실에서 뛰노는 두 야생마를 이 지면 혹은 화면 속에 얼마나 생생하게 옮겨 담는지에 글의 명운이 달려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우리는 소설 속 인물을 현실에 투영한다. 운명론자 자크와 친구이자 천하의 바람둥이인 김우석을 비교하고 대조하며 이야기 속으로 깊게 빠져든다. 혹은 독자 스스로가 소설의 주인공이나 악당이 되어 보기도 한다. 이럴 경우 사람들 마음속에 다음과 같은 궁금증이 싹튼다. 과연 조르바는 실존 인물일까? 물론 이에 대해 답하는 일이 소설 쓰기나 소설 읽기의 핵심이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하지만 감히 예상컨대, 어떤 글쓴이도 현실에서 받은 영감 없이는, 그러니까 오로지 소설가 자신의 고고한 상상만을 활용해서는 어떠한 핵심적인 등장인물도 완전하게 만들어내지 못할 것이다.
나는 앞서 피터와 종인이 [현실에서 삶을 영위하는] 두 야생마임을 밝혔다. 하지만 두 인물의 속성을 현실 세계에서 가상세계로 곧이곧대로 가져올 것인지, 아니면 다른 방법을 사용해 그들의 외모나 성격을 각색할 것인지는 결정하지 못했다. 전자의 경우 작가의 기술description하는 기술skill이 중요한 변수이다. 플라톤이 주장한 대로, 피터와 종인이라는 이데아를 얼마나 완벽하게 모방하느냐가 이 창작활동의 관건이다. 반대로 후자를 위해서는 기술skill적인 기술description이 중요하다. 강약을 조절하는 일이다. 가령, 피터의 방귀소리가 마치 헬리콥터 소리 같다던가, 종인의 여드름이 짱구 머리에 달린 혹만 하다는 식이다. 이는 두 사람이 겪을 어떤 사건, 곧 글을 더욱 재밌게 하기 위한 기술skill이다.
둘 중에 무엇이 더 좋거나 훌륭하다는 식으로 우열을 가릴 수는 없다. 더불어 양자택일 문제도 아니다. 둘은 항상 묘하게 뒤섞인 상태로 존재한다. 그런데 둘 모두에 소질이 없다면 작가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이것이 내 고민의 본질이다. 나는 아주 곤란한 상황에 처했고, 어떠한 뾰족한 수도 떠오르지 않는다. 하지만 서론이 너무 길어지면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 모두에게 피로를 줄 것이 분명하기에, 어떻게든 서사를 시작해야겠다. 사정이 이러하니, 앞으로 마주하게 될 피터와 종인이 나의 기술description하는 기술에 의해 만들어진 실제와 똑 닮은 인물일지, 기술skill적인 기술의 산물일지는 알아서들 판단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