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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uaerens Mar 18. 2023

나는 중학교를 다니지 않은 고등학생이다.

그로부터 얻은 질문의 힘, 그리고 ChatGPT

글의 내용은 제가 고등학교 1학년 때 학교 발표 행사에서 진행했던 발표 내용을 토대로 다시 다듬어 쓴 것입니다.  

발표 영상 링크 (유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6lo29pBciq8



나는 중학교를 다니지 않았다. 초등학교를 고향에서 마무리하고 중학교 1년 반을 다니다, 아버지의 일 때문에 집을 타지로 옮기게 되었다. 물론 중학교를 다닐 수 있었다. 하지만 다니지 않기로 결정했다. 건강 문제나, 성격에 결핍이 있다거나, 사회성에 문제가 있었다거나, 왕따를 당했다 등의 문제가 전혀 아니었다. 그냥 온전한 나의 시간을 한번 가져보고 싶었다. 부모님과의 토론 끝에 나는 1년 반동안 또래들이 그토록 원하던 학교로부터의, 학원으로부터의, 숙제로부터의 자유를 가지게 되었다.


그로부터 하여금 하루 24시간을 온전한 나의 시간으로 만들 수 있었고, 내가 하고 싶었던 것들을 모두 해볼 수 있었다. 어린 시절의 나였기에 (물론 지금도 어리지만, 14살의 나는 무척 어렸다.) 쉽게 게임을 접하였고, 처음엔 즐겼으나 갈수록 의욕이 생기더라. 어느 순간의 나는 게임을 더 잘하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었다.


나의 책상이다. 게이머의 느낌이 풀풀 난다.

생각해 보니 초등학생 때도 그랬던 것 같다. 좋아하는 것이 생기면 깊게 빠져드는 성향. 한때는 문구용품과 전자제품에 빠져 학교가 끝나기만 하면 집에 걸어오는 길에 있던 하이마트와 전자랜드에서 몇 시간 동안 노트북 같은 전자제품을 실컷 구경하고 돌아오곤 했다. 직원의 아나 꼬운 시선은 덤. 새파란 초등학생이 수백만 원의 전자제품을 보고 싶다고 들어와 계속 이것저것 하고 있으니 여간 불안한 게 아니었을 것이다. 한때는 뉴턴 과학 잡지에 꽂혀 집 근처 서점에 박혀 계속 뉴턴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이런 내 성격이 이제는 게임에 적용된 탓인지, 게임을 본격적으로 파헤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저 재미있고 자극적이어서 시작했다. 하지만 어느새 게임을 공부처럼 연구하기 시작했다. 맵의 구조를 분석한다거나, 캐릭터의 스킬을 연구한다거나, 내가 한 게임 영상을 녹화해 못한 부분들을 피드백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1년간 미친 듯이 게임을 하니 결국 오버워치 랭커를 찍더라. 게임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따로 또 글을 적으려고 한다.


여하튼, 이렇게 게임에 몰두를 하긴 했지만, 이 당시 게임만 했다면 지금의 나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루 종일 남는 것이 시간이었기에, 게임을 실컷 하고도 시간이 남았다. 남는 시간에 작곡이나 편집도 물론 했지만, 가장 즐겨했던 것은 책 읽기였다. 엄밀히 말하면,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했다.


전 사진에서 조금 오른쪽으로 앵글을 돌린 사진. 칠판을 설치해 놓았다!

나는 내신이라는 공부의 틀이 주어지지 않았기에,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마음껏,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교과서라는 것이 없었고, 수행평가라는 것이 없었다. 무언가를 공부를 '해야 한다'라는 의무 자체가 없었다. 오히려 그랬기에 나는 공부하는 것이 너무나도 재미있었다. 나의 상상의 나래를, 궁금증의 나래를 마음껏 펼칠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유튜브 과학 채널들을 밥을 먹으면서 보았다. 궁금한 것이 생기면 냅다 사진에 있는 칠판에 달려가 적어놓았다. 나중엔 작은 노트를 만들어 항상 들고 다니며 질문을 적었다. 주로 과학이긴 했지만, 굳이 과학이 아니더라도 그냥 궁금한 것이 생기면 바로 적었다. 또한, 나에겐 '무언가가 이해가 가지 않으면 그냥 외우고 넘어가야 하는' 상황 자체가 주어지지 않았다. 남는 것이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느 것이 이해가 가지 않으면 밤을 새우던, 책을 적으신 교수님께 직접 이메일을 보내던 어떻게든 궁금증을 해결했다. 해외 커뮤니티 Reddit에서 외국인들과 소통하면서도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었다. 그래서 그런가, 남들은 내신 기간에 빨리빨리 읽고 공부하는 중등 하이탑을 나는 한 장을 공부하는 데 하루가 꼬박 걸린 적도 있다.


여하튼, 이렇게 중학교 (다니지 않았지만..) 생활을 마치고 고등학교에 들어와 보니, 친구들에게서 가장 많이 듣는 말 중 하나가 이것이었다.

넌 그런 거 어디서 알았냐? 학원에서 그런 것도 가르쳐 줬냐?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 나름의 충격을 받았다. 아니, 학원에서 가르쳐주는 것만 알라는 법이 있나? 그래서 나의 대답은 항상 '궁금해서 공부했다'였다. 이런 류의 질문은 주로 과학 부분의 질문이었다. 친구들에게는 일종의 문화충격으로 다가왔으리라. '아니, 궁금해서 공부해서 그런 것까지 알아..?'라는 식으로 말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어째서 다른 친구들과 이러한 차이가 있는 것일지 곰곰이 생각해 보다가, 결국에는 학교가, 학교의 질문하는 환경 때문임을 알게 되었다.


정말 친한 친구들 중 전교 1등인 친구가 있다. 그 친구가 언젠가 나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던 기억이 난다.


"나도 너랑 똑같이 초등학생, 중학생 때 계속 질문하고 너처럼 궁금한 걸 계속 찾아봤었어. 근데 시간이 지나니까 피곤하고 힘들어서 안 하게 되더라. 결국 학교 공부에는 아무런 쓸모가 없었거든."

하지만 모든 친구들이 그런 것은 아니었다. 나와 비슷한, 질문하기 좋아하고 틀에서 벗어나기를 좋아하는 친구들도 몇 명 있었고, 지금도 친하게 지낸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그 친구들이 존경스럽다. 중학교를 다니고서도 저런 마인드를 유지한다는 것 아니겠나! 하지만 참 아이러니한 것이, 학교 내신에서는 그러한 것을 버려야지만 모든 과목에서 좋은 등급을 받을 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친구들 사이에선 내 별명이 "교육과정 여집합" 이기도 했다.


결국 1학년 때 내신 공부를 하느라 피똥을 쌌다. 애초 '내가 관심이 없는 분야에 대해 공부'를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고, 더더욱 '외우는 공부'는 거의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한 번은 1학년 통합과학을 배우며 질문을 하다가 선생에게 '그런 걸 질문할 거면 대학이나 가서 질문해!'라고 수업 도중 꾸중을 듣기도 했다. 그때 참 많은 생각을 했다. 이게 과연 진짜 공부인지, 아닌지..


여하튼,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라는 것을 마지막으로 쳐본 것이 초등학교 6학년이었고, 그때는 굳이 공부를 하지 않아도 좋은 성적이 나왔었기에 사실상 나는 사상 처음으로 '내신 공부'라는 것을 하게 된 것이다. 결국 1학년 내신은 처참하게 망해버렸다.


그나마 다행인 것이, 1학년 1학기 수업 중 물리학 1이 있었다는 것이다. 내가 중학교 때 한 공부라곤 과학 - 특히나 물리학밖에 없었기에 공부를 하기에 비교적 수월했다. 그래서 나는 물리학 1이라도 1등급을 받고야 말겠다는 사명감으로 공부했다. 그렇게 나는 5개년치 물리학 1 수능과 모의고사를 모조리 풀며 공부했다. 그렇게 중간고사 - 나의 인생 첫 내신 시험이 다가왔다. 긴장되는 마음으로 시험지를 펼쳤다. 객관식 문제를 순식간에 풀어내었다. OMR 카드는 검정고시를 보며 해보았기에 그렇게 어색하진 않았다. 그리고 서술형 문제를 보았다. '엔트로피에 대해 설명하시오.' 나는 OMR카드의 서술형 란에다가 내가 아는 엔트로피에 관한 모든 지식을 총망라해 꽉꽉 채워 넣었다. 다음 문제는 처음 보는 용수철 문제였다. 풀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뿔싸.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서술형 문제는 아직 많이 남았는데 말이다. 50분이 이렇게 짧은 시간이었다니! 나중에 알고 보니 교과서에 나온 문제를 그대로 냈던 것이었다. 다른 친구들은 그냥 교과서 풀이를 외워서 보자마자 그냥 적었다고 한다. 엔트로피 문제도 그냥 한 줄만 적으면 되었던 것이었다. 교과서를 보지 못한 나의 불찰이랴. 불행 중 다행인지 수행평가는 1등을 하는 덕분에 시험 성적보다 성적이 더 올랐다.


처참했던 1학년 1학기 종합성적. 점수, 등수 순서이다. 자사고라 그런지 물리를 1학년 1학기에 가르친다.


재미있는 것은 생기부 (세특, 교과세특, 활동 내용 등등..)는 굉장히 잘 적혔다는 것이다. 친구들이 내 생기부를 읽고 나면 넌 성적만 좋았으면 주요 대학교 수시로 충분히 노릴 만했다.. 고 한다.


이렇게 1학년 때 정신없이 내신공부를 하고 2학기에 큰 회의감을 느끼게 되었다.

2021년 10월 수험생 커뮤니티에 올렸던 글.

학교에서는 질문은 시간낭비라는 인식이 있는 것 같다. 생각해 보면 내신 때문인 듯하다. 내신을 위해 주어진 공부를 하기도 급급한데 무슨 질문을 하라는 말인가. 그냥 조용히 하고, 가르쳐 주는 것이나 잘 공부할 것이지 -라는 생각인 것이다. 그래서 학교에서 우리는 누군가가 가르쳐주는 것을 그냥 '아 그냥 그런 거구나' 하고 거기서 끝날 때가 많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교수님들 중 한 분인 정재승 교수님의 책 '열두 발자국'에 대한 강연을 들으러 갔을 때 이런 말씀을 하셨었다.

"공부는 내가 궁금한 걸 알아야 되는데 한국교육은 네가 궁금하던, 궁금하지 않던 머릿속에 무조건 집어넣어. 주입식. 빨리. 그게 공부라고 학생들은 믿어. 선생이 외우라고 해서 외워. 그게 공부라고 생각해. 근데 그게 재밌어? 그게 재밌으면, 그건 변태야."

공부라는 것은, 우리가 어떤 것을 모르는지 알아가는 과정이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모르는지 질문을 하지 않고서는 알아갈 방도가 없다. 그것 외에는 외우는 것뿐이다. 하지만 외우다 보면 반드시 언젠가는 큰 구멍이 나기 마련이다. 지식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면서 습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질문을 하는 것이 배움의 기초이다. 무조건 정답만을 말해야 한다고, 무조건 점수가 높아야 - 무조건 내신 등급이 높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전에, 질문을 해 보면 어떨까? 무언가에 대해 궁금해져 보는 것이 어떨까?


틀려도 된다. 엉뚱한 질문이어도 아무 상관없다. 거침없이 질문하는 용기와 패기가 지금 우리에겐, 한국의 교육과정에 찌들어 있는 우리에겐 정말 절실하다. 그리고 다가오는 AI 시대에 있어 질문하는 힘이 가장 중요하기에, 우리는 더더욱 질문을 일상으로 가져와야 한다. 어떤 질문을 해도 AI는 답해주기에, 결국은 '누가 더 질문을 잘하냐'가 문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내용이든 상관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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