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나하고 같이 오라고 했단 말이지?"
"그렇게 됐어."
너무 어이없고 심지어 화가 나는 일이었다. 이런 일로 내가 미국에서 와야 한다는 사실이 현실인가 싶기도 하고 철호가 못마땅하기 그지 없어 보였다.
"정확히 말하면, 누가 당신을 오라고 했는지도 알 수 없다?"
그랬다. 만나자고 한 주체가 누구인지도 알 수 없는 자리에 내가 동석하러 가고 있는 셈이었다.
"당신이라면 이런 상황에 같이 가 주겠어? 그것도 미국에서? 그것도 전부인이?"
"미안해. 애처럼 굴어서."
솔직히 화가 났다. 정안과 나눈 이야기들에 감정이 많이 다운되어 있는 상태였다. 어디 가서 쉬고 싶은 생각으로 가득찼고, 철호가 호텔을 언급했을 때 쉬고 싶은 마음에 그러자고 했지만, 거기에서 누굴 만나야 한다는 일은 부담을 주기에 충분했다. 더구나 철호의 여자와 관련된 사람, 그것도 협박을 하고 있는 정체모를 사람과 만난다니 폭행같은 범죄가 일어날 수도 있는 현장이었다. 더구나 호텔 객실이 아닌가.
"내가 같이 해야 할 이유는 없는 것 같아. 방을 하나 더 잡아. 난 거기에 있을게."
철호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그러자고 했고, 차가 가다 서다 하는 사이 호텔로 전화를 걸어 방을 자신의 이름으로 하나 잡았다.
"어차피 나도 며칠 같이 묵어야겠어."
피곤이 몰려 왔다. 가뜩이나 시차 적응을 잘 못하는 체질이라 더 힘이 들었다. 그렇게 가물거리듯 눈꺼풀을 몇번 껌벅대는 사이 철호가 어깨를 흔들었다.
"다 왔어."
주차 안내인이 나와 만석인 주차장을 안내했다. 입구로 들어가는 현관 앞에 차를 대게 한 안내인은 발레파킹을 위해 자동차를 인계 받았다.
"두 개가 예약이 잡혀있으십니다. 오른쪽 전용 엘리베이터를 타시면 논스톱으로 10층까지 운행되고, 왼쪽에 일반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시면 5층에서 내리시면 되구요."
철호가 자신의 이름을 대자 카드키를 건네며 인포가 밖으로 나와 길을 안내했다. 그녀를 따라 캐리어를 끌고 철호가 뒤를 따랐고, 그들을 따라 내가 통로 안으로 걸어들어갔다. 지친다는 느낌이 밀려왔다.
"힘들다."
"미안해."
철호가 나를 돌아보며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는 사태를 왜 이런 지경까지 몰고 왔을까. 이런 사람이 아니었다. 아닌 건 분명 아니라고 말할 수있는 그런 사람이었다.
짐을 풀고, 옷을 입은 채 쇼파에 누워 눈을 감았다. 상기의 일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자꾸 밀려만 와서 나를 적시고 결국은 나를 물 속에 잠기게 하고, 결국은 그 물속에 나는 익사하고 말 거란 생각에 천천히 젖어 들었다.
반대편 창 쪽으로 발코니로 나가는 통유리문이 보였고, 들어온 출입문 오른쪽으로 샤워부스가 투명 유리로 둘러쌓였고, 그 둘 사이에 두개의 침대가 가만히 엎드린 듯 놓여 있었다. 거실에 모든 시설이 다 갖춰져 있는 그런 원룸이었다.
쇼파와 침대가 마주보고 있었고, 나는 쇼파에 몸을 기대 눞다 시피 앉아 자리 잡지 못하고 서성이듯 여기 저기 기웃거리듯 서있는 철호를 바라보았다.
"앉아."
"응."
철호가 맞은편 침대에 걸터 앉자, 그가 마땅히 앉을 곳을 찾지 못해 서 있었다는 사실을 알 것 같았다.
"당신, 지금 범죄현장에 가는 걸 수도 있어. 잘 생각해."
"그 사람들, 어쩌겠다고 마음먹었으면 벌써 했어."
"무슨 소리야? 어떤 일을 벌써 했단 뜻이야?"
"일종의 협박 같은... 그런게 있었어."
"뭐? 동영상이라도 보냈어?"
철호는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눈이 좌우로 흔들렸다. 길고 콧구멍이 커졌다. 그건 그가 거짓말할 때의 증상이었다. 오래 같이 산 자만이 알 수 있는 내면의 징후였다. 아니면, 뭔가를 숨기고 있거나, 둘 중 하나였다.
"말 해봐. 여기까지 와서 내게 못할 말이 뭐가 있겠어?"
철호는 망설이는 듯 입술을 깨물었다가, 긴장한 근육이 풀리듯 입술을 움직였다. 그리고 놀라운 얘길 하기 시작했다. 젊은 여자와 얽힌 스캔들이었다. 어떻게 만난 여자인지, 관계를 몇번이나 가졌는지 그런 정보가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이제 철호는 내 남편이 아니었다. 그가 말하는 내용은 단지 객관적인 사실로 다가왔다. 무엇이 고민인지,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인지, 단지 그것을 두고 어떻게 처리해야할지 힘을 보태주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여자애 아버지 소행이 아니라면서?"
"그런 것 같아."
"문제는 그런 영상을 누가 어떻게 찍었는가, 그걸 보낸 사람이 누군지 아직 모른다는 얘기지?
일단 그 애의 가족과 관련된 건 아닌 것 같은데..."
"그런데?"
"걸리는 게 있어."
"뭐가?"
"혜연이라는 여자, 전에 만났던 여자가 영상에 나온다는 거야."
"헤어졌다면서?"
"그렇긴 하지."
"그럼 된 거 아냐? 그 여자와도 관계가 없는 거네? 영상이 공개되면 그 여자도 피해자니까"
"그렇지, 영상때문에 문제가 될 사람은 바로 그 여자라는 점이야."
"그 여자애가 피해를 볼 건 없고?"
"딱히."
"협박자가 그 여자앨 보호하고 싶어 하는거 아냐?"
"그게 핵심이야."
"그걸 위해 영상에 나오는 내용을 공개해도 관계없다는 거고. 그 여자와 당신을 협박수단으로 여자애를 보호하겠다?"
"이야기가 그렇게 되는 거지."
젊고 유망한 여자애를 누군가 보호하고 싶은데 필사적이다, 그건 단지 민지의 전남친처럼 그런 소소한 관계에서 올 수 없는 행위다. 그녀의 아버지라면 충분히 이해할만한 근거가 있다고 보겠지만 그도 아니라면... 좀처럼 윤곽이 잡히지 않았다. 그건 철호도 마찬가지로 보였다.
이제 우린 풍랑을 만난 배를 같이 타고 가는 것 같은 모종의 동료애에 휩싸인 채로, 어떤 하나의 문제에 함께 골몰하게 되었다.
"담배 있어?"
철호가 안주머니에서 담배갑을 꺼내 한 가치를 꺼내 건네 주었다. 그 역시 담배를 입에 물고 라이터불을 켜서 내게 먼저 붙여 주었다. 몇 모금 마셨다가 뱉었다가 하는 사이, 순식간에 방안이 담배연기로 차올랐다.
내가 뭔가 말을 하려는 순간, 철호의 주머니에서 진동이 울렸고, 철호는 전화기를 꺼내 귀에 갖다 댔다.
"응."
철호는 대수롭지 않게 전화를 받고 통화 했다. 문제의 여자애였다.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자기에게 10시에 전화를 해달라는 당부였다. 일종의 신변에 대한 보험같은 거라고 했다.
"젊은애가 철저해, 책임감이 투철하다고 할까."
"든든하겠어!"
종이컵에 물을 부어 그 속에 담배를 버린 철호는 핸드폰의 시계를 들여다 보곤 자리에서 일어섰다.
"내가 먼저 가서 상황을 보고 전화할게. 쉬고 있어. 미안해."
우울한 눈빛의 철호가 불쌍해 조이기도 했지만, 이혼 후 그의 삶이 제자리를 못잡고 있는 것 같아 더 안쓰러움을 불러일으켰다. 더구나, 꾸깃한 외투의 소맷자락이 떄가 탄채로 굳어 있는 꼴은 그를 돌봐주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걸 알게 했다. 한숨이 나왔다. 왠지 내가 그를 버려서 저런 꼴로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서글퍼졌다.
문이 닫히고 그가 방에서 나가자, 사방이 고요해졌다. 나는 쇼파에 비스듬히 누워 눈을 감았다.
데이빗의 얼굴, 다니엘의 모습이 떠올랐다. 잠시 같이 살았던 두 아이들도 모두 떠나고 없는 집이었다. 내 행복은 거기에 있었다. 나는 절대로 과거로 돌아와서는 안 됐다. 거기에 상기의 일이 걸렸고, 그로부터 막대한 유산도 받는 뜻밖의 일도 생겼다. 그가 남겨놓은 편지 속에 고스란히 그의 마음이 들어있었다. 팔을 뻗어 백을 열고 그의 편지를 꺼냈다. 내가 그를 떠나지만 않았어도 그는 이런 결말에 이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가 남긴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가 남긴것은 아파트 한 채와 주식 증서 같은 것이 아니었다. 그를 기억하는 정안과 나였다. 살아있다는 것은 기억한다는 것이고, 기억한다는 것은 너무도 슬픈 일이라는 아픔이 가슴을 옭죄었다.
내가 상기와 살았더라면 우리 둘은 행복했을까, 철호와 같은 꼴은 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 행복은 진짜 행복일까? 철호를 만나지 않았다면, 다니엘은 만날 수 있었을까? 그리고 데이빗은? 사건들이 연쇄반응이 되어 줄줄이 일어났다. 지금의 행복은 과거의 불행이 가져온 산물이었다. 그리고 다시 지금의 행복은 미래에 무엇이 될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고 가는 사람은 가고, 오는 사람은 또 오게 되는 것 같았다.
과거로 돌아가지 않는 것, 그것은 최소한 지금의 행복을 지키는 수단이 될 것임에 분명했다. 나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래, 여기 와서는 안 됐어."
엄마의 기일은 내일 모레였다. 어쩄든 여기서 나가야한다는 생각이 급하게 들었다. 그럼 언니네 가서 묵어야하나? 어차피 제사도 언니네에서 지내니 그게 편했다. 내일 모레 제사를 지내고 그 다음날 바로 출국하면 되겠다는 계획을 잡고 온 것이었다. 입국 당일 정안을 만나고 그날 하룻밤은 철호의 집에서 자고 가겠다는 생각이 여기에 이르게 한 것이었다. 내일 언니네로 들어가려면 이방에서 내일 오전 중으로 체크아웃하면 그만이었다. 그러면 크게 계획에 차질이 새기는 것이 아니었다. 계획에 어긋나는 일이 생기지 않는 것이 나를 가장 안정되게 만드는 일이었다.
어렴풋이 잠이 들었던가, 가물 거리는 정신 속에 전화벨이 울렸다.
"캐리어 챙겨서 10층으로 와. 이제 그방은 다른 사람이 들어올거야. 천 이십 사호, 1층으로 다시 내려가서 아까 데스크에서 알려준 10층 전용 엘리베이터를 타야 돼."
정신을 차리고 철호가 시키는 대로 나는 풀지 않은 캐리어를 들고 객실을 빠져 나와 1층으로 내려왔다. 데스크는 고요했다. 안쪽에 안내자가 깔끔하게 보타이를 맨 남자로 바뀌어 있었다.
버튼을 누르자 엘리베이터는 10층에서부터 한층씩 내려왔다. 철호가 올라가고 그대로 멈춰있는 것 같았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나는 안으로 들어가 잠김버튼을 눌렀다. 앞위로 두명씩 4명, 가운데 1명이 낀다면 5명이 타면 정원이 될만큼 작은 엘리베이터였다.
10층 사용 고객을 위한 안내화면이 스크린에 플레이 되어 나왔다. 왼쪽은 1호라인 오른쪽은 2호라인으로 각라인에 1,2,3의 객실이 순서대로 배치되어 있는 구조였다. 4호실은 각 실을 다 지나친 끝에 엘리베이터를 마주보는 정면에 문이 있는 메인 역할을 했다. 마치 그 방은 1,2,3의 방들을 감싸 안은 듯한 위치에 놓인 듯한 느낌을 주었다. 양쪽에 작은 방들을 거느린 황제의 방 같은 느낌.
나는 황금색으로 봉황문양을 장식한 홋수 팻말 앞에 서서 벨을 눌렀다. 잠시후 문이 열리고, 낯선 남자가 앞에 서있었다. 하얀 머리카락을 어른쪽으로 브릿지스타일로 넘긴 헤어스타일로 입을 둘러싼 구륜과 턱에 착 달라붙도록 잘 다듬은 수염을 기르고 있었다. 그가 통로 한쪽으로 비켜서며 길을 터주었다.
"캐리어는 제가 들까요?"
매너가 몸과 언변에 갖춰진 사람이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철호가 게스트룸의 테이블 앞에 앉아있다가 나를 쳐다보며 미소지었다. 어색한 자연스럽지 못한 미소였다. 내가 그의 앞에 안증ㄹ지 옆에 앉을지 망설이는 사이 뒤따라온 남자가 맞은 편 자리를 가리키며 안내했고, 나는 그 쪽으로 걸어가 철호의 맞은 편에 앉았다.
"저희는 클럽 호스트라고 부릅니다만, 한국어로는 클럽지기? 그정도 되겠네요. 저희가 좀 은근히 움직이거든요."
철호가 나를 쳐다보며 입술을 삐죽 내밀며 고개를 흔들었다. 알수 없다는 몸짓이었다.
"여긴 프라이빗 룸이에요. 가끔 파티도 열고, 사람도 만나기도 하지만 그렇게 자주 쓸일은 없어요. 오늘 같이 이런 날 가끔 오픈하곤 합니다.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잠깐 열어드리는 거죠."
브릿지의 남자는 자신의 호칭을 '클럽호스트'라고 명명했고, 예명으로 클호, 크로라고도 부른다고 했다.
"그러니까, 크로님 이렇게 간단히 호명하시면 됩니다."
그는 테이블 위에 놓인 하얀색 리모콘을 집어들었다.
"따라오실까요? 이방의 용도를 알려드릴게요"
남자를 따라 일어선 우리는 오른 쪽 문으로 들어가 복도를 따라 다시 오른 쪽으로 꺾어 들어가자 회랑같은 복도가 길게 이어져 있고, 벽은 허리높이에서부터 길게 이어진 유리로 되어 시원한 느낌을 주었다. 남자는 리모콘의 버튼을 하나씩 누르며 빠른 걸음으로 앞장서 나갔다. 그가 지날때마다 유리 너머의 방이 환히 밝아졌다.
"이건 1호, 2호, 3호..."
철호는 눈을 치켜 뜨고 나를 돌아보았다. 뭐지? 하는 눈빛이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긴 복도의 가운데 정갈한 침대 한쌍이 자리 잡았고, 남자는 뒤편의 침대에 걸터 앉아 우리를 쳐다보았다.
남자가 알듯말듯한 미소를 지었다. 남자의 얼굴이 유리쪽을 향했다. 철호와 나 역시 남자가 바라보는 쪽을 쳐다보았다. 놀랍게도 유리 안에는 사람이 있었다. 남녀 젊은 커플이 여자는 침대에 가로 누워 맞은편 쇼파에 앉은 남자를 바라보며 이야기를 주고 받고 있는 것 같았다. 여자가 요를 끌어당겨 앞을 가리고 있는 몸의 뒤는 나신이 그대로 드러나 보였다. 맞은 편의 남자가 담배 연기를 뿜으며 일어서자 그 역시 아무것도 입지 않은 나신 그대로였다.
나는 얼른 눈을 돌려 남자의 미소띤 입술을 훔치듯 스쳐 철호를 똑바로 쳐다봤다. 그리고 다시 바닥을 내려다 봤고, 다시 철호를 쳐다봤다. 당황스러웠다.
"물론 저쪽에서 이쪽은 보이지 않습니다."
나를 안심시키려는 듯, 남자가 턱밑에 손가락을 대며 팔짱을 낀 채 모델하우스를 소개하는 일을 업으로 하는 사람처럼, 남의 일을 말하듯 했다.
"이런 구조가 저쪽 반대편에도 있어요. 구조는 똑같아요. 두분이 내키지 않으시면 이쪽과 저쪽으로 침대를 나누어 쓰셔도 됩니다. 두분을 위해 3일간 열어드리는 겁니다."
남자가 다시 일어나 리모콘을 누르자 저쪽방은 다시 어두워지고 유리는 원래대로 돌아왔다. 나는 이 방에 들어올 때 엘리베이터 밖에서 봤던 10층의 구조를 떠올렸다. 그렇다면 내가 본 것은 1,2,3호실의 방 내부였던 것이다. 반배편도 이런 구조라면 역시 반대 라인도 이렇게 천 이십 사호에서 들여다 볼 수있도록 만들었다는 얘기였다. 이건 범죄였다.
남자가 일어나 처음에 있었던 게스트룸쪽으로 우리를 인도했고, 다시 우리는 거실로 나왔다. 리모콘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남자는 다시 우리를 자리에 앉히고 말했다.
"저쪽 냉장고에 먹을거리가 준비되어 있고, 이쪽은 작은 와인바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더 필요하신 것들이 있으면 지금 말씀해주셔도 됩니다. 눈치 채셨겠지만, 안 되는 게 없는 룸이죠. 필요하시면 특별한 드럭도 몇종류 있으니까, 언제든 불러주세요. 다 프리서비스로 제공되는 겁니다."
우린 입을 다물고 그를 쳐다보았다. 그렇게 뜸을 들이듯 묘한 침묵이 이어졌고, 남자는 다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럼, 전 일을 다 한것으로 알고 돌아가겠습니다."
뒤로 돌자 뒤편 스탠드 옷걸이에 걸어놓은 스웨이드 외투를 빼들어 한쪽 팔에 걸치고, 남자는 안쪽 게스트룸 쪽으로 걸어들어갔다. 우리가 들어온 출입문 쪽과는 정 반대였다. 다시 철호와 난 서로를 쳐다봤고, 다시 남자가 걸어가는 뒷모습을 쳐다보았다. 남자가 뒤를 돌며 우리에게 마지막 말을 남겼다.
"반대편에도 엘리베이터가 있거든요. 뷔아이피 전용출입구라고 해두죠. 지하에서 바로 올라오는 몇사람만 자동인식되는 거니까, 이건 바로 잠길 거예요."
남자가 문을 열고 완전히 사라졌고, 이상한 방에 철호와 나 단 둘만 남게 되었다.
"뭐야? 이렇게 이상한 델 본 적 있어? 저 사람은 또 뭐고?"
철호는 내말이 끝나기 무섭게 계속 깔깔대고 웃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내 팔을 잡고 흔들며 허리를 잡고 웃어댔다.
"나 엄청 겁먹었던 거 알아? 누가 나타날지 몰랐잖아. 저렇게 친절한 사람이 나올 줄은 꿈에도 몰랐어. 무슨 게이야?"
나도 철호를 따라 어이없는 웃음을 웃어주었다. 긴장했던 모든 근육들이 한꺼번에 다 풀리는 것 같았다.
"여보, 냉장고에 술 있나 봐봐."
나도 모르게 철호를 여보라고 불렀다는 의식이 머리를 스쳤지만, 철호는 이미 냉장고 쪽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뭘로 할까, 와인, 위스키? 맥주? 와 이거봐 카발란도 있어. 오리지날 대만 각병이야."
"긴장했는지 갈증이 나네."
철호는 맥주를 땄고, 천장에 걸린 잔 거치대에서 위스키 시음잔을 두개 꺼내 거기에 맥주를 따랐다. 손 안에 꼭 들어오는 사이즈의 중간 크기의 유리잔이었다. 철호와 나는 잔을 부딪쳤고 단숨에 철호는 잔을 비웠고, 나는 반쯤 마신 후 숨을 내쉬며 잔을 내려놓았다.
우린 동시에 서로를 쳐다 보며 중얼 거리듯 서로에게 말했다.
"누구지?"
우릴 여기로 부른 사람, 그 사람이 누군지 정말 궁금해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