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회를 제대로 바라보기 시작한 건 코로나 때부터가 아니었을까. 그때부터 회상하더라도 굵직한 사건들이 너무나도 많이 일어나고 있다. 특히 요즘 엄청난 이슈를 불러 모은 ChatGPT도 그렇다. 새롭고 신기한 것이 나오면 못 참는 성격이라, 하루를 통으로 AI의 원리에 대해 공부하는 데 써 버렸다. 수능을 목전에 두고 있는데 이게 무슨 미친 짓이냐 주변에선 말한다. 하지만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AI는 사회에 녹아들 것이 분명하고, 세상에 엄청난 영향을 끼칠 것이 분명하다는 것을 ChatGPT가 보여주지 않았는가. ChatGPT는 이제 시작일 뿐이다. 그런데 그런 AI에 대해 내가 무지한 상태라는 것이 너무나 불안했다. 참 역설적인 것이, 공부를 하고 나니 미래에 대한 엄청난 기대감과 함께 막연한 두려움과 불안감이 밀려왔다. 모르는 것이 약이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그 약은 진통제다. 본질을 치료하지 않는, 일시적으로 고통을 잊을 수 있게 해주는 약. 세상의 흐름에 무지함으로써 받는 고통을 잊을 수 있게 해 주는 진통제 말이다. 그런데 내 주변 고등학생 친구들은 모두 이 진통제에 절어 사는 것 같다.
세상이 빨리 변하고 있다. 파도의 흐름이 바뀌고 있다. 물살이 거세지고 있고, 새로운 파도가 계속해서 친다. 하지만 사회인들은 이미 바다 위에 있다. 파도가 점점 거세지고, 풍파를 버티지 못한 자들은 끝을 모르는 바다 밑으로, 혹은 아무도 없는 무인도에 당면한다. 이미 바다에 적응한 사회인들에겐 어느 정도는 익숙하다. 그러나 이를 육지에서 바라보는 나는 미칠 지경이다. 언젠가는 꼭 가야 하는 바다, 어떻게 해야 저 바다 위에서 버틸 수 있을까. 버티는 것에서 넘어가, 어떻게 해야 저 파도로 서핑을 할 수 있을까.
한편으론 다행이다. 내가 바다에 나아가기 전 인공지능이라는 거대한 파도가 치기 시작하는 것을 육지에서 보았으니 말이다. 나는 저 파도에 당한 사람들을, 그리고 자유롭게 파도를 타며 즐기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이미 내가 파도를 타고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필히 엄청난 고난을 겪었을 것이다. 내가 대학생만 되었더라도 향후 진로에 대한 심각한 고민을 하지 않았을까. 심한 경우 과를 바꾸었을 수도 있었겠다. 그러나 저보다 더 큰 파도가 치지 않을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오히려 AI가 시작일 수도 있다. 아니, 시작일 것이다. 높은 확률로. 그러니 마냥 안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격변의 시대를 목도하며 몰려온 긴장감과 불안함을 추스르고 나니 기대감이 몰려왔다. 내가 얼마나 해낼 수 있을지, 이 세상의 변화에 얼마나 일조할 수 있을지, 나아가 변화를 주도하는 중심인물이 될 수 있을지 말이다. 물론 그에 상응하는 노력을 해야겠지만, 꿈에 왜 제한을 두는가? 꿈을 이루겠다는 나의 각오를 유지하며 끊임없이 배우고 생각하는 태도를 가진다면 훗날의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까. 아무도 모르는 나의 미래를 개척하기 위해 오늘도 나는 공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