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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윤희 May 18. 2022

글쓰기라는 호수에 돌아오다

브런치 글쓰기를 시작하며 꺼내보는 내 낡은 서랍 속

  지난 2주간은 박사학위논문의 계획발표를 집중적으로 준비했다. 그러느라 브런치 글쓰기를 시도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러면서 꺼내본 글이 하나 있다. 내 낡은 서랍 속의 바다에서... 아니 바다처럼 물결이 일거나 망망히 넓지도 않으니 호수 정도로 한다면, 내 낡은 서랍 속의 호수를 뒤적여 겨우 건져낸 글이다. 이 글은 2019년에 정기적인 글쓰기를 시작하고자 다른 곳에 썼던 글인데, 이 글을 쓴 뒤 약 3개월 뒤 번아웃과 이별을 겪으면서 '중증도의 우울 에피소드 및 불안장애'라는 진단서와 함께 잊혀졌던 글이다. 그때는 꽤 증상들이 좋지 않아서 이 글에 쓰여진 글로벌박사 펠로우십도 결국 지원중단을 요청드릴 수밖에 없었다. 약 2년의 회복 기간을 거친 후, 이제서야 나의 일상이 재건되었고 다시 한 번 글쓰기에 대한 나의 의지를 다지기 위해서는 이 글이 필요할 것 같아 옮겨 적는다.




  한양대학교 청산학당 토요리더십프로그램이 일반대학원생들 대상으로 개강한 지 4주가 지났다. 중간 추석 한 주 빠진 것을 제외하면 3번째 강의, 연세대학교 신학대학 김상근 교수님께서 오셨다. 내용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과 보에티우스 <철학의 위안>을 바탕으로 학문의 길에 들어선 대학원생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들이었다. 지난 토요일로부터 4일이 지난 지금 나의 기억 속에 남은 것들은 정말 죄송스럽게도 명상록과 철학의 위안 내용이 아니라, 중간 중간 말씀해 주셨던 두 개의 조언이었다.

  "학문은 자기수양이다."라는 말과, 그렇다고 해서 "학문이 우리 삶을 갉아먹지 않도록 해야 한다."라는 말이 첫 번째이고, 국내에서 석박사과정을 하는 학생들은 서양의 연구방법론을 익히되 이를 유려한 모국어로 풀어내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 두 번째였다. 두 가지에 대한 나의 생각을 조금 적어볼까.


첫 번째, 학문은 자기수양이다. 하지만 학문이 우리 삶을 갉아먹지 않도록 해야 한다.

1. 대학원에 입학하고, 우선순위의 마지막은 항상 공부에게 돌아갔다.

  대학원에 입학한 이후로 나는 언제나 일과 휴식과 공부 사이의 간극을 극복하는 것이 어려웠다. 석사 2년 동안에는 조교 업무와 교수님 프로젝트 연구 보조를, 박사 첫 1년 동안에는 지도교수님이 계신 입학처장실 비서와 교수님 프로젝트 연구 보조를, 그리고 지금 올해 동안에는 다시 조교 업무와 교수님 프로젝트 연구 보조, 추가로 부업과 강의를 하고 있다. 그러는 중에 듣는 각 수업에서는 항상 기말 페이퍼를 소논문 형태로 제출해야 했으며(모두 제출했던 것은 아니었다.), 석사학위논문을 썼고, 지도교수님과의 공동 논문을 발표했고, 포스터 발표를 2번 했고, 지금은 10월 중 투고할 논문과 12월에 있을 국어교육학회 발표문을 준비하고 있다. 올해 초에는 또 글로벌박사 연구계획서로 인해 정신이 없었고, 어떻게 좋은 운을 타고 장학금을 받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우리 교수님께서 항상 걱정스러워하는 부분인데, 친구들과의 게임을 놓치 않았고 술자리와 여행을 간다 하면 빠지지 않고 쏘다녔다.

  문제는 내가 이렇게 많은 것들을 했다는 것이 아니라 이런 많은 것들 사이를 흘러다니다보니 그 사이에서 방황한 적이 많았다는 것인데, 예컨대 조교 업무를 보는 동안에는 부업으로 한 문항 출제를 소홀히 하여 기한을 넘기게 되었다거나, 연구 보조가 익숙지 않을 무렵에는 시집 말고는 책을 한 권도 읽지 못했다거나, 지도교수님과의 공동 논문을 준비하는 동안에는 비서 업무 시간에 잠들어버리거나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많은 마감 시간들에 쫓기다보면 가끔 마감이라는 뜨거운 글자에 데이고는 정신이 번쩍 들어 우선순위를 정하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가장 먼저 밀리는 것은 '나의 공부', 즉 수업과 학문이었다. 심지어 친구들과 노는 약속조차도 나의 과제와 논문 작성에 앞섰다. 학문을 업으로 삼겠다고 온 내가 가장 먼저 미루게 되는 것이 학문이라는 것도 문제지만, 더 문제는 일을 마치고 나면 한 동안 일하던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해서, 친구들과 하루 신나게 술을 마시며 근황을 토해내다 보면 다음 날에는 (숙취와) 놀던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해서 공부는 더더욱 미루어졌다는 것이다. 


2. 학자는 생계 유지를 위한 직업의 이름이 아니라 정체성이다.

  그러던 차에 이장욱 시인의 <나의 우울한 모던 보이>에서 '시인은 직업의 이름이 아니다.'라는 명제를 보게 된다. 아마 그 문장의 맥락이 내가 그 문장을 보고 생각한 것과 달랐던 것으로 기억하기는 하는데, 유난히 그 문장이 마음에 들어왔다. 친구들과 찾았던 신촌의 한 술집에서, 시를 조금 써보겠다고 참여했던 시쓰기 강연에서 만났던 두 시인으로부터 들었던 얘기는, 결국 시인이라는 것은 직업이 아니라 정체성일 뿐이라는 얘기였다. 그리고 '시인은 직업의 이름이 아니다.'라는 문장을 이장욱 시인의 산문집에서 마주했을 때, 시인은 '시를 쓰는 사람'일 뿐 그것이 생계를 이어나가는 직업은 아니라는 말이 떠오른 것은, 학문을 하는 사람 즉 '학자' 또한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그때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시인들이 모두 겸업으로 다양한 일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면서도 시를 계속 써야 '시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듯, 학문을 하는 사람 또한 나의 학문에서 파생된 다양한 전문 영역의 일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면서도(가장 큰 예가 교수라는 직종이라고 지도교수님께서도 말씀하셨다.) 결국 공부를 하고 그것을 글로 계속 써내야 '학자'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것일 뿐이다.

  이런 측면에서 결국 학문은 자기 수양이구나를 이해했다. 지금만 하더라도 조교 업무와 강의, 그리고 여러 연구 프로젝트가 일로 닥쳐 있는 지금도 나는 나의 공부를 나의 삶 속에서 '학자'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해야 할 것이다. 이건 결국 나 자신을 위한, 나를 닦는 일인 것이다. 그러던 중에 많은 이들이 궁금해 하는 사실을 발견해낸다면 학계와 사회에 기여하게 되겠지만, 그것은 지금은 목표로 할 일이 아니라 그 이후의 효과와 같은 것이다. 결국 나의 공부는 나 스스로의 물음표로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꾸준히 수양해나가는 것.

  여기서 이제 아이러니가 시작된다. 공부를 함으로써 내가 학자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지만, 이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또 다시 생계 유지 일들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나는 생계 유지를 위해 우리 학교에서는 '조교'가, 다른 학교에서는 '교수님'이, 부업으로 하는 교육 출판 업체를 대할 때에는 '원고 작성자'가 되어야 하지만, 이러한 정체성들의 기저에 '학자'라는 정체성이 계속해서 깔리어 있어야 한다. 나의 목적은 학자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앞서 말했듯 이 정체성 변환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 사이의 틈을 오가다 말고 방황하게 되는 시간들이 쌓여 게으름이라는 이름을 만든다. 학문 자체가 나의 삶을 갉아 먹거나, 학문을 위해 하는 일들이 나의 삶을 갉아 먹기도 하겠지만, 지금 나는 '우리 삶을 갉아 먹는다'라는 말을 보며 그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다가 등속 진자 운동을 하지 못하고 멈춰버리는 나 자신이 나의 삶을 갉아먹게 되는 것을 떠올린다.

  직업과 학자 정체성 사이에서 자동차 변속 충격처럼 흔들린 후에 옮겨 오는 것이 맞는지, 혹은 이것도 익숙해져서 스위치 껐다 켜듯 가능해지는지, 아직도 어떻게 하는 것이 이상적인 모드 변환인지 알지 못하지만 김상근 교수님의 두 문장은 나에게 나의 석, 박사 과정 생활을 돌아보게 했고 이렇게 글로 구체화된 나의 생각들은 다시 나의 성장으로 이끌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은 김상근 교수님의 두 번째 조언과 이어진다.


두 번째, 국내에서 박사과정을 하는 학생들은 해외의 연구방법론을 익히되 이를 유려한 모국어로 풀어내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내가 이번에 선정된 글로벌 박사 펠로우십은 글로벌 의사소통 능력과 글로벌 연구 역량을 갖춘 국내 대학원 인재 양성을 위한 사업으로 정의되어 있다. 국내 대학원에 진학했지만 글로벌 인재로 커갈 수 있게 발판을 만들어준다는 점에서는 매력적인 사업이지만, 선정 이후에도 결국 국내 대학원 진학자는 어떻게 앞으로의 삶의 로드맵을 가질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나에게 남았다. 이제 나는 석사과정을 시작한 학생도, 학문의 길을 꿈꾸기 시작한 박사과정 입학자도 아닌, 수료를 위한 종합시험과 논문만이 남은 상태이기에 모국어교육이라는 분야의 국제 저명 학자가 되어야지 하는 허망한 꿈을 가지기에는 나의 성실도와 머리의 한계를 알게 되어 버렸다. 그래서 나는 내가 어떻게 하면 글로벌 인재가 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항상 있었다. 우선 나의 연구 과제가 선정된 이상 나는 내가 공부한 내용이 한국 내에서만 갇혀 있지 않도록 더욱 유니버셜할 수 있게 생각해야 할 의무가 생겼지만, 여전히 나는 나의 전공 안에서 글로벌 인재로서 자랄 수 있는 인간상이 떠오르지가 않았다.

  그런데 김상근 교수님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셨다. 해외에서 유학하신 교수님들이 출판사 편집자와 첫 원고를 주고 받으실 때, 이것은 한국어가 아니라는 얘기를 편집자들이 많이 한다고 한다. 그런 경험에서 생각하신 것이, 국내 대학원 진학자들은 모국어인 한국어를 유려하고 아름답게 활용할 줄 아는 것이 해외 유학파들에 비해 큰 무기가 된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말씀하시면서 이어령 선생님의 예시를 들었다. 언어는 사고의 도구이고, 그 사고의 도구를 활용하는 방법은 결국 나같은 토종들(나도 사실 외국어 고등학교를 나와서 토종이라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 들지만, 그래도 외국 체류 경험이 길어도 1개월이라는 점을 감안하면)이 잘 알고 있을 것 같기는 하지만, 여전히 자신이 없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심지어 너무 글 잘 쓰시는 지도교수님 밑에서, 항상 개별 문장의 존재 의미, 비문, 건조한 문체 등을 지적받았던 나로서는 자신을 가지기가 참 어려웠다. 물론 다 배워가는 과정이지만서도.


  그래도 훈련 방법은 따로 있을 수가 없었다. 써야 한다. 내가 글쓰기 강의에서 학생들에게 말하듯. 일단 써봐야 하고, 써봐야 는다. 그리고 교수님께서도 그렇게 말씀하셨다. "우선 쓰세요. 그런데 문제는 쓰는 것은 강제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블로그라도 해서 자신과의 약속을 정하세요." 그렇다. 사실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내가 죽였던 나의 블로그를 다시 살린 이후, '아직 작성된 글이 없습니다.'를 드디어 깨고 나온 이유를 설명하기 위한 것이었다. 결국 글쓰기를 통해 생각은 발전하던가. 나의 블로그는 이제 이렇게 계획했던 생각을 글로 구체화해 나가는 과정을 담게 될 것 같다. 지난 학기 수업 들었던 박인기 교수님께서 작가들이 쓰는 산문과 같은 글을 꾸준히 쓰라고 하셨었는데, 그런 것들도 여기에 담아야지. 읽고 쓰는 사람이 되자. (2019. 10.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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