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건오 Nov 15. 2021

근데 저를 왜 뽑으신 거죠?

저 맘에 안 드는 거 아니었어요?

물론 사람 일이라는 것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라는 게 있는 법이다. 적어도 그렇게 생각하고 살았다.


어느 회사에 인사팀 면접을 보러 갔을 때의 일이었다. 그날은 다른 회사와 1차 면접이 겹치는 날이었다. 오전에 이미 한차례 면접을 보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회사로 향했다.


1차 면접, 인사팀장

면접장에 들어서 가벼운 인사와 함께 1분 자기소개를 시켰다. 그리고 자기소개가 끝나자마자 인사팀장님은 이렇게 말했다.

"원래 그렇게 목소리가 작아요?"


딱히 목소리가 작았다는 느낌은 없었는데? 긴장이야 조금 했지만 목소리가 작아질 만큼 경직되거나 움추려들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심하게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이어지는 질문에서 우리 회사에 대해 얼마나 아는지?, 우리 회사 자본금이 얼마인지? 직원수는 몇 명인지? 영업이익이 얼마인지? 등 회사에 대해 얼마나 공부해 왔는지 물어보는 질문이 이어졌다. 솔직하게 말하면 오전에 면접 본 회사가 1순위였고, 그 회사는 그냥 서류에 붙어서 간 회사였다. 그러니 준비가 미흡할 수밖에. 결국 아무 대답을 하지 못했다.


다음 질문은 근로기준법에 관한 질문이었다. 확신을 가지고 대답했는데 인사팀장님의 반응이 이상했다.

"음.... 그거라고요?"


마치 틀렸다는 듯한 반응. 점점 더 당황스러워졌다. 1차 면접을 마치고 나오면서 당연히 떨어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붙었다. 2차 면접을 보러 오라고 했다.


2차 면접, 경영지원 본부장

2차 면접은 임원면접이었다. 그리고 발표 면접이었다. 

면접 당일에 PT 주제가 공개되고, 노트북이 제공되었다. 50분 안에 PT 자료를 만들고, 바로 임원들 앞에서 발표를 하는 형식이었다.


내 차례가 되어 발표를 마치고 나니 경영지원 본부장님이 이렇게 말했다.

"원래 그렇게 침체돼 있어요?"


인사팀장은 목소리가 작다고 하더니, 인사임원은 사람이 침체되어 있다고 한다. 이것들이 나한테 왜 이러나 싶었다. 애초에 내가 막 밝은 캐릭터는 아니지만 우울한 캐릭터도 아니고, 심지어 발표 주제가 상당히 자신 있는 주제였기 때문에 나름 잘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말을 들으니 또 당황스러워졌다. 그래서 2차 면접을 마치고 나오면서 당연히 떨어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또 붙었다.


3차 면접, 대표이사

3차 최종 면접은 대표이사 면접이었다. 보통 3차 면접쯤 되면 이미 실무적인 면접은 다 끝났기 때문에 거의 인성면접으로 진행되는 편인데, 이 회사는 특이하게 3차 면접도 PT 발표 면접이었다.


발표를 마치고 내 이력서를 보던 대표이사가 이렇게 말했다.

"보니까 사법고시를 오래 하고 법학 한 길만 판 걸로 보이는데, 우리는 한 길만 판 사람보다는 다양한 경험을 한 사람을 원합니다. 수고했고 나가셔도 됩니다."


이쯤 되니 너무 어이가 없었다. 아니 인사팀장은 목소리가 작다고 불만이고, 인사임원은 사람이 침체되어 있어서 불만이면 안 뽑으면 되지 왜 최종면접까지 올렸으며, 한 길만 판 사람보다 다양한 경험을 한 사람을 원하면 애초에 날 올리지 말았어야지.


그리고 며칠 뒤, 나는 최종 합격했다.


오늘도 회사생활은 평화롭다.

매거진의 이전글 책상을 정리하라고 하십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