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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나영 May 19. 2023

신용사회


친구가 두 달 동안 일을 했는데 돈을 받지 못해서 고민이다.


매우 분명하고 똑똑하고 경우가 있는 친구인데

어쩌다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되었는지 황당해한다.


첫 한 달 후 입금을 기다리며 눈치를 보니

다음 달에 같이 주겠다고 한다.


곧 주겠다는 말만 믿고 두 달이 넘으니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고 하고 감감 소식이다.

이제는 계속 일을 나가야 할지 그만두어야 할지 고민이다.


그만두고 나오면 밀린 임금을 못 받을 것 같고

다른 곳에 일을 찾기도 어려울 것 같아 쉽사리 담판을 짓지도 못한다.



그가 이런 상황에 처한것은 어떻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이미 육십이 다되어 가는 나이에 새롭게 일할 직장을 찾는 일이 어려웠다.

시간과 힘은 남고 무엇이라도 하고 싶어 기웃거리는 심정에

아는 지인이 일을 해달라고 요청을 하니 반가왔을 것이다.

월급이 얼마인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시작했다.


아는 동생뻘이니 섭섭하게야 하겠냐는 믿음도 있었고 불러줘서 고맙기도 했다. 

이러한 사회구조적 약자, 을의 입장에 있는 사람은 단지 이 친구뿐만은 아니다. 

이런 입장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을 뿐이다.



이런 난처한 경우를 피하기 위해서는 

시작하기 전에 계약조건을 분명히 하고 계약서를 쓰는 것이 자신을 보호하는 일이다. 

그리고 지금에 할 수 있는 일은 노동청에 신고하는 일이다.


대화로 해결하려고 하다가는 시간만 더 끌 것 같다고 내 생각을 이야기해 주었다.



나도 한 이십 년 학원을 운영하다 보니 매달 수업료를 받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었다.

늦게 내는 학생들은 매달 똑 같이 늦게 낸다.

습관이다.


아니면 수업료를 받기 힘들게 해서 자신의 존재감을 각인시키고

학원에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다.

'네 학원은 나의 수업료로 운영하고 있으니 제대로 잘 가르치지 않으면 돈을 늦게 받는 게 문제가 아니라 못 받을 수도 있다'는


그렇게 늘 늦게 내는 학생들을 보면 기분이 좋지 않다. 

왜 상큼하고 밝은 기분으로 학생을 대하도록 동기부여하지 않고 

그 학생만 보면 수업료를 체납하는 불쾌한 이미지로 보게 만들까 어리석은 선택이다.


이십여년 동안 

학원비를 내지 않고 잠적한 학생이 한 명 있기는 하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그는 짧으면 한 달 길면 일 년 정도를 학원비를 내지 않고 옮겨 다니며 도둑공부를 한다고 한다. 참 상상이상의 대단한 정신력이다. 학구열인가


그 학생이 이런 식으로 살면 장차 어떠한 삶을 사는 인간이 될까라는 식의 도덕적 판단이나 인과응보식 예단은 하고 싶지는 않다. 어쨌든 수업료를 받지 못하는 것은 내 잘못이니까.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나는 성실히 수업료를 받기 위해 노력한다.



일한 대가를 받는 것은 나의 권리이다. 

나의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사회구조적 문제이든 개인 고용주의 문제이든 나의 자존감을 낮추는 일이므로 나는 결코 허용할 수 없다.

나의 값어치는 내가 메기는 것이며 그 가격만큼 받아내는 것은 스스로 나의 자존을 내가 증명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친구가 자신의 권리를 잘 지키기를 바란다.

나이 든 사람을 홀대하는 사회구조적 분위기 속에서

스스로 자격지심에 자신의 소리를 내지 못하는 분위기 속에서

승리하기를 바란다.



친구야 월급 타면 그 돈으로 밥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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