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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술술이세무사 Oct 04. 2024

세무사 비영리법인 미팅

세무사의 하루

따르릉



"안녕하세요. 술술이 세무사님. 비영리법인상담도 가능하실까요?"



오랜만에 걸려온 반가운 상담전화

개인적으로 비영리법인에 관심이 많아 인터넷상에 이것저것 정리를 하다 보니 전화를 준 모양이다.



"저는 학회사무국 담당자입니다. 학회 운영에 있어 전반적으로 세무업무를 봐주실 세무사님을 찾고 있습니다."



해당학회는 설립한 지는 1년 남짓으로 회원이 많고 여러 가지 사업도 진행할 예정이라 세무 분야를 첫 단추부터 제대로 잡고 가고 싶은 상황이었다.

비영리법인의 세무전반에 대해 궁금한 내용이 많다 보니 우선은 메일로 정리를 하고 향후 이사진과 미팅을 하는 것으로 통화를 마쳤다.



'나이스!'



학회 자문세무사로 커리어가 쌓이면 명함 한 줄 넣기도 좋고,

회원들과의 교류도 생기면 자연스레 영업도 될지 모른다는 청사진이 그려졌다.

좋지 않은 경기에 거래처 폐업도 많은 상황에서 찾아온 천재일우의 기회!


'성실히 정성껏 최선을 다해 보자!'


굳은 결심을 한 술술이 세무사였다.




며칠 후 받은 메일에는 비영리법인의 세무전반과 더불어 실무적이며 디테일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상당히 많은 문의가 있었다.

세법을 어느 정도 아는 분인지, 아는 만큼 많은 고민을 한 흔적이 엿보였다.


비영리법인은 규모가 작은 경우가 대부분이고 고정수입이 없거나 많지 않기에 세무사를 컨택하는 경우가 흔치 않다.

하지만 모를수록 용감하다고 영리법인보다 어려운 부분이 많은 것이 비영리법인 세무다.


문의내용 중에는 학회의 교육사업이나 교재발간 등 수익사업 관련 이 많았는데 이 부분은 원론적인 것 외에 실무적으로 어떻게 처리할지가 더 중요했다.

또 한 번 방향을 잡으면 변경이 어려울 수 있는 영역이라 명확한 접근이 필요했다.

말 한번 잘못했다가는 큰 창피를 당할 수 도 있는 부분!



'비영리법인 전문 세무사의 포스를 보여주자!'



비영리법인의 세금신고 등 세무적 진행방향에 대해서는 기존에 아는 내용과 기본서, 예규등을 참고했고

실무와 관련된 '책에서 알 수 없는' 내용은 한국세무사회나 한국세무사고시회 등 알음알음 세무 관련 학회에 연락을 하거나 필요한 경우 자비까지 써가며 처리 방법을 확인했다.


그렇게 며칠 동안 공을 들여 메일을 회신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역시 세상일은 쉽게 풀리지 않는 법



"죄송합니다. 학술대회 일정이 있어 여기에 신경 쓰다 보니 약속을 잡기가 어렵네요."



학술대회 등 학회내 각종 행사준비 등으로 인해 미팅이 계속 미뤄지다 보니 어느새 시간은 첫 메일전송일로 두어 달이 지나갔다.

중간중간 계속 문의와 답변을 주고받았지만

이사진과의 미팅을 상상하며 첫 메일을 주고받을 때의 기대와 긴장감은

계속되는 희망고문에 '될 대로 되라지.' 이제는 차라리 안 하는 것이 디폴트값으로 생각되었다.


밑져봐야 본전(들어간 시간과 노력을 생각하면 손해막심이지만;;)

공부해서 남줄까? 포기는 없다!

그 시간 동안 끊임없이 비영리법인, 특히 학회관련 세무를 공부한 결과 

정리한 자료의 분량이 A4로 12p에 이르었다.



'만나기만 하면 끝난다!'



그러던 중 들려온 반가운 전화



"세무사님, 다음 주 월요일 2시로 학회 회장님 및 이사님들과의 미팅을 확정하였습니다."


It's time!


드디어 시간이 된 것이다.




미팅 당일

멀끔히 차려입고 강남에 위치한 학회사무실로 향했다.


학회에는 계속된 메일과 통화로 친근한 사무국 직원분과

남자 이사 한 명 , 여자 이사 한 명, 세 명이 모여있었다.



"회장님께서는 볼 일이 있으셔서 조금 늦는다고 하십니다."


"네, 괜찮습니다."



가벼운 인사와 함께 비영리법인 세무에 대해 심도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화기애애, 분위기 좋게 시간이 흘러가고 있을 무렵

1시간이 조금 지났을까?

환갑정도의 나이대에 남색의 깔끔한 정장차림과 정돈한 머리를 한 멋쟁이 신사 느낌의 회장님이 입장했다.



"안녕하세요~!"


시원시원한 목소리에는 자신감과 에너지가 묻어 나왔다.


이런 세무계약은 실무진에서 진행을 하고 회장선에서는 결제로 그치기에

큰 무리가 없다면 인사정도로 나누어 마무리되는 상황

학회세무 관련해  몇 마디 이야기를 주고받았고 미팅은 끝이날 것 같았다.


하지만 의아하게도 아직까지 세무계약에 대해서는 한마디 말도 나오지 않은 상황

다급해진 술술이 세무사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앞으로 세무계약은 어떻게 진행하실까요?"


계약이야기에 사무국 직원도 거들었다.


"전에도 안내해 드렸지만, 나눠드린 출력물을 보시면 세무비용 보수표가 있습니다."



말없이 보수표를 훑기 시작하는 회장님

이윽고 입이 열리며



"세무사님, 우리 학회는 생긴 지도 얼마 안 되고 수입도 없는데 공짜로 해주면 안 돼요?"



'공짜?!'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머리를 얻어맞은 것처럼 버퍼링이 오기 시작했다.

이전까지 신나서 입을 털던 모습과는 다르게 쉽게 나오지 않는 대답..



"보면 할 일도 없어요, 어려우면 좀 돕고 잘되면 더 내고 말이죠? 그런 거 아닙니까?"



농담인지 진담인지는 모르겠으나..

두어 달가량 학회의 문의와 자료를 무료로 정리하고 또 내가 가고 싶다고 간 것도 아니고

당신들 요청으로 먼 길 마다하지 않고 방문한 손님에게 쉽게 할 수 있는 말은 아니었다.

아무리 인생선배고 대단한 사람일지 몰라도 우리는 오늘 처음 본 사이 아니겠는가?


말문이 막히고 얼굴이 굳어 쉽사리 대답을 못하는 사이

임원진 간에 이런저런 이야기가 돌았고 그동안 술술이 세무사는 멋쩍게 어색한 웃음 짓고 있었다.


결론적으로 세무계약은 곧 있을 이사회 회의에서 논의하기로 하며 미팅은 끝났다.




돌아가는 길, 여자 이사와 함께 탄 엘리베이터



"회장님이 저희 업계에서는 입지전적인 분이세요, 이 건물도 회장님이 세우셨어요."


"아 네..."



뜬금없이 이유 모를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게 나랑 뭔 상관인데요?'


라는 말을 참고 고개만 끄덕거렸다.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 안

술술이 세무사는 깊은 생각에 빠져있다.


준비를 열심히 했어도 계약은 내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기에

계약실패는 조금 스트레스가 있을 뿐 크게 실망할 일은 아니다.


계약여부는 다음 이사회에서 안건으로 올려 정하겠다고 말만 들어도 좋았 것이다.


그러나 회장이 보여준 무례함은 나의 자존감, 나에 대한 존중과 연결되어 있었다.

한 푼도 받지 않고 두어 달 넘게 이 일을 정리해 온 사람한테

처음 만난 자리에서 공짜로 해달라는 등, 할 일도 없다는 등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정말이지

내 가치를 폄하하는 기분이었다.


'왜 한마디 대꾸도 하지 못했을까..'


'넉살 좋고 능청스럽게 받아치지 못했을까..'


아무 말 못 하고 한없이 을이 된 자신의 신세가 처량하기도, 서글픈 기분도 드는 하루였다.




후기


이틀정도 지나 사무국 직원으로부터 계약하면 어떤 세무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지 정리 자료를 보내달라는 메일이 왔고,

답답함이 채 가시지 않은 상황이라 하소연이라도 할 겸 사무국 직원에게 전화해 당시 느꼈던 감정과 잘못된 점에 대해서 털어놓았습니다.


사무국 직원은 '회장님이 농담하신 거다.' 이야기를 했지만 그렇다고 제 자존감이 회복되지는 않았고요.

사실 직원에게 이야기 한 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 흘긴다.'가 딱 제짝이었죠..


이날의 내상이 얼마나 심했던지 억울했던 감정이 일주일 이상 이어진 기억이 납니다.

회장 앞에서 한마디도 입을 열지 못한 자신이 후회스러웠습니다.;;


하지만 '공은 공, 사는 사'

돈 안 되는 자존심은 미뤄두고 먹고사는 문제해결을 위해 요청한 자료를 곧장 다 보냈죠.

메일 말미에는 '문의사항이 있으면 편하게 연락 달라.'는 글도 적어.. ㅠㅠ


그리곤

그게 마지막이었네요..


오래되지 않은 일이기도 하고 와신상담의 마음을 잊지 않기 위해 꼭 정리해두고 싶던 에피소드였습니다.


P.S 그래도 공부한 것이 헛되지 않아 이를 바탕으로 다른 비영리법인과 계약을 할 수 있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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