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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쉼스카 Apr 21. 2022

어쩌다 보니 강릉 월세 계약에 서명하고 있었다

떠날 용기가 없는 한 직장인의 5도2촌 라이프

역삼역으로 가는 길, 3호선의 만원 지하철에 꼼짝도 못 하고 멍하니 있다가, 교대역에서 사람들 틈에 이끌려 2호선으로 갈아타러 간다.  출근하는 아침 시간은 물론이고 퇴근하는 시간에도 커다란 무리의 사람들이 하나라도 된듯이 모두가 잰걸음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나의 속도와는 무관하게 한 무리에 포함되어 그 전체의 속도에 맞춰 걸을 수밖에 없었다. 그럴 때면, 생각한다.


'아 지금 나는 누구일까?'


차라리 사무실에 도착해서 나의 자리, 나의 물건들이 채워져 있고 내 공간이라 부를 수 있는 곳에 앉아 나의 컴퓨터 속으로 들어가게 되는 순간은 괜찮다. 그러나 그 이름 모를 사람들 속에서 나라는 사람이 지워지는 순간들은 여전히 적응되지 않는다. 생각이라는 걸 다같이 지워버려야 가장 속이 편하다.


그럴 때면 문득 이 사람들 속에서 바득바득 살아가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 묻곤 한다. 보통은 답 없는 질문일 뿐이다. 귀농, 귀촌, 소로의 월든, 자급자족 등등 여러 단어도 떠올려본다. 이렇게까지 서울에 붙어있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 그러나 나는 잘 알고 있었다. 내가 가진 깡으론 이 회사와 서울을 버리고 떠날 수도 없다는 것을 말이다.


최근 몇 년간 국내 여행을 하다 보면 자신만의 개성이 드러나는 사업을 하는 나와 비슷한 또래의 사장님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자신만의 철학을 가진 카페, 서점, 와인샵, 소품샵, 숙소까지도. 그런 분들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읽다 보면 서울에서의 삶에 치이고 지쳐, 아니면 그냥 동해 바다에 끌려서, 어떤 이유로 서울을 떠나온 분들이 꽤 있었다. 예를 들어 어느 해안가 근처 사장님은 ‘파도가 좋아 서핑하러 다녀옵니다’라는 문구를 붙여두고 그날 장사를 접기도 했다. 이런 모습을 볼 때면 그들이 한 결정, 결단력을 갖추고 그런 사업을 할만한 재능을 가진 분들의 이야기라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내 사업을 할만한 용기도, 재주도 없는 사람이었다.


‘덜 벌고, 덜 쓰자는 것도 나의 모토는 아니었다. 매일의 지하철 출퇴근과 오전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꼼짝없이 붙잡힌 나의 시간이 아주 만족스러운 건 아니었지만, 매달 통장에 찍히는 월급은 또 다음 한 달을 버틸만한 위안이 되기는 했다. 어느 순간부터 회사에선 아주 많은 걸 기대하지 않는 계약 관계임을 인정했고, 나도 회사를 위해 회사도 나를 위해 개선과 성장의 기회를 서로 주고받으면 된다는 생각을 했다. 안정적인 월급을 받을 수 있는 직장이 있는 서울을 완전히 떠날 용기도 없었다.


나처럼 퇴사도 못하고 용기도 없는 사람, 서울 생활과 지방 생활을 절반만 걸치고 싶을 때, 5도2촌이 내 머릿속에 들어왔다. 이 컨셉은 애매하고도 안전한 결정이라는 생각에 결정할 수 있었다. 나라는 사람은 역시 어떤 안전망이 있다고 여겨질 때, 그 안정망 안에서 뛰어들 수 있는 사람인 것 같다. 전기차가 환경에도 좋은거 알겠고 미래의 차라는건 알겠지만 완전히 바꿀 수 없을 때, 하이브리드 차를 사는 것과도 같다. 5도2촌은 그런 하이브리드 라이프다. 적당히 걸쳐진 삶.


벌써 십여 년을 회사 생활을 해서 그런지 늘 리스크 관점에서 따져보게 되는데, 5도2촌 생활의 리스크는 월세 정도였다. 그 월세를 아껴서 다른 곳에 투자했을 때 얻을 미래의 이익을 포기하고 소비해버린다는 측면일 것이다. 사실 가장 큰 리스크를 따지고 나니 이미 마음은 좀 가벼워진 터였다. 그리고 영 앙니면 그만하면 되는 것이니까 가볍게 시작하기로 했다.


이제 나의 집을 찾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예산을 점검하고 가능한 지역을 좁혀봤다. 회사에서도 틈이 나면 강원도 지역의 부동산 매물을 구경했다. 이 생각만으로도 팍팍한 서울의 삶이 조금은 촉촉해지는 걸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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